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정에 쫓겨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단지 글빨이 잘 받아서인지, 아니면 알게 모르게 어떤 내용을 쓸 것인지 머리 속에 정리가 끝나 있어서인지 채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채 4시간도 되지 않아서 마무리를 짓고 담당자에게 보냈던 원고다.
분명히 나얼이라는 뮤지션을 다시 보게 만든 계기가 된 앨범이었지만 독실한 종교인들에 대한 근본적인 반발심과 자신의 신념으로 타인의 행동을 규정지으려고 하는 이른바 "개독"에 대한 정당한 비판 정신이 베이스에 깔리다 보니 뭔가 앙심을 잔뜩 품은 글을 쓰고 싶어졌더랬다.
하지만 신상이 털릴까 무서웠던 나는 결국 그 누가 보더라도 비판의 메시지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엉성한 글을 쓰고 말았고, 나름 기대를 가지고 있던 지인들에게 작은 실망감을 안겨주게 된 것 같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리뷰 제목에 회심의 돌직구 ㅡ 하지만 그마저도 내가 이렇게 드러내지 않으면 그 누구도 몰랐을 ㅡ 를 숨겨 놓았다.
다빈치 코드를 능가하는 이한결 코드의 숨겨진 비밀은, 제목 문구의 11번째, 9번째, 4번째, 13번째 글자를 차례대로 읽으면 알 수 있을 것.
선정의 변 :
오랜만에 다양한 장르의 앨범들이, 그것도 어느 하나 질적인 면에서 빠지지 않는 고품질의 앨범들이 후보로 올라온 한 주였다.
비스윗의 발랄한 락 넘버들부터 장기호나 유정균의 감성 풍부한 포크 사운드, 신현필의 스탠다드 재즈를 거쳐 아이돌 음악의 완성을 들려준 동방신기까지, 전반적으로 훌륭한 평을 내릴 수 있는 앨범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어떤 앨범도 나얼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엔 부족했다.
대중상 선정위와 네티즌 선정위의 고른 점수를 받은 나얼의 첫 솔로 정규 앨범이 이 주의 발견으로 선정되었다.
앨범 리뷰 : 이 이상 개인 뮤지션이 얼마나 독보적일 수 있을까
이미 식상할 대로 식상해진 말이지만 그의 첫 '정규 솔로 앨범'이니 다시금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나얼이 국내 정상급의 뮤지션이라는 사실에 이견을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새천년의 여명이 막 밝았던 그 시절을 오롯이 기억하는 나이대의 사람들이라면 브라운 아이즈라는 보컬 그룹이 처음 데뷔한 이래로 나얼이라는 한 명의 뮤지션이 한국 대중가요계에 끼쳐왔던 영향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브라운 아이즈의 잠정적 해체 이후, 브라운 아이드 소울에서의 활동과 여러 힙합 뮤지션들과의 콜래보레이션 등으로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뽐내 왔던 나얼이 데뷔 10년여 만에 드디어 정규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그의 음악을 좋아해 왔던 사람이든 아니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반겨야 할 소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음악적 역량'이라는 말을 재고해 보면, 과연 나얼이 보컬로서의 신들린 가창력 외에 곡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곡의 제작 전반에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 여태까지 그가 불러왔던 수많은 히트곡들에 그의 '음악적 역량'이 어느 정도는 녹아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지휘 하에 만들어진 음악을 듣기 전까진 '혹시나?' 또는 '과연?' 하는 의심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나얼은 분명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을 이런 의심의 뿌리를 자신의 첫 정규 솔로 앨범으로 완벽하게, 흔적도 남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뽑아버렸다.
사람마다의 취향 차이로 돌릴 수 있겠지만, 최소한 R&B와 소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Principle Of My Soul》 앨범은 70년대와 80년대의 그 분위기를 놀라울 정도로 잘 재현해낸 양질의 트랙들로 가득 차 있는 앨범이다.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여타 대한민국 R&B 가수들과 아예 클래스가 다른 인스트루멘탈을 구현했다는 점이다.
제대로 나얼의 앨범을 틀은 것이 맞는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던 그루브한 훵크 'Soul fever', 어렴풋하게 들으면 마빈 게이까지 떠올릴 수 있게 하는 'You & me'의 나긋나긋하고 유려한 발라드, 누구의 평 마따나 토토를 연상시키는 풍부한 세션 사운드가 매력적인 'My girl'까지, 어떤 밴드라 할지라도 쉽게 구현해내지 못할 수준의 연주다.
가창력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는 것 자체가 모두 사족이 될 만큼 정점에 올라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리라.
Eb 노트를 무리 없이 찍는 타이틀 곡 '바람기억'도 그의 가창력을 대변하는 곡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지만 역시나 이것이 나얼이 직접 부른 노래가 맞는지 청자의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른바 팔세토 창법의 'You & me'야말로 나얼의 보컬적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트랙이 아닐까 한다.
노래를 잘하거나 곡을 잘 쓰거나 둘 중의 하나만 재능이 있어도 훌륭한 음악인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는데, 두 필요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는 나얼에게 수많은 찬사가 떨어지는 것은 되려 당연한 일이다.
그의 음악적 역량에 대한 모든 의심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넘겨버리면 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앨범에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면 위에서 언급한 노래와 몇몇 브라운 아이즈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팝 발라드를 제외한 나머지 곡에서 종교적인 색채가 진하게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앨범 전체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러한 특징은 더더욱 두드러져 과연 이 앨범을 R&B 소울 앨범으로 평가할 것인지 아니면 CCM 앨범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지 평론가는 물론 일반 대중들마저도 헷갈리게 할 가능성이 높다.
중의적인 표현으로 쓰인 앨범의 소울(soul)이라는 단어에서, 나얼 본인 또한 두 정체성의 간극에 대해 명확한 구분을 내리지 못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본격적으로 대중음악에서 종교적 메시지의 역할이라는 거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은 아니다.
단지 적지 않은 대중들에게 그의 고집에 가까운 신념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정도의 이야기일 뿐.
왜냐하면 《Principle Of My Soul》은 나얼이 자신의 음악에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고 했는지에 관한 모든 이념적 요소를 뛰어넘어 정성스럽게 준비한 주옥같은 트랙들이 한 데 모여 있는, 한 음악인으로서의 노력이 집대성된 앨범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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