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대한민국라이브뮤직 렛츠락페스티벌 9월 24일자 후기

| 2011. 9. 25. 17:11

지난 9월 초, 한강 난지 캠핑장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합정역에서 택시를 잡고 홍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 길가에서 펄럭이던 공연 안내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아니 근데 맙소사, 그 펄럭임 속에서 국카스텐의 이름을 캐치했다.
집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검색에 들어갔고 휘날리던 주황색 현수막이 광고하던 공연이 '2011 대한민국라이브뮤직 렛츠락페스티벌[각주:1]'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1일권 가격이 고작 4만원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충격에 휩싸인 나는 잽싸게 ㅡ 라고 해봤자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그 다음 주말에 ㅡ 티켓 구매를 완료했다.

타임 테이블이 인터넷에 나타난 것은 며칠 전의 일이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내가 타임 테이블을 확인한 것은 공연 당일 전날이었다.
두둥!
칵스와 국카스텐의 공연을 단 돈 4만원으로 감상할 수 있다니.
이건 정말 둘도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한 지인은 25일의 라인업이 더 좋다는 평가를 했는데 내가 25일 밤에 자유롭지 못한 몸이라는 사실은 차치해두고서라도 내 취향엔 24일이 훨씬 좋다.


이렇게 페스티벌 형식의 공연에 가는 것도 처음이고, 제대로 된 야외 공연에 가는 것도 처음이라서 이리저리 고민을 하던 나는 너무 처음부터 가서 전부 다 보려는 욕심을 내면 나중에 가서 지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느 팀의 공연에 맞춰 가야할지를 정해야 했다.
낮 시간 대에 공연이 잡혀있는 팀들의 정보를 찾고 음악을 들어 본 결과 나는 오후 2시 어반 자카파의 공연부터 보겠다고 결정했다.
카프카라는 팀의 음악이 어떤 스타일인지 상당히 궁금했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오후 2시보다 늦었으면 늦었지 더 빨리 도착했더라면 상당히 안 좋은 선택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큰 후회는 없다.

왠지 사람들이 월드컵경기장역으로만 몰릴 것 같아서 나는 마포구청역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가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한산한 마포구청 역의 분위기와 택시가 쉽게 잡히는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문제는 한강 난지 공원 근처에서 있었다.
주말에 캠핑장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근처에서 야유회를 하는 사람들, 거기에 락 페스티벌을 보러 온 사람들까지 합쳐서 정말 차가 말도 안 되게 밀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강변북로 어딘가 쯤에서 택시에서 내려서 공연장까지 직접 걸어갔다.
다음 번에 또 붐비는 난지 공원에 찾아갈 일이 있다면 미련없이 택시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방법을 선택하자.
별로 나쁘지 않다.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도 좋은 일이고.

어쨌든 도착했다.
날씨는 맑았고 바람은 선선했고 햇살은 따가웠다.

오른쪽 아래는 절대로 같이 간 사람 아님. 절대로.


인터넷 예매를 한 사람은 입구에서 티켓과 교환을 한 후에 다시 그 티켓을 입장권 팔찌와 교환하는 시스템이었다.
현장 구매는 인터넷 예매보다 만원이 비싼 5만원이었다.
무대 근처의 분위기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 저기에 돗자리가 깔려 있고 거기에 누워서 낮잠을 자는 사람, 공연을 보는 사람, 햇살을 피해 무대를 등지고 잡담을 나누는 사람, 수건을 두건처럼 두른 사람, 양산으로 햇빛을 가리는 사람, 맥주 먹는 사람, 와인 먹는 사람, 핫도그 먹는 사람 등등 이런 페스티벌에 처음 가는 사람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무대 멀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반 자카파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사실 어반 자카파의 멤버 세 명이 밴드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나는 그들이 단지 세션맨을 둔 보컬 그룹이라는 사실에 실망을 하고 말았지만 훌륭한 노래 실력이 모든 것을 커버했다.
자신들의 히트곡에는 그다지 자신이 없었는지 S.E.S.의 'Just a feeling'과 빌 위더스의 'Just the two of us'를 불렀는데 just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모양인지 공연의 질도 그냥 그냥 just했다.
두 남자 중에 한 명은 파리넬리가 떠오를 만큼 신기한 미성을 보여줬는데 그래서 자꾸 그 사람이 남자 스타일의 여자인지 여자 스타일의 남자인지 헷갈렸다.

