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Blechtrommel

| 2011. 8. 7. 13:43

어떻게 그 난해한 작품을 영화화했을까 궁금해서 보고야 말았다.
결과는 실망만 가득.

양철북
감독 폴커 슐뢴도르프 (1979 / 독일)
출연 마리오 아도프,데이빗 베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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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1권을 읽으면서 나는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에이젠슈타인 풍이 잘 어울릴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연출력은 나의 기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본다.
꼬마 오스카의 극적인 성장이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소설로 따지면 2부가 끝날 무렵까지의 스토리를 적당히 간추려 주요한 장면을 스크린으로 잘 옮겼다.
1979년 깐느 영화제에서 '지옥의 묵시록'과 동반으로 황금 종려상을, 같은 해 아카데미에서는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종이에서 스크린으로의 전이가 잘 이루어졌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만 12살의 소년이 성행위 장면이나 구강 성교 장면을 직접 연기했다는 점 때문에 이리저리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원작의 그로테스크함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엄청나게 거슬리는 점은 아니다.
정말 거슬려야 할 것이 있다면 원작 소설이지, 절대 이 영화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것.

하지만 나는 절대로 이 영화가 훌륭한 영화라고는 말을 못 하겠다.
우선 저자 귄터 그라스가 어느 정도 영화 제작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최악에 가깝다.

좌측이 오스카, 가운데가 귄터 그라스, 우측이 감독.


소설을 읽은지 얼마 되지 않은 나조차 제한적이다 못해 기근에 가깝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분량의 나레이션 때문에 흐름을 따라가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다.
원작 소설에서 보여지는 오스카라는 기형적 존재의 1인칭 시점을 이 영화는 전혀 살려내지 못했다.
다른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고, 배경 설명 역시 부족했다.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들이라면 장면과 장면 사이의 비유기적인 구성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거의 장담할 수 있다.
방대한 양의 소설을 너무 짧은 분량으로 편집했다.
차라리 영화를 두 편으로 제작했더라면 더 나은 영화가 나왔을텐데.

이 영화는 '양철북'이라는 소설의 핵심을 담아내는 것에 실패했다.
비꼬아서 말하면 이 영화는 그냥 몇몇 사람들의 변태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꼬맹이가 섹스를 한다거나 말대가리로 뱀장어를 잡고 하는 그런 장면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자극적인 심리를 만족시키기 위한 일종의 기괴한 영상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로테스크함이 소설 '양철북'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 귄터 그라스가 중점을 둔 부분은 아니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 자신도 '양철북'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영화를 보고 소설을 판단해버릴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연출력도 기대보다는 부족했다.
더 원색적이고 더 충격적인 장면을 예상하고 있던 내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주니어 버전으로 순화된 '양철북'이었다.
카메라워크도 너무 평범했다.
음악 역시 귀에 꼽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캐스팅까지 비판할 수는 없다.
배우들의 연기는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특히 꼬마 오스카의 표정 연기는 일품이다.

이 놈 눈빛 좀 보소.


말을 하지 않고 북을 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눈빛이나 표정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오스카라는 캐릭터의 특성을 잘 포착해냈다.
원래부터 소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베브라 역의 배우 또한 상당한 내공이 실린 연기를 보여준다.
확실히 단순한 꼬마가 연기했던 오스카보다 진짜 소인인 어른이 연기한 베브라가 더 자기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고 생각한다.
얀 브론스키나 아그네스 콜야이체크, 알프레트 마체라트를 연기한 세 남녀도 각자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우유부단함, 답답함, 무능력함 등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마리아 역으로 나온 카타리나 탈바흐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생겼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그녀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를 끝까지 보기가 꽤나 힘들었을 정도.
약 1분 20초쯤에 등장하는 백인 소녀가 마리아다.


전체적으로 실망스럽다.
'지옥의 묵시록'과 같이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그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에 대한 모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