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주정에 대한 연구 제안

| 2012. 2. 15. 22:50

나는 술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지만, 내가 술을 좋아하는 만큼 주량이 세지는 못하다.
술을 야금야금 먹다보면 어느 새 거기에 나는 없고 술만 남게 된다.
술을 매개로 무의식의 세계에 접속한 나는 얼마간 내가 평생 노력해도 기억할 수 없는 현재를 헤매다 어떻게든 그 날의 잠자리를 찾아 잠에 든다.
비록 그 과정에 대한 현재로부터의 기억은 없지만 과거 그 당시에는 최소한의 이성이 남아 있는 건지 신통하게도 잘 자리는 잘 찾는다.
아직까지 정말 생판 모르는 곳에서 잠이 든 적은 없다.
어찌되었든 최근에는 이렇게 잠자리를 찾아가는 것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줄이려고 많이 노력하는 중이다.
대책의 일환으로 가계부 개념의 음주부(飮酒簿)[각주:1]를 작성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정말 다행인 건, 내가 술을 좋아하는 만큼 자주 취하는 데도 불구하고, 내게 다른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고약한 술 버릇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술 버릇이 제법 있었다.
가장 심했던 것이 어느 한 타겟을 정해놓고 무한 번 반복하여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런 짓을 한 건지는 잘 모르나 한 22살까지는 이 버릇이 꽤 심했다.
21살쯤까지는 교내에 방치된 자전거를 차고 다니는 버릇이 있었다.
2012년을 기점으로 반(半) 오십세가 된 요즘에는 달리기 ㅡ 말 그대로의 뜀박질로 '술을 달리다'의 의미가 아니다 ㅡ 또는 잠 자기 ㅡ 마찬가지로 혼자 수면 상태에 드는 것이지 '누구와 잔다'의 의미가 절대 아니다 ㅡ 가 주된 술 버릇이다.
비록 술은 개 같이 먹지만 술 버릇은 적당히 양반스럽다.

죽었다 깨어나도 양반은 못 될 놈.


하지만 술 버릇에서 제외되는, 술 주정이라고 하는 영역에서는 내 양반스러운 기품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
다음 날 지끈지끈하는 머리를 부여잡고 어제 마지막에 같이 술을 먹은 사람들 중 제일 만만한 사람을 하나 골라 마지막쯤에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물어보면, 10의 7은 그냥 별 말 없었다는 반응이, 나머지 3은 횡설수설했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후자의 경우, 그럼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했냐고 재차 묻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첫재로 보통 다른 사람의 횡설수설을 주의 깊게 들어 기억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을 뿐더러, 내가 그렇게 혀 꼬부라진 소리로 이야기를 할 때쯤이면 같이 술을 먹은 사람들 중에 아주 말짱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때때로 부분부분 나의 정신 나간 술 주정에 대한 제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왜 그깟 술 따위 하나 이기지 못하는가 좌절하고 곧 이어 역시 술님은 대단하다고 그를 치켜세우다가 그냥 또 술이나 먹자는 뫼비우스의 띠 결론에 치닫게 되지만 정말 한 가지 번쩍이는 것은 내가 뱉은 말의 내용들이 상당히 흥미롭다는 것이다.
대충 나의 술 주정을 정리하면,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연관성이 느슨하게 초기화되어 적당히 말은 되지만 전혀 새로운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문장의 구조가 무너져 생 개소리 같으면서 미묘하게 뼈가 있는 것 같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타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사회성이 무척이나 결여된 나만의 극 개인주의적 언어.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4학년인가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던 때, 끙끙 앓는 목소리로 헛소리를 했다고 한다.
총 세 종류의 헛소리 중 가운데 것은 잊었고, 두 개는 얼추 기억이 난다.
첫 번째는 내가 고대 로마의 공동 목욕탕 비슷한 곳을 배경으로[각주:2] 꿈을 꾸고 있었는데 뭔가 목욕탕에 물이 가득 차서 문제가 되는 상황이 발생, 물을 좀 빼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 오프라인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었고, 세 번째는, 나는 기억이 없지만, 갑자기 간호하던 어머니 뒤로 할머니 ㅡ 어떤 할머니인지는 알 수 없다. 혹시 나는 그 때 저승 사자를 본 것일까? ㅡ 가 보인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술 주정이 이렇게 고열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내뱉은 헛소리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할머니가 보인다는 헛소리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첫 번째 경우만 보더라도 내 머리 속에서 그려지던 상황이 분명히 있었고, 나는 그 비현실을 너무 생생하게 겪고 있어 현실로 착각, 그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한 것이지만 비현실과는 괴리된 현실 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에겐 그것이 헛소리로 느껴진 것이라면 술 주정도 이와 비슷한 메커니즘을 통해 곡해된 것은 아닐까?
반 환각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이 느끼는 비현실적 상황을 '꿈'이라는 단어로 풀어내자면, 술 주정은 인간의 꿈을 현실에서 풀어내는 수단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술 주정을 연구함으로써 인간 본성의 숙명적인 질문인,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대해 신통한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나의 연구 제안이 사실일 경우 이 녀석은 한 마리의 알콜 중독 캐릭터로 전락한다.


그러고보면 꿈과 술 주정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
일단 그 상황에 직접 임했을 당시에는 느낌이 굉장히 생생하고 나름대로의 가치 판단과 선택으로 스토리가 진행되지만 거기에서 깨어나는 즉시 기억이 없어지거나 어렴풋한 기억만이 남아 있지 않나.
인간 역사를 반추했을 때 꿈에 대한 해석의 문제는 민간 신앙 및 기타 종교와 연관되어 늘 존재했던 것이고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기점으로 꿈이 인간의 무의식 영역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현대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심리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중요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꿈 연구의 가장 큰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 경험에 속해 있는 꿈이라는 영역의 특성상 타인에게의 온전한 전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연구 주체와 연구 대상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고리가 없는데 어떻게 해서 객관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따라서 나는 이 포스팅을 통해, 술 주정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잠재 의식을 탐구하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정신 나간 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하고 심호흡을 한 뒤에 차차 생각해보면 내 제안이 상당히 일리 있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잠재 의식을 연구함에 있어 그 특성을 극대화한다는 일련의 연구 결과까지 나와 있는 술 취한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의아할 정도다.

게다가 술에 취한 사람이 내뱉는 모든 말과 행동은 타인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연구의 상관 관계 또는 인과 관계를 이끌어내는데 꿈보다는 훨씬 더 좋은 수단이 아니겠냐는 생각까지 든다.
부대찌개를 보글보글 끓이면서 소주를 마시는 심리 실험이라면 돈을 내고서라도 자원할 사람이 줄을 이을 것이다.
심지어 나는 다음에 내가 술을 꽤나 많이 먹는 자리가 생길 때, 어느 시점에서 휴대폰 녹음기를 틀어놓고 다음 날 녹음된 나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까지 했다.
생각만해도 재미 있는 실험이 아닌가.

그러므로 향후 100년 안에 누군가 사람의 술 주정을 연구해 그로부터 큰 공로를 인정 받아 노벨상이라도 타게 된다면 공동 수상자 이름에 반드시 내 이름 석자를 당당히 올려주길 요구하는 바이다.

그럼 이만 오늘의 일기 끝.


  1. 음주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어느 정도 기간이 쌓여야 글감이 나오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 확신하건대 그 즈음에 읽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