어반 자카파의 공연이 끝나고 인터미션 중에 맥주를 사왔다.
맥주는 기본 한 잔에 4천원이고 그 이후로 더 시킬 때마다 1잔에 천원씩 깎아주는 식이었는데 ㅡ 그렇다고 5잔을 사면 마지막 다섯 번째 잔이 공짜일리는 없겠지만 ㅡ 하나도 안 시원하게 생긴 기계에선 나오는 것 치고는 엄청 시원했다.
이어지는 공연은 옥상달빛의 공연.

진짜 되도록이면 내가 찍은 저 허접한 스크린 사진 같은 거 안 올리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인터넷에서 다른 후기를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내 사진을 올리기로 했다.


검정치마와의 관계 때문에 옥상달빛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들의 음악이 어떠어떠하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고 그들의 음악은 실제로 나의 기대와 비슷했는데 라이브로 들어보니 나의 기대보다는 더 좋은 수준이었다.
옥상달빛의 두 여자는 생긴 것은 얌전하게 생겨서 의외로 걸걸한 목소리와 걸걸한 멘트를 치더라.
아기자기한 밴드 음악은 저렇게 하는구나 싶었고, 외양으로 보기에 허술해 보이는 홍대 뮤지션들의 깊이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레코딩에서든 공연에서든 보여주는 모습은 그들 자신과 세션맨의 역량 비율을 따졌을 때 어느 정도의 비율로 떨어지려나.
그런 다소 계산적인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옥상달빛의 트럼본 세션이 굉장히 훌륭한 라인 몇 가지를 선보였는데 내 느낌에는 그 멜로디에 옥상달빛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 어쨌든 락 페스티벌과는 별로 상관없는 주제라서 수첩에 메모만 해두고 넘어갔다.

예상보다 시원했던 맥주와 선착순으로 나눠줬던 포도 음료수와 내 발과 어떤 여자의 등.


잔디밭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앉아있는 것은 별로 나쁘지 않았지만 햇살을 가리는 수단으로 선글라스만 챙겨간 것은 상당히 후회되는 선택이었다.
차라리 팔이 좀 아프더라도 양산을 챙기거나 햇살을 효과적으로 가릴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다.
다행히 사운드 시스템이 있는 곳 좌측에 앉아서 해사 서쪽으로 넘어감에 따라 그 구조물의 그늘에 기댈 수 있었다.
다음에 무대에 등장한 팀은 내귀에 도청장치.


내귀에 도청장치라면 내가 아주 어렸을 적 TV 대중 가요 프로그램에 나온 것을 봤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밴드 음악은 커녕 락 음악 자체에 낯설었던 나는 그들의 모양새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사운드 체크를 하는 사이에 처음으로 드라이브 걸린 기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열심히 잠을 자던 사람들도 그 자극적인 소리에 잠에서 깨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곡은 벨벳 리볼버 스타일의 곡으로 슬래쉬를 연상시키는 기타 솔로가 좋은 곡이었다.
그 외의 곡은 라르크 앙 시엘의 어두운 분위기의 곡들을 듣는 것 같은 느낌.
2000년에 데뷔 앨범을 낸 굴지의 밴드가 가지는 내공의 힘을 팍팍 느낄 수 있었다.
보컬이 흡입력은 있지만 폭발력이 없다는 아쉬움을 느꼈는데 이들의 곡을 계속 듣다보니 원래 곡 특성 자체가 호소하는 스타일이라 그런가보다 했다.

