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의 뿌리를 찾아서 1 : Radical Psycho Machine Racing (3)

| 2012. 3. 21. 18:44

지난 글 : 블리자드의 뿌리를 찾아서 1 : Radical Psycho Machine Racing (2)

레벨 2에서 내가 주로 하던 트랙. 미니맵을 보면 내 실력이 부쩍 늘었음을 알 수 있을 것.

비록 한 레벨에 여러 가지 트랙이 있지만 쓸데없는 노가다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투자 시간 대비 가장 높은 상금이 나오는 트랙에서만 경주를 했다.
신기해 보이는 트랙이라든가 어렵지만 승리했을 때 뿌듯한 감정을 주는 그런 트랙 따위까지 신경쓸 겨를은 없었다.
사실 남들에게 이런 게임 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농담 같지만 진심이다.

레벨 3 인증.

레벨 1부터 존재하기는 했지만 설명에서 빼먹었던 것이, 도로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
아스팔트가 아닌 도로는 당연히 이런 오프로드 스타일의 레이싱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RPM엔 속력이 줄고 스티어링이 잘 먹지 않는 모래 도로, 그리고 속력은 아마 영향이 없는 것 같지만 스티어링이 매우 먹지 않는 빙판이 있다.
물론 게임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대체 빙판 도로를 레이싱 트랙으로 만들어놓고 경주를 하는 컨셉은 현실적으로 봤을 때 매우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레벨 3의 한 맵. 내가 벌린 리드가 매우 크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난이도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한 레벨에서 내 스타일에 잘 맞는 맵을 하나 골라서 4~5번 노가다를 해 돈을 모아 다음 레벨로 올라가는 것의 연속이었다.

레벨 4. 레이스 참가비가 꽤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벨 4에서는 큰 발견이 하나 있었다.
방향 전환시 그저 방향키를 계속 누르고 있으면 키의 최소 입력 주기에 맞춰 차의 방향이 바뀌기를 기다리지 않고, 방향키를 연타함으로써 더 빠른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과거 그 어떤 레이싱 게임에서도 이런 방식의 스티어링은 없었다.
핸들을 빨리 꺾으려면 방향키를 연타해야 한다니!
역시 현실로 옮겨와 생각을 한다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플레이어에겐 더 큰 박진감을 주게 하는 장치였다.
나의 키 조작이 더 다이나믹해진 만큼 나의 레이싱도 또한 같이 박진감을 띠게 되었다.

레벨 5. 적당히 늘어난 레이스 수가 나의 노가다를 증명한다.

이 게임의 문제는 레벨 6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아래의 맵을 보면 문제가 무엇인지 대충 느낌이 올 것이다.

문제의 맵.

느낌이 왔나?
어떤 게임을 하든 꼼수를 찾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원래 이 맵의 취지는 좌측 상단에서 시작해 우측으로 내려오면서 3사분면, 4사분면, 1사분면을 지나 마지막으로 출발점을 통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상한 머리를 가진 나는 이런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만약 그냥 좌측 상단의 저 조그마한 트랙만 돈다면?
과연 나는 한 바퀴를 완주한 것으로 기록이 될 것인가?
즉시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돈을 보면 알겠지만 만약 나의 가정이 틀릴 경우 무조건 레벨 1로 내려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일궜어야 할 노릇.

붕붕 방방 출발!

결과는 나의 철저한 실패, 가 아니라 성공.
정말 멍청하게도 RPM의 트랙킹 시스템은 엉망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맵은 랩 수도 1개.
기왕에 노가다를 할 바에야 이 의미 없는 노가다에 시간을 투자하길 바랐던 제작진, 그러니까 앨런 애드햄의 선물인 것인가.
나는 한 번 깨는데 총 15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이 맵에서 많은 노가다를 했고, 그 결과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아주 위험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만약 시작하자마자 차를 뒤로 돌려 결승선 뒤로 간 다음에 결승선을 통과한다면?
이런 얕은 꼼수가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된다면 바로 RPM을 접을 참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새 레이스를 시작했고 차를 뒤로 돌렸다가 다시 결승선을 통과했다.
다행히도 레이스가 끝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이런 간단한 것은 방지할 수 있었으면서 왜 위와 같은 실수를 저지른 것인지는 정말 알 수가 없다.
트랙 곳곳에 체크 포인트를 설정하고 거기에 순서를 부여하기만 한다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

레벨 7. 부쩍 올라간 돈과 레이스 수가 보이는가.

돈이 많으니 레이스를 죽어라고 할 필요가 없어졌다.
RPM의 재미가 반감된 순간.

레벨 8.

몇 가지 트랙을 더 진행하다보니 RPM의 또 다른 결점이 눈에 띄었다.
웨이포인트의 순서가 없어서, 설령 트랙 제작자가 이런 이런 방향으로 레이스하기를 원하더라도 플레이어가 그걸 무시하고 가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다음 맵에서 나타난다.

레벨 9. 과연 마지막 레벨일까?

CPU의 차 같은 경우, 이 맵을 도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처음 우측 하단에서 출발해 아래쪽 코너를 돌고 그 다음에 나오는 세 가지 갈림길에서 맨 위의 길을 선택한다.
한 바퀴를 돌고 오면 가운데 길을 선택하고, 마지막 바퀴에서는 가장 아래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차는 세 바퀴를 모두 맨 아래 길, 즉 최단 거리로 돌더라도 랩 수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까 레벨 6에서와 같은 왕꼼수는 가능하지 않지만 이런 류의 맵이라면 항상 상당한 어드밴티지를 얻는 것이 가능했다.
다시금 게임에 실망을 하면서, 그 재미가 더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업데이트된 상점.

하지만 레벨 9에는 보너스도 있었다.
한참 잠잠하던 상점에 새로운 아이템이 들어온 것.
나는 돈을 모아 모든 장비를 업그레이드했다.
최우측 열 가운데에 새로 생긴 아이템은 부스터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었는데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구매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설명에서 빼먹었던 최우측 최하단에 있는 아이템은 도로 위에 미끄러운 똥물을 뿌리는 아이템으로 한 번 밟는다고 없어지지 않으며 밟았을 경우 차의 방향을 약 45도 꺾는 역할을 했다.
재미 있는 것은 차의 운동 관성이 적용되어 똥물을 밟는 즉시 차가 꺾이는 것이 아니라 차의 방향이 꺾인 채로 어느 정도 미끄러진 뒤에 ㅡ 여기서 미끄러진다는 표현을 쓴 것은 이 상황에서 그 어떤 조작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ㅡ 그 꺾여진 방향으로 주행이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적당한 때에 똥물을 밟게 되면 오히려 더 효율적인 코너워크를 할 수도 있었다.

똥물은 지뢰와는 달리 상당히 난무하는 편이었다.

레벨 10으로 올라갔다.
두 번째 아이템 세트가 레벨 9에서 공개된 것을 보면 RPM의 마지막 레벨은 아마 20쯤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레벨 10. 돈과 레이스 수에서 관록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