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탐정

| 2012. 8. 15. 21:18

클리셰의 극치를 이루는 칠판 신이 어김없이 재등장했다. http://www.perekacerita.com/2011/05/detective-2.html

원래 시리즈가 있는 영화를 보면 시리즈를 연달아 감상하는 것이 보통인 내가 《C+탐정》의 후속작인 《B+탐정》을 바로 감상하지 않은 이유는 굳이 지난 편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어야지만 후속 편의 이야기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종류의 영화가 아님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B+탐정》에 나오는 내용 중에, 전편에 등장했던 이야기는 주인공인 곽부성의 부모님이 오래 전에 죽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사실 정도다.
영화의 주가 되는 탐정 이야기만 놓고 보면, 전편의 이야기와 그 어떤 교집합도 공유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그 스토리 라인을 제외한다면 전편과의 차이점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비슷한 방법론을 구사하고 있다.
전작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배우들의 연기나 색감, 로케이션을 포함한 촬영 기술 등만 비슷한 것이 아니다.
《B+탐정》은 전편에서 버리고 왔어야 할 요소들, 예를 들어 억지스러운 스토리 진행이나 어설픈 부수적 에피소드들까지 그대로 가져 오는 불필요한 답습을 벌이고 있다.

최악이라는 평을 내려도 싼 그 엔딩만큼은 가져오지 않았지만, 이번 편의 엔딩 또한 전혀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분위기는 고조시킬 대로 고조시켜 놓고는 전혀 단 1의 카타르시스도 느껴지지 않는 맥 빠지는 결말이다.
한껏 위기를 극복하고 화장실에 가서 딱 바지를 내렸는데 힘 없는 방구만 흘러 나오는 그런 느낌이다.
이번 영화에서 특히나 아쉬운 부분은 범인의 심리 분석에 관한 부분인데, 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 같은 관객들에겐 영화에서 제시하는 인과 관계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정리하면, 제목이 C+에서 B+로 바뀌었다고 해서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 영화가 노골적으로 세 번째 이야기가 있음을 극후반부에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제목이 "A+탐정"이라 붙여질 것이 거의 100% 확정적인 상황에서 그 영화가 A+가 될 확률이 0에 수렴한다는 것이 문제다.
감독에게도 그리고 배우들에게도 트릴로지라는 업적을 달성하는 것이 상당히 큰 의미를 갖겠지만, 이렇게 망할 것이 뻔하거나 전혀 발전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마지막 편을 만드는 것은 업적보단 흑역사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어떻게 장담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내러티브를 구사하면서 획기적인 전환을 할 수 있었던 《B+탐정》으로의 과정에서 이 정도의 뻔한 움직임만을 보여준 것을 보면, 다른 한 편의 영화가 더 나온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기대할 수 있는 변화는 굉장히 제한적인 것일 거란 예상을 내놓을 수 있다.
1과 2 다음엔 3이 나오는 것만큼 자명한 예상이다.

제발 무리한 시도는 하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