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조 츠바키

| 2014. 10. 1. 00:36

  원래 일본 작품의 경우 우리말로 옮긴 제목을 적어왔던 터, 이번 작품처럼 우리말 번역이 전혀 없는 작품은 또 처음인지라 ㅡ 게다가 소녀춘(少女椿)이라고 하니 일단 당장 나부터도 무슨 뜻인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는 게 아닌가 ㅡ 그냥 위키피디어에 나와 있는 제목을 그대로 옮겨왔다. 실제 작품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하기 전에 이런 재미없는 도입으로 글을 시작하는 것을 보면 나도 어지간히 스스로의 원칙에 얽매이는 강박증 환자가 아닐 수 없다.

http://animedyum.blogspot.kr/2013/09/shoujo-tsubaki.html

  원작은 스에히로 마루오라는 작가의 만화로 1984년작이다. 내가 감상한 애니메이션 버전은 1992년 히로시 하라다라는 사람에 의해 제작된 것.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분이 언젠가 페이스북에 살짝 링크를 걸어둔 것을 잽싸게 담아두었다가 잠도 안 오는 어느 지난 밤에 틀어서 봤다. 아마 큰 일이 있지 않는 한 유튜브를 비롯한 열린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므로 꼭 지금이 아니다 할지라도 관심이 가는 분위기라면 감상해봄직한 작품이다.

  《쇼조 츠바키》를 감상하면서 얻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에로 구로'라는 단어다. 에로 구로는 에로틱과 그로테스크를 일본식으로 줄인 ㅡ 텔레비전을 테레비로, 에어 컨디셔너를 에어컨으로 줄인 것과 같이 구조적이나 의미적인 고려가 전혀 없는 순전히 음절 수만 줄인 말을 일본식으로 줄였다고 "나는" 표현하는 편이다 ㅡ 단어다. 사실 꼭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흔히 고어물이라고 부르는 일본의 여러 작품들을 조금이라도 감상해본 사람이라면 에로 구로가 어떤 분위기를 말하는 말인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관련된 위키피디어 항목들을 자세히 훑어볼 시간은 아직 없었지만 시간이 나는 대로 "에로 구로"라는 키워드에서 많은 정보를 알아나갈 계획이다. 사실 이런 장르의 작품들이 대개 그러하듯 작품 그 자체의 의미만을 놓고 보면 대단할 것이 없다. 스토리 라인이 탄탄한 것은 당연히 아니요, 표현 방식이 고상한 것도 아니요, 등장 인물이나 주요 소재에 감정 이입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사람을 잡아끄는 그 괴상한 매력에 한 번 빠지고 나면 그저 인스턴트 식품처럼 흥미가 당긴다.

  그런 면에서 《쇼조 츠바키》는 나에게 이런 장르의 작품을 찾아볼 수 있는 그 하나의 키워드를 던져준 것만으로 의미 있는 작품이라 평할 수 있겠다. 그 외의 모든 이야기는, 혹시라도 이 작품을 보게 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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