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음악 감상법 1

| 2011. 7. 23. 10:42

이 세상에서 특정한 대상의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봤을 때 상당히 무의미한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한민국 수학 과정으로 중학교 때 배우는 명제라는 개념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명제란 논리적으로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문장을 의미한다고 배웠다.
명제가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은 여기서 자칫 참과 거짓을 어떻게 정의하냐는 철학적인 성찰에 빠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 보다는 몇 가지 예를 듦으로써 명제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것이 더 쉬운 길이리라.

1. 탬파베이 레이스는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적이 한 번도 없다.
2. 알랭 드 보통은 프랑스인이다.
3. 너는 잘났다.
4. 전지현은 여전히 아름답다.
5. 까불로그 주인의 키는 176cm이다.
 
1의 문장은 명제로서의 조건을 만족시키며 참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2는 명제는 맞지만 거짓의 명제다.
3은 당연히 명제가 아니다.
'잘나다'라고 하는 서술어가 기준에 따라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ㅡ 이 경우에는 대부분 거짓이겠지만 ㅡ 있기 때문에 명제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즉, 명제가 아니므로 참과 거짓을 따지는 것이 불가능하며 설령 그런 판단을 내린다고 해도 그 결과는 무의미하다.
4번 역시 비슷한 경우다.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에게는 절대 참의 문장이지만, 어쩌면 전지현 본인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세월의 흔적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높은 클릭 수를 유도하려는 3류 인터넷 기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다.

내 눈이 삐꾸인가 이게 어디가 굴육 사진인지 잘 모르겠다. http://sports.donga.com/3/all/20110721/38964819/2


반면 5의 문장은 명제이며 놀랍게도 참이다.
어떤 사람의 신장이 구체적으로 몇 cm이다라고 하는 것은 병적으로 예민한 사람[각주:1]들을 제외하면 누구나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문장이다.
그리고 나의 키가 176cm라는 것은 최근의 수차례 신장 측정에서 모두 참이라고 증명된 명백한 사실이다!

제목이랑은 생뚱맞게 무슨 명제 이야기를 들먹이는지 궁금해 할 사람들을 위해 딱딱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로 접어둔다.
앞에서 명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단지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글이 초래할 수 있는 오해 거리를 한정짓기 위해서였다.
마치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의 1장을 썼던 것처럼 말이다.
'음악 감상법'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기호성을 띈다.
다시 말해 '내가 여기서 제시하는 음악 감상법은 바람직하다'라는 문장은 참이네, 거짓이네를 따지기 이전에 명제로서 성립하지 않는 문장이다.
게다가 장르 상대주의라는 개념까지 끌어들인다면 대체 음악 감상법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는지, 그 여부 자체가 불분명해진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던 예 중에 '전지현은 여전히 아름답다'처럼, 명제로서의 조건은 만족시키지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참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에 충분한 문장도 존재할 수 있다.
'바람직한 음악 감상법'은 바로 그런 존재의 하나가 되고자 쓰는 글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구태의연하게 자격론이나 상대주의에 빠진 불필요한 미사여구는 생략할 것이다.
그래도 큰 오해가 없기를 바라면서.

올해 상반기에 쓴 우리 사회의 부적절한 성관념을 고발한 총 5편짜리 연작의 글을 쓸 때 있었던 거창한 개요 같은 것은 이번 작업에선 제외했다.
개요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몸소 느끼고자 하는 것은 허울 좋은 명분이고 거기에 70%의 귀찮음이 가미되어 있는 것이 진실이다.
하지만 개요 없이도 앞으로 이 글이 나아갈 방향 정도는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향후 내 글이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것을 막아주는 최소한도의 장치로 작용하리라.

바람직한 것이 있다는 말은 현재의 주류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미를 내포한 표현이다.
진부하지만 다음 글은 그 바람직하지 못한 세태에 대한 언급이 될 것이다.
이 때 우리나라 음악 산업의 근본적 문제라는, 우리나라의 교육 구조만큼이나 뿌리가 깊어 절대 고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간단하게만 건드리고 넘어갈 생각이다.
그 내용 자체가 워낙 방대할 뿐만 아니라 나로서는 도저히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고, 그런 이유에서 때문인지 내가 그 문제에 대해 확고한 지식이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간단하다.
나의 견지에서 그런 현실이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를 분석하고 내가 제시하는 그 궁극적인 해결책이 그 이유를 뒤따른다.
지난 번과 같이 자체적인 피드백이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리의 현실이 어떻길래 나 같은 한낱 위장 음악인마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는 걸까?
대체 뭐가 불만이라서 현재의 상황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하는 걸까?
  1. 아침과 밤의 키가 다르지 않냐며 꽥꽥거리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나 어쩌면 키가 176cm가 아니고 175.9876cm이지 않겠느냐고 바득바득 우기는 사람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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