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통신 1931-1935

| 2013. 1. 19. 15:36


런던통신 1931 1935

저자
버트런드 러셀 지음
출판사
사회평론 | 2011-04-2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8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 러셀의 지혜!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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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족한 단어로 표현될 리뷰 따위, 아래 이어지는 길고 긴 인용으로 갈음한다. 이 정도면 거의 잠언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러셀이 트위터를 했더라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파워 트위터리안이 되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아무 말도 없이 넘어가기엔 뭔가 아쉬운 감이 있다. 러셀이 쓴 책을 여러 권 섭렵한 결과 ㅡ 물론 그 책들의 내용이 현재 내 머리 속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음을 시인하는 것이 먼저다 ㅡ 《런던통신 1931-1935》에서 노년기에 접어든 러셀이 하고자 하는 말의 큼직한 주제들은 다음의 목록으로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다. 권위에 대한 도전, 경직된 사고의 지양, 문제 해결 수단으로서 이성에의 지향, 더 나은 미래의 추구 등. 내가 러셀이 쓴 책을 적지 않게 읽었음에도 그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항상 이 사람, 버트런드 러셀을 내 인생 최고의 멘토로 꼽는 이유는, 구체적인 실례보다는 어떤 하나의 문제에 접근하는 일반적인 방법론을 기억함으로써 내 지력이 허락하는 최고의 선에서 러셀이 밟아온 삶의 길을 내가 한 번 그대로 따라가고 싶다는 욕구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위한 방법론엔 조금 더 쉬운 길이 있으니, 그 쉬운 길이란 바로 저 모든 가치관의 기저에 깔린 핵심 아이디어를 파악하는 것이 되겠다. 만 24세의 보잘 것 없는 청년이 산전수전을 겪은 대학자의 핵심을 감히 파헤쳐보자면, 핵심은 그가 제시하는 우리가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철학 입문서로서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철학의 문제들》의 마지막 장을 보면[각주:1], 러셀은 철학적 관조를 통해 우주 전체를 공평무사하게 볼 수 있는 것을 철학적 사유의 가치의 핵심으로서 제시하고 있는데 바로 이 "관조"와 "공평무사"의 가치야말로 러셀의 세계관, 러셀의 가치관을 이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가 아닌가 한다.

이 공정한 관조로부터 생각을 시작한다면, 중간의 논리 전개 과정에서 큰 난관에 부딪히거나 오류의 늪에 빠지지 않는 한 러셀의 사고를 모방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평소에 의식적으로 사고 훈련을 꾸준히 해왔던 사람이라면 절대 어려운 일이 될 수 없다. 이 부담 없는 난이도 또한 내가 러셀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큰 이유 중에 하나.

앞으로 이어질 인용은 공정한 철학적 관조의 결과물이다. 만약 이 구절들이 맘에 든다면, 주저없이 러셀의 책들을 몇 권 더 찾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이 보편적인 법칙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며, 인생사의 평범한 불운에서 신성불가침의 면책 특권을 지닌 존재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건 힘든 일이다. 나도 그 점은 인정하지만,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세상에는 지나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몫 이상을 요구하여 발생하는 해악을 줄여주기만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환영받아 마땅하다. - 질투에 관하여

그러나 생리 현상 앞에는 장사가 없다. 우리 몸의 조직이 뻣뻣해지면서 우리의 습관도 점점 굳어진다. 우리(나 역시 노인의 입장에서 얘기하고 있다)는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보낸다. 면도하고, 머리를 빗고, 좋아하는 일화나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변화가 필요하다고 머리로는 확신하지만, 그건 이미 굳어버린 입버릇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짜 변화는 감당할 수 없다. - 노인을 위한 나라

나로 말하자면, 가장 훌륭한 사람에 관해 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유쾌하고 명랑하고 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니오'보다는 '예'란 대답을 더 많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특히 아이들에게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 립스틱을 발라도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모든 사람의 삶에는 실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요소들이 있는가 하면, 행운이든 불행이든 변하기 쉬운 요소들도 있다. 변하지 않는 요소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변하는 것들은 희망과 공포의 문제가 된다. - 돈을 향한 희망, 돈에 의한 공포