다음은 더 문샤이너스.
예전에 네이버 뮤직 활동을 통해 평점 9점을 줬던 밴드로 상당히 기대가 되는 팀이었다.
사람들도 슬슬 스테이지 근처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계속 앉은 자리에 머물렀다.


시작부터 퍼포먼스의 에너지가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저렇게 선글라스를 씌워 놓으니 최민수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보컬 차승우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내가 당시에 썼던 평이 떠올랐는데 전반적으로 나의 평이 정확했다는 생각이었다.
조금 틀린 것이 있다면 나의 평보다는 훨씬 더 엄청난 녀석들이었다는 것!
기타의 포스는 팔당댐과 같이 콸콸 터져나오는 맛이 있었고, 차승우는 남자에게도 백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수천 관중들에게 널리 알렸다.
아주 신이 났다.
더 문샤이너스는 앨범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끼를, 라이브 공연을 통해 무한하게 발산하는 팀이었다.

이어지는 순서는 내 맘대로 정한 헤드라이너 칵스였다.
역시 그 명성답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스테이지로 몰려갔다.
나도 매우 기대가 되었다.


앨범을 들으면서는 보컬이 다소 분위기를 깨지 않을까 ㅡ 뭔가 심한 오버 액션을 보여준다거나 성량이 부족할까봐 걱정했는데 나는 어찌 그리 멍청한 걱정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칵스의 음악은 손바닥만한 플라스틱 판에 담기기에는 그 스케일이 너무도 컸다.
앨범에서 들려주던 사운드를 그만큼 재현해 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보컬 라인을 앨범보다 더 강조하여 관객들의 몰입도도 높였고 드럼의 박자 쪼개기나 기타의 쪼는 듯한 피킹은 앨범 그대로였다.
역시 칵스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소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꽤 이른 시간대에 배치된 탓인지 멀리서 지켜보던 나에게는 무대와 관객들 사이의 괴리감이 조금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쨍쨍 비치는 햇빛과 칵스의 음악은 조화로울 수 없단 말인가!
'Oriental girl'의 보컬이 조금 버거워보였다는 것은 옥의 티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저렇게 뛰면서 저렇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것 자체가 옥(玉)이었기 때문이다.


크래쉬 성님들의 공연은 사실 별로 할 말이 없다.
머리 길이로 내공을 알 수 있는 스래쉬 메탈의 특성 상 공연을 시작도 하기 전에 그들의 포스에 질렸던 탓인지 계속해서 잠이 왔다.
두두두두 거리는 더블 베이스를 엠씨 스퀘어 삼아 신문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죄송합니다, 형님들.
일어나보니 크래쉬의 공연은 마무리 단계였다.
날이 슬슬 저물어가고 있었다.
다음에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밴드는 고고스타.
그런데 생김새가 심상치 않았다.

보컬 이태선은 옛날 럭스의 베이시스트였다고 한다. 시기를 보아하니(2005년부터 2007년) 나도 이 사람을 직접 본 적이 한 번은 있었겠다.


장르는 대체적으로 요새 대한민국에서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일렉트로니카와 락의 하이브리드.
무대를 바라보고 우측 방향에 레이블 마켓이라고 해서 몇몇 인디 레이블이 자리를 잡고 앨범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약기운 엔터테인먼트'라는 곳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고고스타가 약기운 엔터테인먼트에 속해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니었다.
고고스타의 공연을 보고 있자니 대한민국의 밴드 영역이 이렇게 넓어졌구나 하고 감탄이 나왔다.
묘하게 신이 났다.
보컬의 노력이 눈물겨웠서 '묘하게'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이었을까.
베이스를 치는 여자 분은 '이렇게 생긴 사람은 이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데?'의 예상에서 단 1도 벗어나지 않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ADHD와 바제도병이 디스코 펑크와 결합하면 어떤 효과가 나는지 알 수 있던 공연이었다.
마치 카오스가 그 자체로 어떤 또 다른 패턴을 빚어내는 것과 비슷하달까.
결론은 고고스타는 멋진 밴드다!

