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 2011. 7. 29. 22:44


키스하기전에우리가하는말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알랭 드 보통 (생각의나무, 2005년)
상세보기

이 책을 읽음으로써 드디어 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관한 3부작이라고 불리는 시리즈를 ㅡ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ㅡ 전부 읽은 셈이 되었다.
앞의 두 권의 책과 마찬가지로 제목부터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이 책의 원제는 'Kiss & Tell'이다.
검정치마 1집에 실린 노래 제목 말고는 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책의 마지막에 실린 옮긴이의 말을 인용한다.

이 책의 원제 "Kiss & Tell"은 유명한 인물과 맺었던 밀월 관계를 언론 인터뷰나 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폭로하는 행위를 뜻한다.

저 긴 문장과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짧은 구가 있었더라면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보다는 더 좋은 제목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는 그만큼 적절한 구를 찾지 못했다면 굳이 '키스'나 '우리' 같은, 관련어로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는 제외하는 것이 더 옳은 번역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책은 '사랑'과는 별로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전의 두 권의 책과 왜 굳이 연관 지으려고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알랭 드 보통의 책에 대한 번역 작업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각각의 책마다 번역이 된 시기, 출판사, 번역자 등 모든 파라메터들이 뒤죽박죽이다.
그럼에도 모든 책 소개에서 이 책을 '사랑에 관한 3부작'이라고 한데 묶고 있는 것은 희한한 일이다.

알랭 드 보통의 첫 작품인 'Essays in Love'는 1993년에 쓰여진 책이고 우리나라에는 2002년에 최초로 청미래에서 정영목 씨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출판되었다.
두 번째 작품인 'The Romantic Movement'는 1994년에 나온 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는 사랑일까'라는 제목으로 공경희 씨가 번역해 은행나무에서 출판되었는데 그 때가 2005년.
세 번째 작품인 'Kiss & Tell', 즉 내가 이번에 읽은 책은 알랭 드 보통이 1995년에 쓴 책이고 국내엔 마찬가지로 2005년에, 생각의 나무에서 이강룡 씨가 번역해 출판되었다.
그리고 2007년에 정영목 씨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개정해서 출판하고 이것이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그 주황색 표지에 남자랑 여자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같이 손을 맞잡으려고 하고 있는 그 책이다.[각주:1]
그리고 올해 초에 이미 절판이 되어버린[각주:2]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의 판권을 '우리는 사랑일까'를 출판한 은행나무가 인수했는지 어쨌는지 어쨌든 이제 알랭 드 보통의 전문 번역가라고 해도 될만한 정영목 씨가 '너를 사랑한다는 건'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을 다시 번역했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역사를 반추하면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은 원작자가 고심해서 지었을 'Kiss & Tell'을 한글로 옮긴 것 치고는 너무한 제목이다.
차라리 원제의 발음 그대로 '키스 앤 텔'이었다면 제목 번역 점수에 있어 최소한 중간의 평점은 받았을 터.
이 책이 논문 스타일이었다면 '인간 분석에 있어서의 전기적인 접근' 같은 제목이 더 어울렸을 것이고, 전 두 책의 제목과의 관련성을 노렸더라면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좀 더 격하게 '너는 누구냐' 같은 제목이 더 적당한 의역이 아니었을까.
뭐 결과적으로는 이 책의 새로운 제목 '너를 사랑한다는 건'이 제일 어울리는 것 같기는 하지만.

번역을 잘못하면 이런 참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저 사람의 몸집을 생각하면 적당한 의역일 수도 있지만.


따분하게 제목에 관한 이야기를 길게 나열한 것은 그만큼 이 책의 주제와 제목이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사람을 파악하고 알아가는 방법에 대한 소설 형식의 에세이다.
그 주된 방법론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자서전적인 접근인 것이고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사람이고 사랑이고 다 집어치우고 자서전에 대한 에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타인에 대한 '전기적인' 접근은 생각해보지도 못한 내게 이 책의 기본 전제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제시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에선 두 남녀가 만나서 헤어지기까지 일어날 수 있는 경우 말고 어떤 사람의 인생을 파악할 수 있는 경로의 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정도.
이는 어떤 사람을 단 시간안에 파악해버리고, 아니 사실은 파악하는 척 해버리고 멋대로 그 사람을 단정 짓고 규정 지어버리는 아주 안 좋은 습관을 몇 년 동안 간직해오다가 이제서야 그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고자 노력 중인 나에게 좋은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제임스 보즈웰의 '존슨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기본적인 대인 관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이 책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은 바로 가족을 통한 접근이었다.
인간의 의식적인 능력을 굉장히 신봉하는 나는 내 자신의 모습에서 나의 가족의 영향을 그렇게 많이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내 평생을 같이 살아온 사람들이니만큼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고는 말을 못 한다.
하지만 '나의 가족이 나를 파악하는데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나는 '그다지'라는 대답을 떠올릴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가족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있어봤자 그들의 직업이 무엇인지 ㅡ 이 사항은 굳이 내가 알려고 했다기보다 그냥 어쩌다보면 알게되는 것 같다 ㅡ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자식의 외출 시간에 대해 관대한지 ㅡ 관대하지 못하면 일단 만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ㅡ 정도에 불과했다.

