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 2011. 10. 8. 08:56

조지 오웰이 칭찬하는 책이란 무엇인지 ㅡ 물론 맹목적인 찬사는 절대 아니었고, 적당한 비판이 섞인 칭찬이긴 했지만 어쨌든 조지 오웰이 칭찬하지 않았는가! ㅡ 궁금해서 읽게 된 책.
그리고 나는 '걸리버 여행기'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아주 형편 없었던 영화 '걸리버 여행기'의 원전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책이었다.
이 책의 구체적인 내용에 토를 달 만한 지식은 없으므로, 언제나 그래 왔듯이 내 멋대로,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리라.

걸리버여행기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조나단 스위프트 (해누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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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스위프트가 가진 사고의 기반은 조지 오웰의 그것과 놀라우리 만큼 흡사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인간 세상의 문제를 집어 내는 법,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들의 성향 등 많은 부분에서 스위프트와 오웰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스위프트는 오웰에 비해 사람이 가진 천성적인 기질의 결함을 문제의 원인으로서 주목하는데 이는 스위프트의 시대와 오웰의 시대 사이에 기적에 가까운 과학 기술의 발전이 있었다는 것, 비록 '걸리버 여행기'에서 종교색은 느껴지지 않으나 ㅡ 이에 대해서는 나중 조금 더 언급된다 ㅡ 스위프트가 종교인 출신이라는 것 등을 이유로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대상을 한정시키자면 둘의 문제 제기는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정치, 사회, 경제적 구조는 그 구조 자체에 모순을 포함하고 있고, 그 모순은 다시 구조적으로 순환될 수밖에 없는 형태를 띄기 때문에 우리는 부조리의 뫼비우스의 띠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논리.
자연스레 '1984'가 떠오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뫼비우스의 '티'.


거인족의 나라 '브롭딩"라"그'의 국왕이 걸리버에게 한 이야기를 살펴 보자.
읽으면서 가슴이 뜨끔하는 것을 느낀다면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이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뜻이거나, 스위프트의 서술이 시대를 꿰뚫었다는 것일텐데 굳이 더 비중이 큰 이유를 꼽으라면 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내 작은 친구 그릴드리그여. 너는 네 조국에 관해 극도의 격찬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의회 구성원의 자질이란 때로는 무지·나태·사악함이 고작이라는 것, 그리고 법을 남용·왜곡·회피하는 데 자기 관심과 능력을 기울이는 자들이 그 법의 설명·해석·적용에 있어서 가장 탁월하다는 것을 분명히 입증했다.
네 조국의 어떤 제도들이 처음에는 그런 대로 괜찮은 것이었지만, 절반은 폐지되어버리고, 나머지는 부패 때문에 아주 희미하거나 완전히 변질되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네 말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도, 어떤 지위를 얻으려는 후보자들 가운데 덕행을 기준으로 한 사람을 선발한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보다 한층 불확실하게 보이는 것은, 사람들이 덕행 때문에 귀족이 되고, 사제들은 경건함이나 학식 때문에, 군인들은 모범적 행동이나 용기 때문에, 재판관들은 고결한 인격 때문에 승진하며, 국회의원들이 애국심 때문에 의회에 진출하고, 국왕의 고문들이 지혜 때문에 총애를 받는가 하는 점이다.
(국왕은 말을 계속했는데) 생애의 대부분을 여행으로 보낸 너 자신에 관해서 말한다면, 네 조국의 수많은 악습의 영향을 너는 지금까지 피할 수 있었으리라고 나는 기대한다.
그러나 네가 스스로 설명한 것과 내가 네게서 억지로 쥐어짜낸 대답들을 검토한 결과, 네 조국에 사는 원주민들이란 대자연이 지상에 기어다니도록 만든, 지겹고도 작은 벌레들로 구성된 가장 해로운 인종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정치 구조에 대한 비판은 다른 것들에 비해 훨씬 거세다.

