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하지마

| 2012. 1. 9. 18:53

나는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것을 상당히 꺼리는 편이고,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도 별로 즐기지 않는다.
대신에 한 책을 읽는 과정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영화의 경우에도 사정이 된다면 ㅡ 즉,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가 아니라면 ㅡ 다시 보고 싶은 부분은 돌려서 다시 보고 넘어가는 편이다.
고등학교 이후에 내가 여러 번 읽은 책으로 기억나는 것은 안정효의 '하얀 전쟁'밖에 없고, 영화의 경우에는 '페인티드 베일', '비  카인드 리와인드', '캐딜락 레코드', '시티 오브 갓' 정도가 가까스로 떠오른다.

그런데 여기 고등학교 이후로는 최소 5번, 내가 그것을 처음 읽었던 중학교 2학년부터의 일까지 따지자면 최소 8번은 읽은 작품이 있다.
그것이 바로 거지 같은 선생 영길이와 함께하는 반(半) 판타지성 학원물 '반항하지마'다.

내 인생 속에서 '반항하지마'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큰지는 중학교 3학년 때의 일화를 소개함으로써 어느 정도 설명을 대신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학교와 사회에 대한 불신을 무럭무럭 키워나가던 연북중학교 3학년생 이한결(16세)의 어느 창의적 재량, 또는 도덕 수업 시간이었다.

이어지는 글이 재미없을까봐 짤방은 흥미로운 걸로!


똥똥해서는 머리통과 목, 그리고 어깨 라인이 일치되는 몸매를 자랑하던 그 여교사는 그 날 사뭇 흥미로운 과제를 들고 왔다.
대충의 내용은 여기서 묘사된 '나의 인생관 게임'과 흡사하다.
우선 나눠준 교과서 크기의 갱지를 이리저리 접어서 칸을 만들고, 그 칸에 각각의 항목에 해당되는 대상을 쓴다.
각각의 항목이란 뭐 예를 들어서 자신의 장래 희망이라든지, 뭐 소중한 사람이라든지 하는 것들로 나름 바로 바로 답을 하기엔 망설여지는 주제를 잘도 골라놨다.
그리고 1라운드가 시작되면 그 중에 반을 버린다.
2라운드에서 또 반을 버린다.
이런 식으로 최종 2개의 카드만 남기고, 결국에는 그 중에서도 하나를 버린다.

이 프로그램이 의도하는 바를 봤을 때 결국에 남게 되는 그 카드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카드를 남기기까지 내가 어떤 어떤 가치들을 포기했는지 그 과정이 훨씬 중요한 놀이가 아닐까.
어쨌든 나는 좋아하는 사람 또는 가족 같은 사람을 나타내는 대상은 쉽게 쉽게 버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되도록이면 남겨두려고 했던 것은 조금 더 추상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소중한 것들을 내 손에서 버리고 버리면서 이제는 딱 2개만 남았을 때, 내 책상 위에는 '영길'이라는 카드가 남아 있었다.
나는 마지막 단계에서 엄청난 고민 끝에 '영길'을 버렸는데, 정작 내가 마지막에 남겼던 카드에 뭐라고 적혀있는지는 금세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 정도면 나의 사춘기 시절을 곁에서 지켜준 것은 가족도, 친구도, 여자 친구도 아닌 영길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리라.

그리고 또 하나가 더 있는데, 그건 바로.


나는 그만큼 '반항하지마'에 나오는 영길의 모습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사실 영길이라는 캐릭터와 나라는 사람 사이엔 공통점이 거의 없다.
엄청난 HP를 가진 그에 비해 나의 스태미너는 매 순간 딸피에 머물러 있는 반면, 나의 INT 수치는 그의 것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를 찍는다.
상남에서 엄청나게 이름을 날리던 양아치 폭주족인 영길과 이 좁은 나라에서 만큼은 나름 인정 받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ㅡ 아직 대학교는 졸업하지 못 했지만 졸업의 그 날까지 별 일이 없으리라는 전제 하에 ㅡ 나온 나.
후지산 같은 근성으로 자기 주변의 일을 불도저 같이 처리하고, 아주 간단한 몇 가지 인생의 법칙을 기반으로 주변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와, 진득함과는 아주 거리가 멀며 복잡하기 짝이 없는 개똥 철학으로 중무장하고 있는 나.
이런 상황에서 내가 영길의 삶에 그렇게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영길이야말로 내 무의식적 자아가 갈망하는 욕망의 투상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진정한 '남자'가 되고 싶어하는 나는 그보다 더 올바른 '남자'적 요소를 많이 갖춘 캐릭터를 접한 적이 없다.
실제의 세계에서든, 가상의 세계에서든 말이다.

물론 이 놈의 만화는 비현실적이기 짝이 없다.
말도 안 되는 캐릭터가 밥 먹듯이 등장하며, 그 밥 먹듯이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더 말도 안 되는 일들,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수준의 그런 난이도를 가진 일들을 더 밥 먹듯이 행한다.
게다가 중간 중간 등장하는 그 일본 만화 st.의 오글거리는 진부함까지 고려한다면 우리가 대개 재미있다고 말하는 다른 여러 만화들과 '반항하지마'를 구분해주는 특별함 같은 것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오히려 이보다 더 훌륭한 작화와 내러티브를 가진 수작들과 비교했을 때 '반항하지마'는 용의 꼬리 정도에 지나지 않는 만화일지도 모른다.