가족으로부터 알 수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은 그가 가족과 얼마나 큰 유대감을 느껴왔는지, 그리고 현재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미래에는 어떻게 느끼게 될 것인지를 따져보기 이전엔 아예 논할만한 대상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의 이런 저런 경험이 한 사람의 무의식에 자리잡아 마치 이기적인 유전자와 같이 배후에서 그 사람의 삶의 전반을 조종한다는 프로이트적 접근을 잘 믿지 않는 나는 더더욱 사람을 파악하는 것에 그 가족을 끌어들이는 방법론을 회의적으로 느낀다.
그래도 언젠가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대비하여 가족 접근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넘어가두자.

저 아이는 커서 자기 가족, 특히 어머니에 대해 썩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음식 취향과 심리학이라든지, 프루스트적 연상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한 사람의 정신적 성숙 과정을 이어달리기와 바톤 터치에 비유한 부분이라든지, 자의식에 빠져 타인에 대한 의식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다룬 부분 등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알랭 드 보통은 소설을 빙자한 이 에세이의 마지막에서 그 어느 것도 정도(正道)는 아니며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정신적 카오스성을 언제나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책을 마친다.

왜 머리를 올리지 않는지 나도 몰라. 그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안 할래. 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왜 치즈를 사각으로 자르고, 우리 집 우편번호 마지막 숫자가 왜 그렇게 됐는지, 이 나무빗을 어디에서 샀고, 직장까지 가는 데 정확히 얼마나 걸리는지, 자명종에 어떤 배터리가 들어가고 볼일을 볼 때는 왜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지는 이유가 없는 거야. 내 자신에 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 솔직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왜 모든 것을 당신에게 명쾌하게 설명해주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왜 사람들의 삶을 그런 바보 같은 전기들처럼 요약해야 하는지 말야. 내 안에는 나조차도 납득하기 어려운 괴상한 것들로 가득 차 있고 당신도 마찬가지일 거야. 책을 더 읽어야 한다는 걸 알아. 하지만 텔레비전이 더 좋은 걸 어떡해. 나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들한테 잘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저기압일 때에는 어쩔 수 없다구. 사람들에게 연민을 갖고 싶지만 싫어지는데 어쩌겠어.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만 행복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거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어도 자가용이 훨씬 편리하잖아. 아이를 갖고 싶지만 엄마처럼 될까봐 두려워.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겠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8시 15분이 지났고 기차 시간에 늦을 것 같다는 거야.

이강룡 씨의 번역은 정영목 씨의 번역과 상당한 차이점을 가진다는 점에서 나름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일단 내 맘에는 더 들었다.
특히 대화를 처리하는 부분에서 좀 더 직설적인 느낌을 주는 반말을 선택함으로써 더 피부로 와닿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평범한 서술 부분에서는 정영목 씨의 번역이 더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같은 책을 두고 두 사람의 번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너를 사랑한다는 건'까지 읽을 생각은 없으므로 번역 이야기는 이 정도만 하고 넘어가자.

전반적으로 좋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써먹으면 큰 웃음을 유발할 수도 있을만한 야한 이야기를 하나 인용한다.
내가 언젠가 이 이야기를 하더라도 대충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준다면 고맙겠다!
참고로 이 이야기의 화자는 여자다.

이왕 한 김에 더러운 얘기도 하나 해줄게. 지금 막 기억났어. 충격받지 마. 아주 지저분한 얘기거든. 거리를 걷던 한 남자가 '정액 한 병에 50파운드'라고 적힌 광고를 봤어. '야, 돈 좀 되겠는데?'라고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정액 한 통을 만들었어. 그리고 나와서 걸어가는데 아래쪽에 '정액 한 병에 100파운드'라고 적혀 있는 거야. 그래서 또 들어갔고 100파운드를 벌었어. 그런데 그 아래쪽 길에 '정액 한 병에 1만 파운드'라는 광고가 있는 거야. (중략) 남자는 너무 지쳐있었어. 하지만 어쨌든 한번 해보기로 결심했지.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었지만 그래도 끈기 있게 기다렸지. 그런데 앞에 어떤 여자가 보이는 거야. 깜짝 놀랐어. 여자가 서 있을 줄이 아니잖아. 여자가 줄을 잘못 선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깨를 톡톡 건드렸어. '실례지만 줄을 잘못 서신 것 아닌가요?' 그러자 여자가 그랬어. (이사벨, 그 여자 흉내를 내려는 듯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다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으음으음.'
  1. 내가 읽었던 책 또한 이 책이고. [본문으로]
  2. 나는 다시는 이 책이 출판되지 않을 줄 알고 절판된 책을 중고로 구입했다. [본문으로]

'A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이버 음악 이 주의 발견 - 국내 앨범 8월 첫째 주 40자평  (0) 2011.07.31
Pantera - Floods  (0) 2011.07.31
Kill Bill : Vol. 2  (0) 2011.07.31
바람직한 음악 감상법 2  (0) 2011.07.31
혜화, 동  (0) 2011.07.30
Kill Bill : Vol. 1  (0) 2011.07.28
양철북 2  (0) 2011.07.25
Shakira - Rabiosa  (2) 2011.07.24
바람직한 음악 감상법 1  (0) 2011.07.23
양철북 1  (0) 2011.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