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 Folds Five 《The Sound Of The Life Of The Mind》

| 2013. 2. 26. 15:45

갑작스럽게 당첨된 벤 폴즈 파이브 공연 이벤트 덕분에 안 그래도 앨범을 감상할 시간이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술 먹고 씨름하느라 대부분 날려버리고 공연을 보러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야 겨우 듣기 시작, 공연 시작 전까지 몇 시간 듣고 공연에서 직접 라이브로 몇 곡 듣고 그 뒤로는 한 번도 다시 들어본 적이 없는 앨범의 리뷰.

벤 폴즈 파이브의 역사야 어느 정도 머리에 꿰고 있는 나지만 리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글을 쓰기 전, 위키피디어에 한 번 들어가봤다. 현재 벤 폴즈 ㅡ 또는 벤 폴즈 파이브 ㅡ 라이브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전설의 노래 'Army'가 수록되어 있는 3집 《The Unauthorized Biography of Reinhold Messner》이 발매된 지 13년 만에 다시 세상에 등장한 앨범이다. 13년 뒤에 이렇게 사이좋게 다시 뭉칠 거였으면 왜 여태까지는 못 그랬던 건지 새삼 궁금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에 와서라도 예전의 팀워크를 다시 보여주고 있으니 잘 됐다면 100번 잘 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끈끈한 인간미 말고, 그들의 음악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벤 폴즈 파이브라는 아티스트 "집단"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이들이 발매한 정규 앨범을 연대기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맞는 접근법일 것이다. 만약 이 관점을 채택한다면 벤 폴즈 파이브는 기존의 다소 단조롭던 폭발적인 피아노와 드라이브 걸린 베이스, 미니멀한 드럼의 패턴에서 완전히 벗어나 전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다양한 소리들, 다양한 작법들이 총천연색으로 구현되어 있다는 평을 내릴 수 있으리라. 앨범 속표지에는 "13년의 침묵이 낳은 놀라운 수작" 따위의 문구가 굵은 글씨로 인쇄되어 있는 흔한 찌라시가 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이런 평은 휴지 쪼가리보다도 더 의미가 없는 녀석이다. 왜냐하면 누가 뭐래도 벤 폴즈 파이브의 음악은 벤 폴즈의 주도로 만들어졌던 음악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벤 폴즈 파이브의 잠정적 해체 이후 벤 폴즈가 혼자서 걸어왔던 음악적인 행보의 흐름에서 이번 앨범을 조명하는 것이 당연히 옭은 방법이다.

그렇다면 벤 폴즈 파이브라는 그룹에서 뛰어 나온 벤 폴즈의 음악은 어땠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벤 폴즈 파이브라는 그룹은 벤 폴즈의 천부적인 음악성을 담아내기에는 좁은 그릇이었다. 솔로 활동 초기부터 알 수 있었던 건, 벤 폴즈가 피아노, 베이스, 드럼의 단조로운 구성보다 훨씬 더 많은 소리를 구상해내고 그것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었던 인재라는 것이며 그런 특징은 그의 후기 솔로 앨범들, 《Way To Normal》과 《Lonely Avenue》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전 세계적으로 그 어디에서도 대중적인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얻는 것엔 실패했지만 ㅡ 그리고 여태까지의 성과를 봤을 때 앞으로도 그가 그런 이미지를 얻는 것은 꽤나 힘든 일처럼 보인다 ㅡ 벤 폴즈는 주목 받지 못한 천재다. 천재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나지만 벤 폴즈에게 만큼은 충분히 어울리는 말이라고 본다.

다시 원래의 화제로 돌아가자. 결론적으로, 벤 폴즈 마지막 정규 앨범인 《Lonely Avenue》까지의 행보로부터 바라 본 벤 폴즈 파이브의 "신보"는 사실 실망스럽기가 그지 없다. 《The Sound Of The Life Of The Mind》는 벤 폴즈가 자신이 만들고자 했던 음악의 본질을 자신조차 어쩔 수 없었던 틀에 담아내느라 진땀을 뺀 흔적이 역력한 앨범이다. 온전히 자신의 이름만 달고 나왔던 앨범이었다면 이보다 훨씬 더 풍부한 소리를 낼 수 있었을 트랙을 심심치 않게 들어볼 수 있었다. 더 최악인 것은 ㅡ 이건 아마 벤 폴즈 파이브와 벤 폴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점인데 ㅡ 벤 폴즈 파이브 시절의 음악에의 회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정말 억지스럽게도 당시의 소리를 "카피"한 트랙마저 몇 곡 들어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앨범을 들은 시간 자체는 정말 짧았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실망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주 대표적인 예가 다음의 트랙이다. 추천 트랙이 아닌 안 좋은 예로서 소개한 트랙이니 알아서들 듣길 바란다.

하고 싶은 말을 짧게 줄이면, 이기적인 팬의 입장에서 벤 폴즈는 벤 폴즈의 음악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벤 폴즈 파이브는 이제 추억의 대상으로서만 회상해야 하는 첫 사랑 같은 존재다. 실제로 만나보면 이미 결혼을 하고 애까지 생겨서 피부도 조금 안 좋아지고 살도 조금 쪘으며 번화가에 화장도 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고 있을 그런 첫 사랑이다. 아름다운 추억을 무참하게 깨버릴 만남, 두 번은 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