사람들은 대부분 특정 후보의 장단점을 따지지도 않은 채 자신들이 늘 투표해왔던 대로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가 늘 투표해왔던 대로 표를 던진다. 이는 보수주의자들뿐 아니라 개혁주의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영국에 사는 나로 말하자면 아버지가 급진파였으므로 노동당에 투표한다.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가 자유당 지지자였으므로 급진파가 됐고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가 휘그당 지지자였으므로 자유당 지지가 됐다. 그리고 그분이 휘그당 지지자가 된 것은 선조들이 헨리 8세로부터 수도원 토지를 하사받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투표를 하는 진짜 이유

일반 대중으로서는 과학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을 믿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어떤 과학자가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자신 있게 의견을 표명한다 싶으면 일단 의심해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과학자들은 초인이 아니므로 우리 일반인들만큼이나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 과학자도 사람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민주주의의 난제 중 하나와 부닥치게 된다. 사람들은 학교를 떠난 뒤로는 대개 신문을 통해 외국에 관한 변변찮은 지식을 얻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의 편견에 아첨하지 않는 신문은 사서 보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들이 얻는 지식이라고는 자신의 편견과 격정을 확증해주는 지식뿐이다.

이것이 국제적 사안에 대한 온당한 처리를 가로막는 커다란 난제 중 하나다. 국수주의적 민주주의의 한계 내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나로선 당최 알 수가 없다. - 역지사지의 맹점

나는 설령 개인적으로 미래에 참여하지 못한다 해도 현재의 행동이 미래에 열매를 맺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싶다. 또한 나는 문명이 계속 향상될 거라 생각하고 싶고, 때때로 그 반대의 생각이 들면 기분이 가라앉고는 한다. 눈앞의 전망이 다소 우울한 요즘 같은 시절에는 좀 더 먼 미래를 생각해보면 종종 기운이 나기도 한다. - 멀리 보면 달라지는 것들

톨스토이는 피로연을 여는 신혼부부 한 쌍에 대해 어디에선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파티가 끝나자 두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정확하게 똑같은 파티를 치렀다는 사실을 서로 축하한다.

이런 것이 최고의 야망인 사람들은 존경을 바라는 마음보다 경멸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게 분명하다. 혹시 존경을 바란다고 하더라도, 진정 본질적인 특성이 아니라 성공적인 모방을 통해 존경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런 사람들은 필요한 수고를 감수하는 이들이 배울 수 있는 취향은 습득할 수 있겠지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사물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법은 습득하지 못한다. - 우리가 가구를 사면서 생각하는 것들

결혼을 하는 신랑 신부는 이제부터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두 사람의 '의무'라는 얘기를 듣는다. 사랑이란 하나의 감정이기 때문에 의지로 통제할 수 없고 따라서 의무의 영역에 넣을 수 없는데도 그렇다고 한다. 신중한 행동이야 의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은 하늘의 은총이다. 따라서 그 은총이 철회되었을 때는 그것을 상실한 사람을 비난할 게 아니라 동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 기대하는 마음이란

민주주의가 필요한 까닭은 인간 본성에 담긴 충동의 힘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바람직한 까닭은 평범한 유권자가 무슨 정치적 지혜를 지녔기 때문이 아니다. 인류의 어떤 집단이든 일단 권력을 독점하면, 나머지 집단은 삶의 좋은 것들을 누리지 않고 사는 편이 낫다는 것을 입증할 목적으로 각종 이론을 창안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 본성에서 가장 정떨어지는 특성 중 하나다. 그러나 역사는 정치권력을 모든 계층과 남녀 모두에게 고루 분배하는 것만이 이를 적절하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고행의 십자가만 짊어지게 되리니

남을 지겹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는 상대에게 신경을 쓰지 않거나, 그들 자신과는 달리 상대는 그들에게 별 흥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

전쟁과 불황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세상은 점점 더 인간다워지고 평균적인 인류의 행복도 증가하고 있다. 좋았던 그 때 그 시절에는 행복했으리라는 생각은 사실상 근거가 없는 믿음으로, 절실히 필요한 개선을 반대하는 구실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과거를 너무 좋게 보는 것은 좋지 않다. 오히려 현재를 아주 나쁘게 보는 것이 괜찮을 수도 있다. - 옛날이 좋았지