상식적으로 저런 바스트를 가진 중학생이 어디 있겠나. http://blog.naver.com/jhj900307/140100682763


하지만 여전히 나는 영길이라는 캐릭터가 갖는 매력을 포기할 수 없다.
나는 아직도 이 만화를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난 뒤, 그의 삶에 대한 태도와 그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특히나 행동의 규약이 되는 조항들이 종류나 내용 면에서 아주 간단하다는 것은 내가 살면서 끊임없이 견지해야 할 점이다.
내 자신에게 정말로 자신이 있다면 그런 나 자신을 꾸미기 위해 나를 둘러싼 온 사방에 개똥 철학으로 똥칠을 하기보다 차라리 나를 당당히 드러내고, 주변은 깔끔하고 단정하게 정리하여 모두가 의심과 오해와 편견 없이 나를 바라보게끔 해야 한다.
나에 대한 신용도가 상승할 것은 자명한 일이요, 그런 신용도를 바탕으로 하는 일이 좋은 결과를 불러오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실수를 한 것이 있다면, 고의가 아니더라도 잘못을 저질렀다면 빨리 사과하고 손톱만큼도 안 되는 자존심을 지키려는 고까운 태도는 빨리 버려야 할 것이다.
방법론적으로 영길의 길(道)을 똑같이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의 이와 같은 삶의 태도를 내 언행의 저변으로 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닌가!

'반항하지마'를 논할 때 나와 영길의 페르소나적 관계를 이 이상 논하는 것은 썩 옳지 못한 방법이므로 ㅡ 이미 지나치게 많이 사소한 이야기를 지껄인 것 같긴 하지만 ㅡ 여기까지만 한다.
이 25권의 만화는 생각보다 넓은 분야의 이야기를 다룬다.
처음에는 하나의 반 이야기로 시작을 했다가 점점 학교의 문제로 넘어가더니 결과적으로는 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교육이라는 분야가 기형적인 구조로 비대해지면서 다른 각종 사회 분야와 혼란스럽게 뒤섞인 상황 속에서, 저자 후지사와 토오루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가족 문제를 다룬 일반적인 사회 분야의 이야기들을 불가피하게 건드린다.
이야기의 주제가 다양해질수록 그 이야기에 관련된 사람도 다양해진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우리는 학생의 입장에서, 일반 교사의 입장에서, 담임의 입장에서, 교감과 교장의 입장에서, 그리고 교장을 넘어서는 학교 운영진의 관점에서, 교육이라는 백년지계의 방향을 세우는 위정자의 입장에서, 또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학교는 마쳤으나 그 이후 학교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또는 학교를 제대로 마칠 수 없었던 사람의 입장에서 학교와 교육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후지사와 토오루는 때로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교육관을 전달한다.
갈등 구조를 구성하고 그 갈등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우리가 기존에 취해왔던 방식, 즉 문제의 근본은 방치한 채 일시적인 응급 처방만을 조치하고 넘어가거나 갈등의 쌍방 중 어느 한 쪽에게만 해소감을 주는 그런 방법이 아닌 서로가 이길 수 있고 상생할 수 있으며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후지사와 토오루가 제시하는 그 결론이란 그가 가정한 비현실적인 전제에서만 가능한 현실 방관적 이상론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반항하지마' 속의 등장 인물들과 그들이 속한 환경과 상황이 이미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항하지마'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만은 없다.
최소한 독자들은 영길과 그 주변 인물들간의 갈등의 양상을 보면서, 그 갈등이 점차적으로 해소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교육의 참 의미는 무엇인지, 교육자가 지녀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반대로 교육을 받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와 같은 핵심적인 주제에 대해 우리가 손쉽게 옳다는 것은 알 수 있으나 막상 실생활에서는 가볍게 잊고 지내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는 장을 마련한다.
거기에 가끔은 교육에 대한 이야기만을 다루는 것에서 벗어나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에 임하는 태도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몇몇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한 사람의 아버지로, 어머니로, 자식으로, 연인으로, 직업인으로, 그 각각의 역할에 대한 의무와 권리가 무엇인지 심사숙고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반항하지마'의 플롯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미 이야기의 결론도 알고 과정도 알지만 끊임없이 나 자신을 쇄신할 수 있는 도구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내는 만화가 바로 '반항하지마'이다.

http://mypoints.egloos.com/1135625


'반항하지마' 속 영길의 나이는 영원한 22세다.
일본의 경우 우리와는 다른 태어날 때 0살의 나이 체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2011년 10월 19일 이후 나는 만화 속 그보다 1살이 많은 남자가 되었다.
해가 가면서 점점 더 이 만화가 유치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 삶의 구조가 이 만화가 완결된 2002년의 그것과는 점점 더 간극을 벌리고 있는 것도 여기에 한 몫하고 있을 것이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를 습득하며 가치관과 세계관을 빠르게 바꾸고 구축해가는 나의 상황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좀 유치하면 어때.
어차피 중학교 3학년 꼬맹이들의 이야기이고 원래 무엇이든 조금 손발 오그라들게 이야기하는 일본이 배경이며 진짜 무엇보다 그냥 웃자고 보는 만화가 아닌가.
따라서 여전히 하나의 연례 행사로 '반항하지마'를 읽을 것 같다.
비록 '반항하지마'가 하나의 고전으로 자리 잡을 만큼 대단한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지는 않으나,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이유로 최소 향후 몇 년 동안은 나의 삶에 있어서 좋은 모티프로서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써놓고 보니까 좀 오버한 듯.
그니까 간단하게 줄여서 읽기에 좋은 만화라는 뜻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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