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2 :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 2012. 5. 19. 07:49

아마 내가 손 모가지를 걸고 장담하건대, 12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을 좋아하는 생명체는 전 우주를 통틀어 존재하지 않는다.
2년 전, 인천을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느꼈던 것이 데자뷰처럼 떠올랐다.
그 예전에 썼던 글을 잠시 인용한다.

아뿔싸, 장거리 비행기 여행을 너무 만만하게 봐버렸다.
12시간에 가까운 비행 시간을 평생동안 손에 꼽을 수 있을만큼 지루하게 보냈다.
대한항공에서 준비해 준 영화와 음악, 그 외의 잡다한 영상물들은 자극적인 한국의 대중문화에 쩌들은 이한결(23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엔 충분히 불충분했다.
조금 빠지는 이야기지만 비행기를 오래 타고 가다보니 닭장 속의 닭이 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되면 밥을 주고, 시간이 되면 치워주고, 시간이 되면 잠 자라고 불도 꺼주고, 시간이 되면 잠 깨워주고, 다시 밥 주고, 치워주고, 재워주고를 반복적으로 당하게 된다면 '알만 안 낳을 뿐이지 우리속에 갖혀사는 닭이랑 무슨 다를바가 있으랴.'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하지만 세상 만사가 다 그렇듯이 완벽하게 100% 일치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지난 번 출국과 이번의 출국을 단순히 비교하더라도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찾을 수 있다.
전날 밤에 둘이서 청하를 9병이나 쳐묵하고 기억 없이 집에 돌아와 눈을 뜨자마자 일어나서 씻고 헐레벌떡 공항으로 갔던 지난 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짐을 단 하나도 싸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강제적으로 술을 별로 먹지 못하고 집에 들어와 얼렁뚱땅 짐을 다 싸고 곱게 잠들어 아침 일찍 일어나 깔끔하게 준비를 하고 공항으로 나섰다.
저번에는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공항을 갔지만, 이번에는 나 혼자 홍대에서 공항 철도를 타고 공항으로 나갔으며, 가뜩이나 단독 해외 출국 첫 경험에 어버버하는 상황에서 터진 루프트한자의 파업 소식에 정말 정신 없이 부랴부랴 출국했던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순탄하게 출국 절차를 밟았고 면세점까지 둘러볼 여유가 있었다.
과거의 나는 비행기에 올라 타서도 끊이지 않는 숙취에 거의 멀미를 느꼈지만, 오늘의 몸 상태는 꽤나 좋은 편이었다.

최근 며칠 사이 좀 쌀쌀하다 했는데 떠나는 날은 왜 그렇게 날씨가 좋았던 거야.

이렇게 보면 마치 지난 번의 비행보다 오늘의 비행이 훨씬 더 나은 질을 자랑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시 우리네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숙취감만 제외한다면 이번에도 "닭장 속의 닭" 느낌은 여전히 나에게 묘한 위화감을 주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 모든 감성, 모든 잡생각, 모든 엉덩이의 땀 등을 짓뭉개고도 남을 무시무시한 요소가 있었다.
그 공포의 이름은 바로 아.이.들.

아무래도 유럽 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는 유아들의 탑승률이 낮기 때문일까.
그 때 기억을 떠올려 보면 국적도 다양한 아이들의 말도 안 되는 생떼를 들으면서 괴로워했던 기억은 확실히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게 대체 무슨 운명의 조화란 말인가.
비행기가 지난 번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날아가 지구 자전 관성의 영향을 역으로 받은 탓일까, 내 칸에만 약 10명 남짓 있던 0세에서 5세쯤 되는 아이들은 시시 때때로, 돌림 노래를 연상시킬 수 있을 만큼 틈을 주지 않고 울고, 소리 지르고, 돌아다니고, 울고, 소리 지르고, 돌아다니고, 울고, 소리 지르고, 돌아다녔다.
진짜로 지구 관성에 순행하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사람과 역행하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사람의 심리 상태를 분석한다면 뭔가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대체 부모들이 뭘 하고 있는 건지, 그들의 무책임함을 굉장히 원망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의 칭얼거림은 인재라기보다는 초자연적인 현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더 이성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도대체가 이유가 없다.
국적도 안 가린다.
카오스 기호를 분석하는 게 차라리 낫다.
부모가 달래주든 무관심으로 일관하든 혼을 내든 이노무 새끼들은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떤 녀석은 <엑소시스트>나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같은 2류 오컬트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괴성을 질렀는데, 어두운 비행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제법 오싹한 편이었다.
가뜩이나 애들을 싫어하는 편인데 정말 나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고문이나 다름 없었다.
속으로 한 3백번 정도 이 망할 놈의 악마의 자식들, 아니 악마마저 버릴 자식들이라고 욕을 했다.
이 악마의 불효 자식 같은 녀석들!

심지어 어떤 남매, 남동생이 약 2살쯤 된 것 같고 누나는 한 4살이나 5살쯤 되었으려나, 어쨌든 그 남매는 이 좁은 비행기 칸을 새벽녘 한강 변의 좀비 아줌마들처럼 스멀스멀, 끊임없이 걸어서 돌아다녔다.
뭐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이 "심지어"라는 말을 쓸 정도냐고 반문하겠지만, 물론 이들의 집단 광기에 빠진 행동이 이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세일즈맨의 죽음>을 다 읽고 짧게 평을 메모하고 있던 내 옆에 떡 하니 멈춰 서더니, 갑자기 내 집필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내 펜을 자꾸 붙잡으려고 하는가 하면, 종이를 구기려고도 하고 ㅡ 종이를 쟁취하기 위해 반대 방향의 텐션이 작용했을 때 만약 종이가 찢겨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더라면 과연 나는 어떤 반응을 취했을 것인지 나 스스로도 예측할 수 없다 ㅡ 종합적으로 봤을 때 분명히 내가 하는 무언가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대체 보호자는 이 망나니들을 빨리 제지하지 않고 무엇을 하나 벙찐 상태에서 혼자 고민을 했더랬다.
다행히도 홍위병들의 문화 혁명은 30초를 채 지나지 않아 자체적으로 중단되었고 나는 평온하게 취미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나중에 내가 자식을 낳으면, 그게 내 자식인지 악마의 자식인지 <오멘>에서 처럼 머리카락의 666부터 찾아봐야겠다.

그 외에는 별 탈 없는 비행이었다.
바랐던 대로 내가 앉아 있는 칸의 스튜어디스들은 평균 이상의 외모와 친절함을 가지고 있었고, 좌석도 불편한 것이 전혀 없었으며, 밥도 맛있게 먹었고, 맥주도 맛있게 먹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비행이 약 5시간 가량 남았다는 것이다.
이한결 닭(25세)의 남은 비행 시간은 한 번의 기내식, (아마) 두 캔의 맥주, 한 번의 화장실 행, 그리도 셀 수 없는 뒤척거림으로 구성될 예정.

정말 오죽 심심했으면 내가 비행기에서 굳이 랩탑을 꺼내 들어 이런 글이나 쓰고 있을까.
이따가 전체적으로 기내등이 켜지면 셀카라도 찍어서 나의 심심함을 좀 달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