인종 혐오는 가장 잔인하고 미개한 정서다. 군중 속의 인간들은 이 정서에 물들기 쉽다. 이것을 약화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야말로 인류 진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 수단들 중 가장 강력한 효력을 지닌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경제적 안정일 것이다. 우리가 경제적 불안으로 갖가지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순간에도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게 모두를 위해 안정을 다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길에 놓인 어려움 중 하나는 경쟁을 좋은 것으로 바라보는 믿음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운이 좀 더 좋았을 뿐인 인종과 계급들이 그들 자신은 잃을 게 전혀 없는데도 다른 인종과 계급에게 평등을 허용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있다는 것이다. - 인종 혐오를 들여다보니

위트 있는 이야기꾼 들은 결코 서로를 좋아할 수 없다. 제각기 자신의 위트를 돋보이게 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뭔가를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아는 것이 많은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설명 듣기를 좋아한다. 듣는 척하고 있으면 남자들이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호감 가는 사람이 되는 법

성인들이 심각한 주제에 관한 논쟁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려면 학교에서부터 관용을 배우는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누군가 악역을 맡아 일주일에 한 번 전교생 앞에서 매우 인기 없는 명제, 말하자면 '축구는 비열한 스포츠다' 같은 명제를 주장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그를 반박하는 게 학교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만약 반박할 수 없다면 그동안에는 그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 이내 그 학생은 정치적인 주제나 경제적인 주제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테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패배는 유감스러운 일이었다'거나 '유색 인종에 대한 착취는 마땅히 중단되어야 한다' 같은 주제들로 말이다.

그런 의견들을 참을성 있게 들으며, 비난 대신에 토론으로 그것들을 대해야 했던 젊은이들은 세상 누구의 견해를 듣더라도 냉정을 잃을 염려 없이 세상에 포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교육을 받은 다음에는 늘 이성을 앞세워 살아갈 것이며 더 이상 자신의 편견을 도덕적 원칙으로 격상시키지 않을 것이다. 현재 정치적으로 중요한 대다수 신조들이 그들에게는 먹히지 않을 텐데, 그런 신조들이 사라짐으로써 현대 세계의 거의 모든 거대 악들도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 논쟁을 좋아하게 되면

이를 피하려면 정신적으로 젊음을 유지하는 기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육체적으로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근육이 굳어지는 것을 막고 여전히 젊은 시절처럼 몸을 갖은 형태로 비틀 수 있도록 온갖 운동을 한다. 비슷한 성격의 정신 운동이 있는데, 그것은 습관적인 의견들과는 다른 의견을 반기는 것이다.

늙은 정신의 편견은 늙은 몸의 굳은 근육과 같다.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자신이 정신적으로 유연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요직도 차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 시험을 통과하려면 애완동물에 열광하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 화내지 않고 참으면서 이성적인 태도로 대답해야 한다. 만약 야구를 찬미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운동을 바보짓이라고 생각하는 연약한 젊은 예술 애호가와 논쟁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 채무는 제때 갚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시저와 샤를 5세가 막대한 빚 덕분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지적해주어야 한다. 기타 등등. - 삼엽충이 남긴 교훈

내 생각에 이 모든 조처들은 미국뿐 아니라 모든 문명국에도 올바르고 중요하다. 국가 공무원인 교사들이 일시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들에게 복종하도록 요구받는 일이 너무나 자주 벌어지고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교사들은 그들이 마땅히 지니고 있을 전문 역량을 발휘할 수 없거나 젊은이들이 현재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인 판단력을 형성하도록 가르칠 수 없다. 이런 위험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교사들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조직을 통해 지성의 독립성을 보호하고, 무지와 편견을 공격하는 의견을 부당하게 묵살하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하는 것뿐이다. - 교육은 교사에게

사실 은폐라는 방법을 쓰는 모든 신조는 자기 신념이 타당한지 확신하지 못하고 심지가 굳건하지도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건들을 충분히 숙고하는 과정에서 진실한 것들이 진실로 떠오를 것이다.

아이들을 예쁘게 꾸며진 환상의 세계에서 키우는 습성은 세상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기 위한 준비로서는 아주 형편 없는 짓이다. 건전한 견해라고 여겨지는 것을 아이에게 심어 주는 게 목적이라고 말한다면 이에 대한 적절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지혜는 현실 세계를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 진보주의자의 검열


  1. 링크를 따라가면 포스트 하단에 내가 방대한 양의 인용을 해놓은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을 직접 참고하는 것도 추천하는 방법.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