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알토(Paloalto), 이보(Evo) 《Behind The Scenes》

| 2012. 8. 10. 19:03

기어코 리뷰를 쓸 차례에 힙합 앨범이 걸리고야 말았다.
안 그래도 제대로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하루밖에 없는 일정이었는데 대체 무슨 말을 써야 좋을지 모르겠는 힙합 앨범이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은 순간 눈 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이었다.
결국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매니아층의 비판 아닌 비난을 피하기 위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소리를 길게 늘인 글이 되고 말았다.

내 글이 워낙 형편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네이버에 올라온 페이지에서 내 글은 읽지 않고 전문가의 글만 읽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 친구, 글이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부기: 힙합 전문 필자가 아닌 관계로 앨범을 수 차례 반복해 감상하면서 주변의 자문을 구해야 했다."와 같은 방법으로 교묘한 수를 쓰다니!

원문에 가사를 인용하면서 "손떼"라는 단어를 네이버 뮤직 가사에 올라온 것 그대로 옮겨 썼는데 그것을 누군가 댓글에서 지적했다.
이 단어를 쓴 사람의 의도적인 가사적 허용이든, 의도치 않은 문법적 무지 때문이든, 또는 네이버 뮤직 담당자의 오타이든 일단 블로그에는 "손떼"를 "손떼" 그대로 둔 버전을 포스팅한다.

마지막으로, 원래는 리뷰에 제목을 분명히 달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막상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낼 때는 그 제목을 빼먹었던 모양이다.
기억을 되살려 이 포스트엔 내가 원래 붙이고자 했던 제목을 올려두었다.

선정의 변 :

딱히 빅 네임은 없는 한 주였다.
그나마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보아의 앨범이 기대에 못 미치는 느낌이 있었다.
네티즌 선정위원단이 여성 포크 뮤지션인 양양의 2집 앨범에 가장 높은 점수를, 팔로알토와 이보의 콜래보레이션 앨범에 그 다음 높은 점수를 준 상황에서 대중음악상 선정위원단의 높은 평가를 받은 팔로알토와 이보의 앨범이 이 주의 발견에 선정되었다.

앨범 리뷰 : 30세의 새로운 시작

2011년은 팔로알토에게 있어 데뷔 이후 가장 바빴던 한 해였을 것이다.
다양한 힙합 아티스트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팔로알토는 2011년에만 총 8개의 싱글과 1개의 EP 앨범, 1개의 믹스 테이프를 대중에 공개했다.
랩과 힙합 음악에 대한 자신의 강한 의지와 그에 못지 않게 탄탄한 실력을 검증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성과다.
그 팔로알토가 이보와 함께 힙합씬에 재등장한 것은 올해 6월.
차분하면서도 세련미를 갖춘 'Seoul(서울)'과 신나는 파티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 낸 'Do it like us' 싱글을 연달아 발매하며 새 정규 앨범을 공개하기 전에 필요한 관심 몰이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 7월 26일, 드디어 팔로알토와 이보의 콜래보레이션 앨범 《Behind The Scenes》가 공개되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기대 이상"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앨범이다.

《Behind The Scenes》앨범에 대해 받았던 첫 인상은 정성스러움이었다.
이미 언급했던 대로 지난 해에 음악적인 정력을 아낌없이 투자했던 팔로알토와 올해 상반기에 이미 정규 1집을 발매했던 이보의 상황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8번의 스킷 트랙 'Newyear's Eve'와 이미 싱글로 발매된 두 트랙을 제외하더라도 무려 10개의 트랙이 새롭게 공개된 셈이다.
피처링이 잦을 수밖에 없는 장르를 소화함에도 불구하고, 피처링 없이 팔로알토와 이보가 단독으로 만들어 낸 곡만 7개에 달한다.
그 중 타이틀 곡인 'Seoul'은 완성도 면에서 앨범의 절정에 서 있는 트랙이다.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으로 그려진 서울이라는 장소를 도시의 건조함과 무채색의 음울함으로 덧칠했다.
비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가사와는 대조적으로 힘을 빼고 부드럽게 내뱉는 랩을 구사한 것 역시 훌륭한 선택이다.
이어지는 트랙인 '두려워'도 귀에 착착 감기는 트랙이다.
대개 격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사랑과 연애라는 소재를 담담하게, 다르게 말해 진부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려냈다.
대체적으로 비슷한 분위기지만 이보다 랩에 좀 더 많은 감정을 실은 'Crashout'도 주의 깊게 들어볼 만한 트랙이다.

하지만 몇몇 트랙에서는 다른 트랙에서 보이는 치밀함이 엿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여태까지의 디스코그래피를 훑어봤을 때 항상 주류와는 조금 다른 노선을 취해온 팔로알토와 이보의 취향을 고려하면, 거기에 이들의 나이가 단순히 치기 어린 패기만으로 승부수를 띄우기엔 다소 많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Do it like us'나 'Louder', '오렌지족' 같은 트랙의 진부한 내러티브는 실망스럽다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섹시한 여자와 쿨한 남자들이 난무하는 파티에서 그녀를 꼬시고 그를 유혹하는 이야기는 낡을 대로 낡은 패러다임의 잔재가 아닐까.
그러니까 문제는 수단이라기보다 메시지다.
왜냐하면 여전히 팔로알토와 이보 특유의 플로우는 살아 있지 않은가.

이와 같이 앨범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인상이 남을 수 있는 이유엔 마지막 트랙인 'Yeah'가 기여하는 바가 크다.
비록 이들이 앨범 내외의 여러 부분에서 30이라는 숫자, 30이라는 나이가 갖는 상징성을 강조하긴 했지만,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리라는 그 메시지가 이 둘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환하게 비추는 듯 하다.
특히나 관심이 가는 대목은 "나만 만족시키려 했던 내 노래가 이제는 꽤 묻었지 너희들의 손떼가"다.
현대에 오면서 가장 대중적인 예술이 되어버린 음악에서, 더 이상 자신만이 목소리만을 고집하는 밈(meme)은 자연적으로 도태되기 십상이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없다면 더더욱 우물 안에 갇히기 쉬운 힙합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할 수 없는 그 핵심을, 30세 동갑내기 듀오는 이미 깊이 깨우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팔로알토 & 이보라는 팀으로서의 또는 팔로알토와 이보라는 개인으로서의 음악적 행보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단지 팔짱을 끼고 앉아 지켜보는 것은 옳지 않다.
열렬한 관심으로 우리들의 "손떼"를 묻혀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팬으로서 가져야 할 바람직한 의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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