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의 뿌리를 찾아서 1 : Radical Psycho Machine Racing (5)

| 2012. 3. 27. 23:38

지난 글 : 블리자드의 뿌리를 찾아서 1 : Radical Psycho Machine Racing (4)

RPM 시리즈의 마지막 글의 주제는 지난 글에서도 밝혔듯이 커스텀 트랙에 관한 것이 되겠다.
메인 메뉴의 맨 아래에 보면 다음과 같이 커스텀 트랙으로 들어가는 버튼이 있다.
주저 없이 눌러보자.

정말 단조롭기 짝이 없는 테마다.

만들 수 있는 커스텀 트랙의 총 개수는 6개.
악마의 숫자 6이라는 선택을, 훗날 블리자드가 디아블로를 만들게 될 것이라는 암시로 보는 것은 무리인가?
네, 무리 맞습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악마의 숫자 6을 고르면 스크린에서 진짜 악마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서 얌전하게 트랙 1을 골랐다.
당연히 트랙을 만든 것이 없으므로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전형적인 거부의 뜻을 나타내는 "삑" 소리가 난다.
스타트 버튼을 100번 누르면 상당히 흥미로운 반응이 일어나는데, 바로 "삑" 소리가 100번 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심심한 커스텀 트랙의 메인 화면.

간단하게 구성을 살펴보자.
조작이 상당히 복잡하여 익히는데 애를 먹었다.
커서가 가장 기본으로 위치하는 곳은 트랙의 2차원 모양을 고르는 버튼이 있는 곳으로, 여기서 가능한 커맨드는 Y버튼의 픽(pick), A버튼의 에딧(edit), B버튼의 드랍(drop)이다.

픽 버튼을 누르면 우측 상단의 3D 조감도와 좌측 하단의 고도 설정에 해당하는 트랙 모양을 말 그대로 뽑을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트랙을 픽한다고 해서 커서가 자동으로 아래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
다소 귀찮지만 직접 커서를 아래로 움직이면 처음으로 커서가 위치하는 곳은 좌측 하단의 고도 설정이다.
고도 설정은 원래 주어진 트랙의 특성에 맞춰 맞춤 설정이 가능하다.
가로 한 칸 사이의 고도 차이가 세로 세 칸 이상으로는 설정이 안 되는 것으로 봐서 나름의 물리 엔진이 적용되어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좌우 화살표로 상하 정도를 선택하는 슬라이드로 넘어가면 여러가지 설정이 가능하다.
첫 번째 슬라이드는 도로의 포장, 즉 아스팔트냐 모래냐 빙판이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 슬라이드는 선택한 트랙의 종류가 출발선일때, 그 출발선에 위치한 자동차의 종류 조합을 고르는 것이고, 세 번째 슬라이드는 위에서 보이다시피 중력 정도를, 마지막 슬라이드는 이 트랙의 전체 랩 수를 결정하는 것이다.
역시나 놀라운 것은 중력 정도를 결정하는 것으로, 과연 그 어떤 레이싱 게임 커스텀 트랙 설정에서 중력을 정할 수 있는 자유도가 존재할지 궁금해졌다. 

설정을 마치고 B버튼을 누르면 다시 트랙 모양란으로 커서가 옮겨간다.
방금 유저가 막 만든 트랙을 맵에 위치하기 위해선 좌측 방향키로 미니 맵에 커서를 옮겨 원하는 칸에서 드랍의 B버튼을 누르면 된다.
트랙을 모두 완성했다면 "SAVE"버튼을 가볍게 눌러주면 된다.

만약에 제대로 된 트랙을 만들지 않고 트랙을 저장하려 한다면, 예를 들어 위의 트랙처럼 만들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맵은 그대로 저장이 되고 그 트랙을 실제로 돌렸을 때 RPM의 멍청한 CPU는 제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게 되고 그 죽음의 레이스는 영영 끝나지 못 하는 파행이 빚어지게 될까?
실험 정신이 강한 나는 당연히 이 무리한 저장을 시도해봤다.
결과는?

"제발, 미스매치를 고쳐줘."

예의 그 "삑" 소리가 고막을 강타한다.
게다가 커서는 미스매치가 발생한 곳으로 자동 이동된다.
역시 블리자드는 블리자드다.
하지만 괜한 배신감이 든다.
이 정도의 AI 시스템을 구축할 정도였으면서 커스텀 트랙을 만드는 좀 더 편한 인터페이스를 고안해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실험 삼아 악마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6번 세이브 파일을 선택해 6번 커스텀 트랙에서 숫자 6의 모양을 한 트랙을 만들어봤다.

아쉽게도 악마는 나오지 않았다.

모양을 내기 위해 억지스럽게 만든 맵이라 대체 CPU 차들이 어떤 방향으로 트랙을 돌지 매우 궁금했다.
바로 실제 레이스에 들어갔다.

커스텀 트랙이니 만큼 유저는 차체에서부터 모든 장비, 소모품에 이르는 모든 세팅을 자유 자재로 설정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아래쪽 화면에 뜨는 CPU 상대 차의 색깔과 차체까지 정할 수 있었다.
역시나 별로 쓸모 없는 디테일이다.

출발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출발하게 만든 이 트랙에서, CPU는 실망스럽게도 안쪽에 조성된 트랙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그냥 외부 순환로만 취해서 레이스를 펼쳤다.
어떻게 해야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CPU의 AI를 유도할 수 있는지 연구해보면 꽤나 재미 있는 결론을 얻기는 개뿔, 이제 나는 더 이상 이 고전 게임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까웠다.
그래서 여기서 그만 둔다.

마지막으로 유튜브에서 게임의 플레이 영상을 담은 클립을 담아온다.
내가 뭐 여태까지 엄청 신나고 재미 있게 이 게임을 해온 것처럼 글을 썼지만 아마 아래 영상을 본다면 나의 노고에 감사장이라도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