누구나 인정하는 현상이지만, 정치적 육체인 상원과 하원, 그리고 대도시의 의회들이 자주 걸리는 질병들이란 장황하게 떠드는 기질, 열광적으로 변하는 기질, 그 외에 다른 식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기질, 두뇌에서 생기는 많은 질병과 가슴에서는 그보다 더 많이 발생하는 질병들, 두 손, 특히 오른손의 신경과 힘줄들이 심하게 수축되면서 일어나는 격심한 경련들, 우울증, 소화불량, 현기증, 정신착란, 악취나는 고름이 가득 찬 연주창 종양들, 입으로 치솟는 시고 쓴 거품과 찌꺼기, 개와 같은 식욕과 소화불량, 그 외에 언급할 필요가 없는 수많은 질병들인 것이다.

최고위 각료들이 판사들의 부패와 파벌의 증오를 악용하여 무죄하고 탁월한 인물들을 얼마나 많이 사형에 처하거나 귀양을 보냈던가! 얼마나 많은 악당들이 신뢰와 권력과 위엄과 재산을 누리는 최고위 관직들을 차지했던가! 

하지만 이 소설이 이런 식으로 우리 사회의 디스토피아적인 면만 다뤘더라면 명문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불평만 하는 사람과 어떤 식으로라도 해결 방안을 내놓으라는 사람의 차이는 천지만큼 크다.
다소 유토피아적이기는 하지만 스위프트는 이상적인 상황으로의 해결책을 넌지시 제시한다.
그 해결책이 '유토피아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실현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문제의 근본을 인간의 본성에서 찾기 때문인데 그런 면에서 현실적인 방법론의 부재가 다소 아쉽다.
오웰과 마찬가지로 반어적 용법을 즐기는 스위프트가 고의적으로 인류를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만드려는 자조의 성격을 띄는 술수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다 과도하게 영악한 인간 이성의 산물인 것을.

왜냐하면 그들은, 국가란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이므로, 누구나 평범한 이해력만으로도 어떠한 직책이든 수행할 수 있고, 신은 국가의 공무집행이 한 시대에 3명이나 태어날까 말까 하는 그런 탁월한 천재들만이 이해하는 신비로 변모하기를 결코 원하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진리·정의·절제 등을 누구나 다룰 수 있고, 경험과 선의로 이런 덕행을 실천하는 사람은 특별한 학문이 요구되는 경우가 아닌 한, 국가의 공직을 맡을 자격을 가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도덕적 덕행의 결핍은 아무리 탁월한 지식으로도 절대로 보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 덕행이 모자라는 그런 위험한 사람의 손에 공직을 맡길 수가 없고, 덕성이 훌륭한 사람이 무지에서 저지른 실수는, 천성적으로 부패에 기울면서도 그 부패를 관리하고 조장하고 변명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의 경우보다는 적어도 공공 복지에 미치는 그 치명적인 손실이 덜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또 제안한 것은 국가의 최고 입법기관의 회의에 참석한 모든 의원들은 자기 의견을 발표하고 토론에서 그 의견을 방어한 뒤에는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쪽에 찬성 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투표가 그런 식으로 된다면 그 결과 틀림없이 국민의 이익을 위한 표결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스위프트와 오웰이 비슷한 점은 언어에 대한 두 사람의 관심이 상당히 높다는 데에도 있다.
누가 보기에도 '언어'라고 느낄 수 있는 의사소통의 형태를 가진 유일한 종인 인간에게, 언어가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지대하다.
인간이 사고를 한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인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그 둘의 연관성은 굉장히 커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언어가 없는 사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아주 낮은 수준의 그것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언어를 만들어 낸 것은 우리의 사고지만 역으로 우리의 사고는 언어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를 통해 인간의 사고를 조종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된다.
언어로 표현된 기록의 조작도 빼놓을 순 없다.
기록 또한 우리의 의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신어라는 개념을 사용해 독자들에게 언어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려를 요구한다.
조나단 스위프트도 마찬가지.

