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Y

| 2011. 9. 18. 00:33

본 지가 일주일이 넘었는데 포스팅할 시간이 없어 기억이 많이 사라졌다.
드문드문 남아있는 기억 조각을 모아 담아서 간단하게 쓰고 넘어가야겠다.

XXY
감독 루시아 푸엔소 (2007 / 아르헨티나,스페인,프랑스)
출연 리카르도 다린,발레리아 베르투첼리,저먼 팔라시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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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이 영화의 제목 'XXY'는 키릴 문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크씨' 비슷한 발음의 영어 단어도 아니다.
고등학교 생물 공부를 해봤던 사람이라면 단박에 느낌이 올 수도 있을 XXY라는 세 알파벳이 나타내는 것은 사람의 성 염색체다.
일반적인 남성은 XY 염색체를 가지고 일반적인 여성은 XX 염색체를 가지는데 염색체의 분리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 XX와 XY라는 일반적인 조합 대신 일반적이지 않은 조합을 갖게 되는데 XXY는 그 일반적이지 않은[각주:1] 조합 중에 하나다.
XXY 성 염색체에 대한 연구를 처음으로 시작한 클라인펠터 박사의 이름을 따서 XXY 성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경우를 '클라인펠터 증후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클라인펠터 증후군은 쉽게 생각해 일반적인 남성 XY에 여성형 성 염색체 X가 하나 더 붙어있는 경우다.
클라인펠터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전반적으로 보통 남자와 다를 바가 없지만 체형 면에 있어서 다소 여성적인 경향이 나타나며 지능이나 성 기능 따위 등에 다소 불리함이 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각자의 인터넷 검색 능력에 맡기고 진짜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 'XXY'의 주인공은 클라인펠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자아이 같이 생긴 남자아이의 이야기다.
실제 연기는 1985년생 여자 배우가 담당했는데 바로 이 선택에서부터 'XXY'는 현실성을 포기하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극적인 요소를 좇는다.
클라인펠터 증후군은 그 의미에서 보자면 남성성과 여성성이 섞여있는 것이지만 현상으로 나타날 때는 평범한 남자와 거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15세라는 나이 설정 상 2차 성징이 채 나타나지 않았을 때이기도 하고 남성성이 겉으로 표출되지 않게끔 약도 복용하는 설정을 깔면서 여자 배우를 캐스팅한 것을 정당화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현실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조금 아쉬운 점이다.
왠지 아르헨티나라면 정말 소녀 같은 미소년 배우들이 많을 것 같은데 말이다.

전체적인 플롯은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방랑, 그로부터 오는 아픔과 시련, 그리고 마침내 찾아오는 불분명한 카타르시스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클라인펠터 증후군 환자를 조금 여성적인 면을 가진 남자로 그리지 않고 마치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로 그리는데 이 부분 역시 비현실성이 팍팍 느껴지는 부분이다.
꼭 에베루즈의 안헬 종족이 떠오른다.

http://blog.naver.com/01195679389/70009071966


그렇다.
안헬 종족의 일원으로 등장하는 노이슈라는 캐릭터는, 상냥하게 대해주면 후반부에 아리따운 여자가 되어 나타나고 그냥 무덤덤하게 대하면 후반부에 훤칠한 남자로 등장하는 아주 괴상한 존재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에 저런 변태적인 설정이 있다니, 정말 일본이 아니라면 존재할 수 없을 그런 캐릭터겠다.
각설하고, 'XXY'의 주인공 역시 노이슈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성기 수술을 받고 코르티코이드를 복용하면서 가짜 여자로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자신의 예외적임을 드러내고 여자 같은 남자로서 살아갈 것인지의 기로에 놓인 15살 아이.
여기에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있는 그 아이의 부모와, 성형외과 수술 전문의 부부와 여자로서의 주인공에 매력을 느끼는 그 부부의 아들과, 주인공의 비밀을 알게 된 그의 친구들을 끼워넣음으로써 갈등 상황을 만들어낸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나의 성 정체성을 의심했던 적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 영화가 시사하는 주제에 대해 별로 공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LGBT[각주:2] 영화제에 초청 받기도 했다는 것을 보면 나와는 다른 어떤 사람들에겐 다소 의미하는 바가 있을 수 있다고 추정할 수도 있겠다.
결국 내겐 설정이 다소 특이했을 뿐이지 별로 건질만한 건덕지는 없는 영화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르헨티나 영화를 봤다는 것, 정말 끄적이다가 끝내버린 스페인어 공부를 통해 'porque'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 같은 사소한 득(得)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친절하게 홍보 영상 올리면서 끝마치겠다.

  1. 위키피디어에 따르면 650명의 남성 중 1명 꼴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2.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머리 글자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