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굉장히 지쳐 있었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저녁 약속을 가진 뒤 사무실까지 가는 것이 적잖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나는 약속 장소와 비교적 가까이에 있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 거실에 놓여 있던 탁자 위에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발견했다. 약 두 달 전쯤 기분 전환 삼아 읽어봐야겠다며 구매해서 사무실에 비치해놓고 여태까지 한 번도 펴보지 않았던 책이었다. 하루키의 책이라면 수불석권하며 섭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잤다가 일어났다가 밥 먹었다가 TV 봤다가 하면서 책을 읽었다. 25일 저녁 언젠가에 마지막 책장을 넘겼고 집에서의 퀘스트를 깬 것 같은 기분으로 집을 나섰더랬다. 수수하지만 은근히 치열했던 2013년의 크리스마스.
하루키의 책을 그렇게 많이는 읽어보지 않은 내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해변의 카프카》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좀 더 공격적으로 접근하면, 하루키라는 대단히도 재능 있는 스토리텔러의 작품인 만큼 참 읽기에 재밌는 이야기이긴 하나 그의 대표작들에서 무엇 하나 더 도드라지는 점이 없다. 주인공은 여전히 얌전하고 조용하며 몸은 적당히 말랐고 얼굴은 평범한 남자고, 여전히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며, 여전히 여자의 젖가슴과 젖꼭지에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그런 존재다. 역시나 근처에는 그에게 성적 자극을 주는 알레고리들이 둥둥 떠다니고 ㅡ 그것도 여럿이나! ㅡ 지극히도 "일상적인 일상"을 바탕으로 도입부가 구성되는 이야기며 ㅡ 이제 하루키 작품에서 죽음이라는 소재는 일상적인 소재가 되어버렸다. 대단하다고 표현해야 할지 진부하다고 표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ㅡ 적당한 미스테리와 적당한 카타르시스가 공존하나 결정적으로 임팩트를 주는 스토리라인은 부재하며, 마지막으로 엔딩까지 적당한 오픈 엔딩으로 독자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냥 그런 이야기다.
결정적인 임팩트와 그로 인한 흥분이란 이런 것이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시대의 거장이 쓴 책인 만큼 읽어서 손해보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하루키 같은 스타일의 작가는 상타를 치지 못하는 책이더라도 충분히 읽는 맛이 좋다. 이유는 그의 스타일리쉬한 문체에서 연유한다고 보는데,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평범하디 평범한 소재들을 매우 감각적이면서도 세련된 형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아래 이름에 대한 서술이 바로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거부를 해도 나 같은 문체 덕후는 하루키 뽕을 빨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하여 그는 '다자키 쓰쿠루'라는 하나의 인격이 되었다. 그 이전의 그는 무이며 이름이 없는 미명의 혼돈에 지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겨우 숨을 몰아쉬며 울음을 터뜨리는 3킬로그램이 안 되는 분홍색 살덩어리였다. 먼저 이름이 주어졌다. 그다음에 의식과 기억이 생기고 이어서 자아가 형성되었다. 이름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근거가 없는 이야기지만, 하루키 옹께서 나이를 먹은 탓인지 유난히 이번 작품에선 잠언적인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더라. 핀란드 사람들은 원래 그런 얘기를 좋아하냐는 식으로 얼버무린 감도 없잖아 있고, 여튼 재미있게 읽었던 글귀들을 더 소개하고 글을 마친다.
포스트를 한 줄로 요약하면, 여전히 하루키의 작품은 훌륭하다.
질투란, 쓰쿠루가 꿈속에서 이해한 바로는,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감옥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인이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힘으로 제압하여 집어 넣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거기에 들어가 안에서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철창 바깥에 던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가 그곳에 유폐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물론 나가려고 자기가 결심만 한다면 거기서 나올 수 있다. 감옥은 그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결심이 서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돌벽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것이야말로 질투의 본질인 것이다.
"우리네 인생에는 어떤 언어로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게 있는 법이죠." 올가는 그렇게 말했다.
과연 맞는 말이라고 쓰쿠루는 와인을 마시면서 생각했다. 남에게 설명하는 것만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것 역시 너무 어렵다. 억지로 설명하려 하면 어딘가에 거짓말이 생겨난다. 아무튼 내일이 되면 여러 가지 일들이 지금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그걸 기다리면 된다. 만일 명확해지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색채 없는 다자키 쓰쿠루는 색채 없이 그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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