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음악 감상법 2

| 2011. 7. 31. 15:33

2011/07/23 - [글씨/음악] - 바람직한 음악 감상법 1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 새로운 음악적 풍토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MR을 반주로 쓰는 아이돌과 댄스 가수가 득세하던 가요계에 2000년대 후반부터 밴드가 직접 라이브로 반주를 넣는 '밴드 음악'[각주:1]이 자신만의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각종 락 페스티벌과 재즈 페스티벌에 사람들이 북적이고, 인기몰이에 성공한 몇몇 유명 밴드는 비록 황금 시간대는 아니지만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각주:2], 밴드의 신보 소식이나 단독 콘서트 소식에 관심이 쏠리고, 해외 유명 밴드의 내한 공연 티켓은 불과 몇 분만에 매진이 되는 새로운 분위기가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공연장을 자주 찾는 편이 아닌 내가 2007년부터 간 내한공연만 따져봐도 에릭 클랩튼, 뮤즈, 엘레가든, 스타세일러, 마룬 5, 자미로콰이, 제이슨 므라즈, 미스터 빅, 벤 폴즈.
세계적인 뮤지션이나 밴드가 이제서야 인천행 비행기를 끊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창 무르익은 일반 대중의 음악에 대한 관심도는 2010년 '슈퍼스타K 2'의 기록적인 성공을 기폭제 삼아 또 한 번 괄목할만한 수준으로 껑충 뛰게 된다.

바야흐로 2011년은 대한민국 음악 원년이라는 표현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주변이 온통 음악과 노래로 넘쳐난다.
성공적으로 종료된 '위대한 탄생', 월요일만 되면 지난 날의 방송을 이야기하게 만드는 '나는 가수다', 재야의 숨은 고수들이 대거 출동한 '탑 밴드', 음악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출전하는 '코리아 갓 탤런트', '나는 가수다'의 프로토 타입 격인 '불후의 명곡', 방송할 거리만 없다 하면 노래 잘하는 사람을 내세우는 '스타킹',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음악 프로젝트 ㅡ 예를 들어 '남자의 자격'의 합창단이나 '무한도전'의 가요제 등 단순히 TV 프로그램의 구성만 살펴보더라도 이 나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시선을 TV에서 오프라인으로 돌려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온통 음악 붐이다.

실제 인도군의 훈련 장면이라고. http://naridy.egloos.com/4322994


이런 붐은 비단 밴드 음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밴드 음악'과 대조되는 'MR 음악' 또한 2000년대 후반부터 놀라운 발전을 거듭했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라는 두 걸 그룹의 폭발적인 성공에 힘입어 그들을 표방하는 걸 그룹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걸 그룹의 사진에만 관심이 많지, 그 자체에는 무관심한 나 같은 사람조차 카라, 티아라, 에프엑스, 시크릿, 포미닛, 미스에이, 애프터스쿨, 걸스데이, 달샤벳, 시스타 정도의 이름은 꿸 수 있다.[각주:3]
보이 그룹[각주:4]도 사정은 비슷하다.
빅뱅, 2PM, 비스트, 동방신기, 엠블랙, 제국의 아이들, 인피니트처럼 춤에 집중하는 친구들부터 포맨, 디셈버, 2AM, SG 워너비처럼 노래에 집중하는 친구들까지 다양한 그룹들이 가요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추구하는 바가 비슷비슷한 이들 각종 그룹들은 한정된 케이크를 두고 자신이 먹을 분량을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한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각종 공작들이 몹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고 우리가 표면적으로 느끼는 현실은 그 공작의 결과이겠지만 어찌되었든 이들의 음악도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다.

정리하면 우리나라의 음악계는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다.
아직도 사람들의 의식 속에 음악은 다운로드 받아 즐기는 것이라는 잘못된 관성이 만연하긴 하지만, 발전하는 음악성 덕분인지 아니면 선진형 시민 의식이 퍼진 덕인지 음악과 관련된 유료 서비스가 슬슬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런 상황에 맞서 기획사들은 이익 창출을 위해 미니 앨범이라는 얕은 수로 음반 산업에 뛰어든다는 또 다른 악습이 생기고 있기는 하지만 어쩌면 이 것이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해 새롭게 바뀐 음악 산업의 양상에 가장 들어맞는 방법일 수도 있다.
어쨌든 과거보다 음악 산업에 유입되는 재화가 분명히 늘어났다.
유입된 재화가 공정하게 분배되어 그 재화를 불러들인 장본인에게 잘 돌아간다면 그 장인(匠人)들은 또 다른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다.
그 결과물이 다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으면 사이클은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반복된다.
요즘과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즉 이 같은 양(陽)의 피드백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음악 문화가 주류로 자리 매김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여전히 문제점은 있다.
MR 음악과 밴드 음악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이 바로 그 것이며, 이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아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다.
현재의 우리나라 음악계의 불균형한 상황의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다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생략한다.
내가 밴드 음악이 비밴드 음악에 비해 우월하며 따라서 모든 음악은 밴드 음악 중심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오해할 사람도 희귀할 것이므로 불필요한 예상 대응도 자제한다.
그리고 왜 지금과 같이 MR 음악이 밴드 음악에 비해 높은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첫 글에서 밝힌대로 별로 건드릴 생각이 없다.

