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눈여겨 보았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라는 이름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럴 때는 인터넷의 순기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0과 1의 조합으로 사람에게 문화적인 풍요를 안겨다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디지털 뽕을 좀 빨긴 했으나 그의 작품을 이렇게 타이핑 몇 번만으로 만날 수 있는 것엔 사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라는 인물의 위대함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타르코프스키의 작품 중에서도 상업적으로나 ㅡ 소비에트 연방에서 무려 총 1670만의 관객을 끌어모았다고 한다 ㅡ 평단의 반응으로나 ㅡ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ㅡ 가장 성공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 설령 영화가 내게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을지라도, 어디 가서 영화 좀 본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나 같은 소인배에게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라는 고유명사에 대해 아는 척이라도 한 번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이 얼마나 잃을 것이 없는 게임인가.
그렇다고 영화가 알려진 명성에 비해 그저 그랬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궁극적으로 영화가 관객들에게 주지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모호했던 것만 제외하면, 또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야기에만 집중을 한다면 영화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보편적으로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 내적으로는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이반의 내부적인 소년 감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전쟁의 포화와 상상 속의 이상향이 이루는 극적인 장면 전환을 정말 물 흐르듯 완성했다. 어떤 장면은 내가 몇 차례나 되돌려 봤을 정도.
그다지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니지만 주인공 꼬마의 외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연기력도 대단하다. 소련 영화사에 대단한 족적을 남긴 배우가 되지 못한 것이 신기할 정도다. 동구권의 남자들 외모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아무래도 외모로 먹고 사는 배우들만 놓고 보자면 절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즈베즈다》의 주인공 장교라든지, 《이반의 어린 시절》에 나오는 이 이반이라는 친구, 또는 그와 처음으로 조우하게 되는 갈체프 중위로 나오는 사람이라든지, 가녀린 아쟁 총각이나 다부진 블라디미르 푸틴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남정네들의 매력은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는 것 같다.
마성의 눈빛. http://thesocietyforfilm.com/2013/05/ivans-childhood-2/
헛소리는 그만하고, 《베를린 천사의 시》의 분위기를 몰아 이대로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을 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때도 연초이고 하니 좀 더 느긋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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