트랜스픽션의 공연은 저녁거리를 사오고 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다.
히트곡 '내게 돌아와'를 들으면 잠시 옛 기억에 빠질 수 있었다.
보컬 해랑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락 밴드의 보컬은 노래를 정말 기똥차게 잘 못할 거라면 차라리 잘 뛰고 잘 지르는 편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이었다.
아니면 잘 꾸미거나.
그런 면에서 해랑은 좋은 락 보컬이었다.

그런데 발레리노의 선생님 정태호를 닮았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스크린 뒤를 보면 알겠지만 트랜스픽션의 공연이 끝나고는 해가 완전히 져버렸다.


다음 순서는 데이브레이크.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았던 데이브레이크는 이번 락 페스티벌의 '오늘의 발견'이었다.
그것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히 데이브레이크는 이번 공연을 통해 자신들의 인지도를 한껏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데이브레이크의 무대가 그렇게 압도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보자.
우선 시간대 상으로 밤의 첫 무대라 그럴 수 있었겠다.
햇빛이 어느 정도 대지를 비추고 있었던 데이브레이크 전의 공연은 아무래도 무대 말고도 볼 수 있는 것들 ㅡ 여자나 여자, 여자 또는 여자 그리고 여자[각주:2] ㅡ 이 많아서 그런지 무대에 집중할 수 있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더 문샤이너스와 칵스의 공연에서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던 것도 마찬가지 영향.
무난한 조명이 내리쬐는 무대와 두 대형 스크린 말고는 별로 볼 것이 없는 밤이라면 아무래도 무대로 쏠리는 집중력이 달라질 터.
데이브레이크의 성공적인 공연에 이런 시간대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트릭만으로 이들의 공연이 좋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세션이 뒤를 받치는 훵키한 팝 넘버를 주무기로 데이브레이크는 락 페스티벌에 딱 어울리는 음악을 선사했다.
다소 지나친 감이 있지만 코러스만 빵빵하게 받쳐준다면 '한국의 토토'라는 별명을 얻기에 충분하리라.
무대 연출력이 뛰어난 보컬은 상당히 훌륭한 가창력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로 여자들의 함성을 이끌어냈다.
세션들의 연주력은 ㅡ 특히나 기타는 정말 최고였다 ㅡ 두말 할 것도 없다.
발랄하고 재기가 넘치는 면은 벤 폴즈의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했다.
어제 이후로 한국에서 관심을 가질 밴드가 하나 또 늘었다.
굳 무대!

햇빛이 사라지니까 가만히 앉아서 보기에 쌀쌀한 날씨가 되었다.
015B의 공연부터는 어느 정도 무대로 진출하여 스스로 흔드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흔듦으로부터 열을 좀 얻기로 했다.
무대에서 봤을 때 오른편 공중 카메라가 있는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무대 사진을 찍기란 꽤 어려운 일이라 스크린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거리가 거리이다보니 뒤에서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사운드를 듣게 되었는데 균형이 조금 안 맞은 건지 아니면 단지 장호일의 기타 톤이 이상했던 건지 015B 공연 내내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지 않으면 고막에 이상이 올 지경이었다.
소리만 조금 이상했을 뿐이지 015B의 공연은 꽤 성공적이었다.
히트곡 머신답게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 선곡이 가능했고, 편곡의 방향에서, 그리고 관객들을 다루는 면에서 확실히 연륜이 느껴졌다.
사실 015B의 노래가 이런 락 페스티벌과 어울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역시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재산인가보다.

