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 Bill : Vol. 1

| 2011. 7. 28. 10:40


킬 빌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2003 / 미국)
출연 우마 서먼,루시 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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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접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4년 전, 아직까지도 내 인생 최고의 '청춘' 영화로 남아있는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봤을 때이다.
영화를 보고 그 세련된 연출에 감탄하며 감독 가이 리치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쿠엔틴 타란티노와 마주치게 된 것.
언젠가 한 번 이 사람 영화를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이상하게 계속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나마 이 사람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이 참 다행이다.
또 하나의 뛰어난 감독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킬 빌'은 내가 여태까지 봤던 어떤 액션 영화보다 훌륭한 카메라질을 선보인다.
미쟝센이나 카메라 워크에 집착하는 사람으로서 여태까지 멋진 카메라질을 보여준 영화를 꽤 많이 봐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의 시네마토그래피는 정말 환상적이다.
촬영을 맡은 로버트 리차드슨은 알고보니 올리버 스톤, 마틴 스콜세지 같은 명감독과 ㅡ 쿠엔틴 타란티노도 당연히 포함해서 ㅡ 작업하면서 총 6번 오스카 촬영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2번 수상에 성공한 노련한 촬영감독이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영화를 구상했다는 '킬 빌'의 전체 촬영 분량을 두 영화로 쪼갠 것은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저수지의 개들'부터 같이 작업한 편집 담당 샐리 멩케의 이름도 '기억해두면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쓰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2010년 9월에 야외 활동 중 사망했다고 한다.
사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당시 섭씨 45도에 달했던 기온이 하나의 원인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잠시 빠지는 이야기지만 고작 55M$의 예산과 155일의 기간으로 이렇게 대단한 영화를, 그것도 두 개나 만들어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2000년대 이후로 제작 예산이 1억불을 넘는 거대 블록 버스터들이 판을 치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킬 빌'이 미국 내에서 기록한 180M$의 흥행 실적이란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의 위용까지 느끼게 하는 것이다.

중앙의 골리앗에 맞서는 양민 다윗들의 처절한 계급 투쟁.


'킬 빌'은 시작부터 관객들의 긴장을 바짝 조여서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그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 영화가 가진 양날의 검, 즉 끊임없는 액션 장면이 불러오는 흥미진진함과 지루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가지 실험적인 요소를 삽입한다.
중간에 삽입된 만화가 그 대표적인 예.
'킬 빌'을 처음부터 이런 식의 만화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엄청나게 흥미진진했을 만화를 통해 관객들의 주의를 환기한다.

  

'Crazy 88'과 단체로 싸우는 장면에서는 마치 뮤지컬이나 연극의 한 장면을 스크린에 옮겨놓은 듯한 인상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흩어지고 모일 때 보여주는 군의 움직임은 마치 소녀시대가 각자의 포지션을 바꿀 때와 흡사하게 암묵적인 절도와 규칙성이 느껴진다.
뭐랄까, 말미잘이 그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하는 동작이나 부포 상모가 오므러들었다가 펼쳐지는 모양이나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렇고 그런 사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손의 움직임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공수의 전환과 함께 흩어지고 모이는 사람들의 '군무'는 잔혹한 격투 장면에 조금의 여유와 조금의 해학을 부여한다.
오렌과의 격투 전에 나오는 그림자극의 미쟝센 또한 주목해서 볼 장면.
다양한 화면 때문에 관객은 시종일관 부닥치고 싸우고 베고 찌르고 쏘는 이 영화를 지루하게 느끼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신체가 잘린 부분에서 과장되게 피가 솟는 것은 박찬욱이 '박쥐'에서 보여준 그로테스크한 유머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깔깔거리는 웃음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지만 허허하는 미소 정도는 충분히 짓게 하는 은근한 유쾌함.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고어를 예술로 승화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스토리상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일본이라는 소재를 자신이 구사하고자 하는 영화와 적절하게 배치하는데 성공했다.
서양 출신의 사람이 동양의 문화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 많이 저지르는 어설픔의 실수 같은 것은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우마 서먼이 복수의 첫 단계를 위해 오키나와로 날아간 장면에서 나타난다.
초밥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현존하는 최고의 칼 대장장이라는 컨셉은 정말 동양에서나 존재할만한 진부한 소재로 미국 출신의 감독이 구상해냈다는 사실만으로 웃음을 자아내는데, 그 사람의 이름을 하토리 한조라고 지은 것에서 GG 선언을 했다.
거 참 인생 한 번 넓게 산 사람의 내공이 느껴졌던 부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음악이다.
우 탱 클랜의 실질적 리더 RZA가 쿠엔틴 타란티노와의 협력 하에 주도적으로 작업한 '킬 빌'의 사운드 트랙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방송에서 흔히 듣는 효과음 중 상당수가 이 '킬 빌'의 효과음을 빌려온 것이라는 사실은 나처럼 TV를 잘 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었다.
왜 영화 OST 음반이 따로 발매가 되는지 이해할 수 있었던 대목.
이 정도의 퀄리티라면 충분히 음반을 보유하고 있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빨리 2부를 봐야겠다.
비록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리즈 물은 아니지만 어쨌든 1부와 2부가 있으니 시리즈 물이라고 치면, 근래에 보기 힘든 명 시리즈 영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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