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 병신인지 대학이 병신인지

| 2012. 5. 11. 11:01

시간이 가면 갈수록 대한민국의 언론 수준, 특히나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언론의 수준이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요새 진지하게 시작페이지를 구글로 전환하고 모든 네이버 계정을 다른 쪽으로 돌려서 사용할까 고민 중에 있다.
내가 알기로는 시즌 처음으로 탬파베이 경기가 mlb.com 공짜 중계 방송되는 날인데 힘 없이 말리고 있어 가뜩이나 짜증나는 가운데 이 병신 같은 기사가 내 안구를 강타했다.
며칠 뒤면 진짜 구글로 갈아 탈 기세.

경향신문의 5월 11일자 기사다.
제목은 "우리나라 여대생 19% 성경험, 남자 대학생은?".
이미 여기서부터가 뭔가 삐라 스멜이 풀풀 나지만 일단 참고 봐주기로 하자.
기사를 읽는 것은 각자 알아서.

우선 설문 조사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조사 방식이 RDD네 DDR이네 하는 드립은 차치하자.
도대체가, 이 기사에 적힌 자료 분석의 방식은 고등학생 수준도 안 되고 중학생 수준에 불과하다.
이 포스트의 제목이 "신문이 병신인지 대학이 병신인지"인 것은 이 분석의 주체가 두 기관 중 어떤 쪽인지 확실히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연구의 주체 쪽에서 자료 분석을 하는 것이 맞기 때문에 80%의 책임을 대학에 묻고, 20%의 책임은 철저하게 잘못된 분석을 대중에게 유통시킨 언론에게 물을 수 있겠지만, 기사에 간간히 인용의 형식을 취하지 않은 서술어가 보이기 때문에 우선은 책임을 반반씩 전가할 수 있겠다.
물론 책임이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해서 이 기사의 만용이 용인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신문이 병신인지 대학이 병신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은 "둘 다 병신"일 뿐이다.

기사 내용을 조목 조목 살펴보자.

단순한 정리에 불과한 첫 문단을 지나 두 번째 문단으로 들어서면 바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말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대학생은 남학생이 50.8%로 여학생 19%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연구팀은 이러한 차이는 남녀의 성에 대한 욕구, 태도, 가치의 차이와 더불어 군대 등의 이유로 남학생의 나이가 여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고 군대의 성문화에 노출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강력하게 작용하는 일련의 터부, 즉 남자의 경우 성 경험이 없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여자의 경우 많은 성 경험을 밝혀서는 안 된다라는 무시할 수 없는 집단 압력 이야기는 어디로 갔나?
또한 남자의 경우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 매매 ㅡ 이 단어를 설명하는데 있어 "음지의", "보이지 않는" 따위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낯부끄러운 일이다 ㅡ 실태를 봤을 때, 돈을 주고서라도 남자가 여자에 비해 성 경험을 가질 기회가 단연 높다.
"군대 등의 이유로" 남자가 여자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는 것 또한 단순한 코미디에 불과한데, 만약 이 조사가 그들이 언급한 대로 서로 다른 나이군의 남녀를 비교한 것이라면 애초에 그 조사 방법 또는 비교 방법이 잘못된 것이고, 설사 그런 것을 다 인정하고 넘어가더라도 여학생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복학생들이 꼭 여대생들만 만나서 성 경험을 가지라는 법은 또 어디 있나?
분석 결과는 이렇게 실제로 드러난 수치가 왜 저렇게 큰 차이를 나타내는지에 대한 설명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여러 구조적인 이유에서 기인하는 기형적인 수치 차이를 극명하게 대조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자.

성지식은 ‘생식생리, 성심리, 임신, 피임·낙태, 성병, 성폭력’ 등 6개 영역 중 5개 영역에서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의 점수가 높았다. 이는 남학생이 여학생 보다 성지식이 더 많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결과로, 올바른 성지식 정도는 여학생이 더 높다는 것을 반영한다.

대체 어느 정도나 높았길래 "고정관념을 깨는" 수준이었던 걸까?
이런 류의 분석 조작은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간단히 말해 남학생이 99점에 여학생이 100점이라고 쳐도 가능한 말이고, 남학생이 30점에 여학생이 31점이라고 쳐도 가능한 말이다.
다시 말해 두 집단의 점수 자체가 원래 시험의 난이도상 높은 축에 속하는지, 낮은 축에 속하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거기에 과연 그 점수 차이가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것인지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하지 않았다.
뭘 보고 어떻게 수긍을 하란 말인가.

성관계 빈도는 남녀 모두 ‘비정기적으로 총 5회 이상 10회 미만’이 가장 많았다. 성교를 하게 된 동기는 ‘사랑하기 때문에’가 가장 많았고, 성교를 주로 하는 곳은 남학생은 ‘숙박시설’, 여학생은 ‘본인(상대방)집’이 가장 많았다.

성 관계 빈도를 묻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저런 대답이 나올 수가 있지?
성교를 주로 하는 곳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일로, 다시 말하지만 이는 여성의 성적인 터부와 사회에 만연한 성 매매에 기인한 것임이 분명하다.
질문이 자위를 하는 곳도 아니고, 성교를 주로 하는 곳인데 최소 둘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장소가 어떻게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이 날을 위해 아껴온 짤방은 절대 아니다.

연구팀은 “남녀 모두 주로 사용하는 피임법이 남성 주도적 피임법으로 남성이 협조해 주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라며 “따라서 이번 결과는 피임교육시 여성 주도적 피임법에 대한 교육이 추가돼야 함을 보여 준다”고 풀이했다.

이건 순수한 질문인데, 여성 주도적 피임법에는 무엇이 있지?

성관계를 경험한 1979명 중 9.4%가 임신을 한 적이 있거나 여자친구를 임신시킨 경험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는 2007년 조사결과에서 보고된 11.6% 보다 다소 낮은 수준이다. 또 임신 경험이 있는 대학생 중 낙태시술 경험이 있는 경우는 78.1%에 달했다. 이는 안전한 성관계의 필요성과 올바른 피임 방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나타내는 결과다.

낙태 시술이 법적으로 상당한 제약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 낙태 시술 경험이 78.1%에 달했다는 뜻은, 우리나라의 낙태 제한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증거로 쓰이거나 아니면 그 구실과 취지를 상실한 낙태 제한 법의 사문화를 질타할 때의 근거로 쓰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뜬금없게 "안정한 성관계의 필요성과 올바른 피임 방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개드립을 치는 것은 완전한 어불성설로,  2007년 조사 결과보다 임신의 비율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실제 언론에 보고되는 학생들의 막장적인 실태를 봤을 때 현재의 성 교육이 좋은 성과를 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역시 문제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되는데 애초에 20대의 임신이나 낙태를 전혀 손가락질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나에게는 대체 여기에 어떤 문제점이 있길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낙태는 전면적으로 합법화되어야 하고 공론화되어야 한다.

To Be Continued의 무서움.

나머지 두 문단은 뭐 별 이야기가 없다.
기사를 읽자마자 성질이 뻗쳐서 그냥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식의 태도를 갖는 것은 참 나쁜 것이란 걸 알고는 있지만 하필이면 조사의 주체가 이화여자대학교다.
게다가 이번 조사 연구소의 우두머리는 신경림이라는 교수로 역시 이대 출신이고 현재 프로필을 보면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되었다고 나온다.
문대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논문 표절자라는 신문 기사가 다수 뜬다.
나쁜 생각을 하지 않을래도 괜한 상관 관계가 머리 속에 생길 수밖에 없다.

끝.

야구도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