MR을 반주로 하는 무대와 밴드 연주를 반주로 하는 무대, 나아가 각각의 무대를 주로 선호하는 뮤지션의 음악엔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그 장단점은 바로 각각의 음악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특징이 다른 것에서 기인한다.
춤을 잘 추는 사람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
현란한 기타 솔로나 힘 넘치는 베이스 슬랩을 보면?
결국 춤을 강조하거나 노래를 강조하는 MR 음악과 악기의 연주가 강조되는 밴드 음악은 그것을 감상하는 청자들에게 다른 종류의 포커스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다른 종류의 초점은 '저것과 같은 춤을 추고 싶다', '나도 저렇게 노래를 하고 싶다', '기타를 배워볼까?'와 같이 음악의 재생산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청자에게는 수동적 의미의 음악인에서 능동적인 음악인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우선 음악 산업이 활성화되어 훌륭한 음악적 토양이 쌓인다.
그 영양분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새로운 싹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나가고, 다시 그 싹들이 져서 또 다른 트렌드의 밑거름이 된다.
바로 이런 과정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음악 문화다.
현재 대한민국 음악 산업의 문제점은 그 생태계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언뜻보면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거기서 거기다.


우리의 대중 음악엔 노래와 춤으로 표현되는 박자는 넘치지만 연주는 부족하다.
'연주의 부재'는 '음악의 깊이 상실'과 같은 의미다.
정말 속이 꽉 찬 음악을 만들기 위해선 음악으로서의 필수 요소를 고루고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MR 음악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MR 음악에서도 깊은 감동을 느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MR 음악에는 연주 자체가 주는 그 고유의 깊은 맛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만든다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작곡이란 그런 일을 하게 될 사람에게나 관련이 있다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차피 커서 쓸 일도 없는 행렬과 로그를 왜 배워야 하냐'며 징징거리는 고등학생 정도의 의식 수준과 다름 없는 주장이다.
행렬과 로그를 배워 그 이해도를 시험을 통해 평가하는 것은 사회인이 되기 위해 행렬과 로그의 내용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저 유명한 '수학의 정석'의 글머리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우리가 수학을 배우는 이유는 수학이라는 과목의 근본에 깔려있는 이성적 사고의 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음악을 예술이라는 커다란 범주에 집어넣어보면 결국 예술이란 인간의 심미적 안목을 기르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나아가서 인간과 그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표현할지를 다루는 분야이다.
음악이 사람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지리한 이야기를 더 나열할 필요는 없으므로 여기까지.[각주:5]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음악 수준이 발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균형적인 음악적 토양을 일궈내야 한다.
우리가 어차피 순환하는 과정의 어딘가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반대로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들 청자가 음악을 더 균형적으로 선택해서 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쪽이 자신에게 속해 있는 거대한 음악적 책임감의 조그마한 일부분을 거부하려는 사람에게 좀 더 솔깃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좀더 적극적으로 현 상황에 거룩한 숙명감을 느끼고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래의 설명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주창한 밈과 비슷한 개념으로 어쩌면 각종 대중 음악에 깔린 어떤 음악적 요소들이 치열하게 경쟁해 그 중에 살아남은 음악적 요소가 현재 주류 음악의 장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화롭지 못한 존재가 전부를 잠식하는 것을 그저 눈 뜨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가.
바로 지금 '연주의 밈'의 반격이 필요하며, 그 반격의 시작은 관습적인 가요 감상의 방법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점진적으로 그러나 뿌리부터 시작할 수 있다.

여기까지 논지가 전개되었으면 당연히 이 다음은 실질적인 해결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 순서겠다.
문제가 발생한 원인이 여러가지인 만큼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에도 여러가지 방안이 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제시할 수 있는 개선책이 다음 글에 이어질 예정이다.
  1. 논란의 여지가 있는 용어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단어로 짧게 줄여 쓰기에 어려움이 있으니 그냥 밴드 음악이라고 해두자. [본문으로]
  2. 따라서 '나는 가수다'에서 YB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엄청난 것이다. YB가 떨어지더라도 '나는 가수다'엔 꼭 밴드라고 불릴 수 있는 팀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본문으로]
  3. 나열 순서와 나의 선호도는 무관하다. [본문으로]
  4. 이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뿐인가? [본문으로]
  5. 는 훼이크고 사실 내가 다루기에 너무 거창한 주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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