015B의 공연이 끝나고부터 갑자기 사람들이 스테이지로 몰리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처음 서있었던 곳이 그 때에는 가장자리였는데 어느 새 나의 위치가 중심에서 2/3 정도 되는 지점이 되고 말았다.
내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자리를 채워나갔다.
그렇다.
국카스텐의 차례가 온 것이다.
그들의 공연을 볼 때 카메라를 드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좋은 영상과 좋은 사진을 찍는 것은 다른 누구에게 맡기고 나는 현장에서 더 즐기는 것이 더 좋은 투자라고 판단했다.
몰리는 사람들과 점점 더 고조되는 웅성거림에, 어떤 종류이든 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에 상당히 자존심을 두는 타입인 나의 그 옹졸한 자존심이 바짝 섰다.
꽤 긴 세팅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그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내가 현재 활동하는 밴드 중 최고라고 ㅡ '대한민국의'라는 형용사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ㅡ 생각하는 밴드답게 정말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었다.
관중을 쥐락펴락하고 자신들을 갈구하는 수많은 관중에게 당근과 채찍을 사정없이 뿌리는 능력은 전혀 이제 활동한 지 채 몇 년 되지 않은 신인들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점프를 뛰다가 또 다시 왼발목을 접지를 뻔 했다는 것이 그 채찍과 당근이 난무했던 현장의 방증이다.
드럼, 베이스, 기타 두 대로 앨범의 사운드를 비슷하게 재현했다는 것도 놀라웠고 박진감 넘치는 무대 매너도 좋았고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것 같은 하현우의 노래도 정말 쩔었다.
마치 이번 락 페스티벌이 국카스텐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음악과 하나가 된 밴드를 바라보며 마음이 울컥하는 걸 느꼈다.
정말 한국에 이런 밴드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EP에 수록된 두 곡의 영상은 아직 유튜브에 안 올라온 것인지 일단 업로드되어있는 동영상만 퍼오기로 한다.
한 번씩 보고 느껴보자.
순서는 무관.








국카스텐의 공연이 끝나고 땀도 식히고 분위기도 가라앉힐 겸 뒤로 빠졌다.
다음에 스테이지에 나타난 밴드는 세트립스라는 크래쉬 형님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스래쉬 메탈 밴드였다.

무슨 95년에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스캔한 게 절대 아니다. 이게 세트립스의 로고다.


왠지 국카스텐의 공연을 본 후에 모든 것이 하얗게 불타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고 이미 많이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있는 상태였고 YB에 대한 흥미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으며 나중에 집에 돌아갈 때 겪을 혼잡함을 생각하니 아찔해서 세트립스의 음악을 뒤로한 채 상암동 방향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세트립스의 음악은 꽤 오랫동안이나 나의 귀에 들렸는데 다음에 언젠가 난지 공원에서 이런 공연이 있으면 그냥 공원 주변에서 보쌈에 소주 한 잔 하면서 공짜로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나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지천 공원을 건너 아파트 촌으로 들어가기 전에 버스 정류장을 발견했고 거기서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결국 국카스텐 예찬으로 끝나버린 이 공연 후기를 간략하게 줄이면 다음과 같다.
칵스는 기대 이상이었고, 데이브레이크는 새로운 발견이었으며, 국카스텐은 정말 짱이고, YB 형들은 다음에 봅시다.
그러나 내가 이번 2011 대한민국라이브뮤직 렛츠락페스티벌에서 절실히 느낀 점은 따로 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락이라는 음악을 즐기는 것, 페스티벌 문화를 즐기는 것이 소수 괴짜들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하나의 당당한 멋으로, 또 다른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내가 예전에 썼던 글들에서 말했던, 밴드 문화가 우리의 대중 음악에서 주목할만한 자리를 차지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런 밝은 기대를 안고 맥주를 조금 먹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하루 밤이 지나니 당시의 열기는 많이 떨어졌지만 최대한 나의 기억과 기록을 되살려 부족한 후기를 썼다.
부디 이 글이 다른 대한민국라이브뮤직 렛츠락페스티벌 후기들의 프로토 타입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희망과 함께 그만 써야지. 


  1. 나중에 트랜스픽션에서 멘트치는 사람이 말해줘서 알았는데 페스티벌의 이름이 저렇게 괴상한 이유는 두 락 페스티벌이 합쳐져서 그런 거란다. [본문으로]
  2. 근데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여자가 많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