똥개

| 2013. 1. 22. 08:00


http://dvdprime.donga.com/dvdmovie/DVDDetail_Sub.asp?dvd_id=440&master_id=3

영화의 시작과 함께 스크린에 나타난 곽경택이라는 이름을 보고 내가 어째서 이런 영화를 언젠가는 볼 영화 목록에 올렸던 건지 나 스스로를 의심했으나 내 과거의 자아도 어느 정도 존중 받을 필요는 있다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꾹 참고 감상했다. 어차피 러닝 타임도 100분 남짓이었고 딱히 할 일도 없었으니 크게 손해 볼 일은 없었다.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팝 퀴즈를 하나 내볼까 한다. 문제. 영화 《똥개》의 주요 출연진은 정우성, 김갑수, 엄지원, 김정태다. 각 배우의 역할에 대해 간단히 서술하시오.

라는 문제에 정말 진지하게 답을 할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이 대가 없는 수고로움을 감수한 누군가를 위해 답을 내놓자면, "거의 무조건 당신이 쓴 답이 맞다!"가 될 것이다. 정우성은 거지 같은 건달이고, 김갑수는 그의 아버지고, 엄지원은 정우성을 좋아하는 여자고, 김정태는 악역 깡패다. 물론 각각의 캐릭터에 수식어구를 조금 더 붙일수록 익명의 수험생이 낸 답이 정답에서 점점 멀어지리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겨우 배우 이름만 보고도 어느 정도 이 영화가 어떤 양상을 띄며 전개될지가 예상이 된다면, 그 영화는 이미 괜찮은 영화가 되기에 틀려 먹었다는 하나의 방증이 될 것이다.

영화는 정말 놀랍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범인의 사고 방식에서 위로도 아래로도 전혀 벗어나지 않은 채, 무한한 진부함의 바다에서 출렁출렁 부유한다. 꼭 어디선가 한 번 봤음직한 느낌의 영화다. 그 어떤 영화를 다시 한 번 보더라도 이 정도의 익숙함을 기대할 순 없을 것이다. 뜬금없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는데, 《프린세스 메이커 2》만 플레이하면 꼭 소중하게 기른 딸이 농부가 되는 모습밖에 지켜볼 수 없었던 소년 이한결의 "뻔한 엔딩"과 《똥개》의 전개 방식이 매우 흡사한 "뻔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이를 훈훈함이라 치장하기엔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무난함과 뻔함은 너무도 심각한 구멍이다. 무턱대고 《똥개》를 감싸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영화를 두고 8점이라는 평점을 주는 것은 극도의 자기 기만이거나 악질의 비겁한 표현이다. 이건 그냥 밍밍한 거다. 일부러, 또는 필요에 따라 싱겁게 만든 것이 아니고 그냥 잘못 만들어서 밍밍한 거다.

이 영화가 여러 평점 사이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ㅡ 최소한 별점이나 평점만 보자면 분명히 그렇다 ㅡ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다. 굳이 이 영화에 좋은 점수를 준 관객들의 심리를 추측해 보자면, 안마방 장면에서 드러난 정우성의 탄탄한 몸매나 풋풋했던 엄지원의 다소 의외의 캐스팅에 본능적인 호감을 표출한 것이거나, 예상 외로 채택된 해피 엔딩에 "그냥 보기에 훈훈한 영화"와 같은 미화되기 딱 좋은 감상이 반강제적으로 심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의 이유는, 여기서 글을 멈추고 약 3~4분간 생각해 보았지만 더 떠올릴 수가 없었다. 어쩌면 관객들은 이런 무난함의 끝을 보는 영화를 의외로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예들을 여럿 보았고, 심지어 좋은 의미에서 무난하지 않은 영화를 보고도 혹평을 불사하는 꼴도 많이 봤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기 보다는 원래 불특정 다수로부터 받는 평점이라는 것이 이만큼 믿을 것이 못된다는, 또 하나의 진부한 결론을 안고 포스팅을 마치련다. 굳이 내가 점수를 주자면, 5점. 반점을 허용한다면 그래도 어눌한 사투리 연습하느라 고생했지만 별로 그 결과는 좋지 않았던 우성이 형을 위해, 이제는 '맞아. 내가 이런 영화도 찍었었지.'하며 아련하게 과거를 회상하고 계실 지원이 누나를 위해 5.5점 줄 수 있다.

그래도 한국 영화인데 애국 보수답게 유튜브 비디오 클립 정도는 링크하는 것이 애국심의 발현이라고 생각해서 사족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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