그 다음에는 범인들의 모든 편지와 문서를 몰수하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고, 그 범인들을 튼튼하고 안전한 감옥에 처넣는다. 이 편지와 문서들은 단어들, 음절들, 문자들의 은밀한 의미를 발견해내는 데 아주 능숙한 전문가 조직에 넘겨진다.
이 전문가들은 그 문서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어떠한 해석을 내려도 상관이 없는데, 문서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히 정반대가 되는 해석을 해도 되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이 방법이 실패하는 경우, 학자들이 이합체의 시, 즉 각 행의 첫 글자를 합치면 단어가 되는 시와 철자 바꾸기, 즉 어떤 단어에서 문자의 순서를 바꾸어 다른 단어로 만들기라고 부르는,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들을 동원한다. 

즉 언어의 사용은 우리가 서로 이해하고, 각종 사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누군가 말을 한다면, 그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만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관계에 관한 정보를 얻기는커녕 흰 것을 검은 것으로, 긴 것을 짧은 것으로 믿게 하여, 차라리 그런 말을 듣지 않은 무지한 상태보다 더 고약한 상태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너무나도 철두철미하게 이해하는 거짓말의 기능에 대해서 그가 지니고 있던 개념은 이것이 전부이다. 

후이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부분이 있는데 교육이 오웰의 큰 관심 거리 중 하나였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리라.

암수 양쪽의 젊은 후이님들에게 똑같이 가르치는 교훈이 절제, 근면, 훈련, 그리고 청결함이다. 나의 주인은 우리 영국의 야후들이 가사 운영의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수컷에 대한 교육과 전혀 다른 교육을 암컷들에게 실시하는 것을 야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교육의 결과, 그가 제대로 관찰한 바와 같이, 우리 영국의 야후들의 절반은 아이를 낳는 일 이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고, 또한 이렇게 아무 쓸모도 없는 짐승들에게 우리 자녀들의 양육을 맡긴다는 것은 야만성을 한층 뚜렷하게 입증하는 실례인 것이다. 
책의 맨 마지막 장이자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후이님과 야후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야후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고발하는 부분은 그 누가 느끼기에도 지독하며 처참하다.
결국 인간 혐오증에 걸리게 되는 걸리버의 모습에서 우리는 스위프트가 실제 어떤 사람이었는지 읽어낼 수 있고, 야후에 대해 언급한 부분에 많은 진심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에서 서술된 야후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리라 본다.
하지만 후이님의 세계를 이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왠지 꺼림칙하다.
실제로 후이님의 생활상을 보면 굉장히 비합리적인 면이 많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을 할 수가 있겠는데 첫째는 스위프트가 그런 비합리성을 의도했다고 보는 것으로, 이성을 내세우는 삶이 우리를 얼마나 무미건조하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의 종교색이 반영된 부분이라고 보는 것인데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신부의 글 치고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종교적인 느낌이 없을 수 있냐는 의문에서 출발한 생각이다.
후이님의 보수적인 성향은 종교인으로서의 스위프트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전자가 좀 더 옳다고 주장하고 싶은데 이에 대한 이유는 딱히 튼튼하지 못하다.
단순한 취향의 문제다.


'걸리버 여행기'의 주인공 걸리버가 자신이 겪는 경험으로 인격을 도야하는 과정을 통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현실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 ㅡ 또는 되돌아가야 할 방향 ㅡ 을 제시하는 것이 조나단 스위프트가 의도한 바는 맞겠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기상천외한 모험담으로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다.
또한 우리가 사람으로서 평소에 사람을 바라보는 평범한 관점에서 벗어나, 아래로부터, 위로부터, 가까이, 멀리, 때로는 몇 가지 부분에만 집중한 그런 새로운 관점은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흥미로운 주제다.
'걸리버 여행기'는 현실 고발의 역할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소설이지만 그러면서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플롯을 가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책의 가장 마지막에 실린 걸리버의 편지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반전은 독자들에게 또 다른 종류의 스릴과 희열을 주는 부분이다.
이동진 씨의 감탄이 절로 나오는 번역에도 찬사를 보내는 바, 나의 이런 칭찬은 일단은 해누리에서 나온 '걸리버 여행기'로만 한정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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