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37 : So goodnight, goodnight, New York

| 2012. 8. 15. 19:25

그렇게 센트럴 파크를 빠져 나와 케이타운으로 갔다.
지난 밤에는 아주 쉽게 찾았던 길이었는데 해가 아직 그 위력을 다 하고 있을 때 가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길을 찾는데 조금 헤매고 말았다.
가뜩이나 숙소에서 나온 지가 오래 되어 추리한 꼴이었는데 계획에 없던 십여분을 바깥에서 돌아다니면서 소모하다 보니 정말 볼품 없고 초라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크게 관심이 가는 자리는 아니었어서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면 내 꼴이 구리나 안 구리나 별로 상관도 없었지만 당시 그 상태는 최소한 친구의 위신조차 지켜주지 못할 수준이었다.
쭈뼛쭈뼛 약속 했던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내심 걱정을 많이 했는데 ㅡ 다시 말하지만 절대 개인적인 야욕이 성취되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어쨌든 이런 자리를 만들어 준 친구의 체면을 깎아 먹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ㅡ 자리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저녁으로는 튀김 우동을 먹고 자리를 옮겨 간 카페에서는 미숫 쉐이크를 먹었다.
대화의 키워드는 고영욱과 마이클 잭슨이었고, 그 외의 이야기는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을 뿐더러 워낙에 소소하고 사적인 이야기들에 불과했으므로 만남의 이야기는 여기서 정리한다.

그렇게 여성분들을 하나 하나 보내고 남은 남자들끼리 "또" 술을 먹으러 갔다.
가볍게 먹고 가자는 술 자리는 절대 가볍게 끝나지 않는다는 명제가 참임을 다시금 증명하며 적지 않은 술을 적지 않은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다행히도 그 날은 클럽에 가지도, 연락이 안 될 만큼 멀리 떨어지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예정대로 친구의 숙소까지 택시를 타고 무사히 갈 수 있었다.
들은 것이 맞다면, 우리가 그 날 밤 묵을 건물은 NYU의 한 기숙사 건물이라고 했다.
로비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삭막한 엘레베이터를 타고 방에 갔다.

이 날 나의 잠자리.

방은 내가 미국에서 가봤던 그 어떤 방보다 낡은 상태였다.
거실 비슷한 곳 ㅡ 위 사진에서 보이는 공간 ㅡ 과 방 2개와 화장실이 전부였고, 두 방에는 2층 침대가 하나씩 들어가 있어 한 집을 총 네 명이서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나머지 한 방은 중국인 룸메이트들이 쓰고 있다고 하던데 불 타는 토요일 밤이라 그런지 아직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볍게 세수와 양치를 마친 뒤 필라델피아로 돌아가는 버스 표를 예매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친구와 같은 시각에 출발하는 같은 버스 표를 살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주제로 노가리를 까다 보니 목이 말라왔다.
물을 먹을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집 주인 왈 집에 물은 없고 우유는 있으니 우유를 먹는 게 어떠냐.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명언이 떠오르는 순간이었지만 당장 마실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집 주인이 우유를 가져 왔는데 컵이 아니라 이상한 사발 같은 것에 담아 오는 것이 아닌가.
원래 우유를 이렇게 먹는 건지 궁금했는데 스스로 이 집에 마땅한 컵이 없어서 여기에 먹을 수밖에 없다고 이실직고했다.

이런 게 진정한 뉴욕 스타일이다. 예쓰 예쓰 요.

새벽 늦게까지 열심히 이야기를 했다.
4시쯤이 되어 불을 끄고 누워 있는데 중국인 룸메이트들이 문을 벌컥 열고 집에 들어왔다.
너무 더워서 팬티만 입고 소파에 널부러져 있던 내겐 꽤나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지만 짧게 멋쩍은 인사를 나눈 뒤로 다시는 그들과 마주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두고 두고 생각이 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여러 이유로 아침 일찍 일어났다.
솔직히 잠자리가 불편했다는 이야기를 첫 이유로 꼽을 수 있겠고, 둘째로는 더위와 갈증, 셋째는 아침에 뉴욕 한인 교회를 가보기로 했기 때문.
아무도 깨우지 않고 일찌감치 샤워를 하려고 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살면서 알고 있는 모든 상식과 지식을 총동원 했는데도 도대체가 샤워기에서 어떻게 물이 나오게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나.
어쩔 수 없이 곤히 잠을 자고 있는 친구를 깨웠고 ㅡ 사실 그 때쯤이라면 그 친구도 슬슬 일어날 시각이 되긴 했다 ㅡ 그 친구가 알려준 방법대로 쾌적한 샤워를 즐길 수 있었다.
친구가 외출 준비 하는 것을 기다리며 뉴욕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짐 정리를 마쳤다.
전날 호텔 방에서 유용한 소모품을 몇 개 챙겼더니 오히려 짐이 늘어나 있는 느낌이었다.

집을 나선 우리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택시를 잡은 것이 아니라 근처 슈퍼에 가서 마실 것을 산 것이다.
상큼한 과일 주스를 사들고 택시를 잡고 ㅡ 상큼한 과일 주스를 냠냠 마시며 ㅡ 교회에 갔다.
논산 훈련소에서조차 어떻게든 종교 활동에 빠지려고 했던 나에게 교회라는 곳은 살면서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바람에 예배당 ㅡ 이라고 부르는 건지 잘 모르겠다 ㅡ 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나에게 교회는 태어나서 처음 오는 신기한 곳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아무도 모르게 무대(?) 사진을 찍었다.

그다지 프라이버시가 노출되지 않는 느낌이라 올리는데, 혹시 무슨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내릴 준비가 되어 있다.

예배 시작 시각이 다가오자 의자가 앞 뒤로 꽉꽉 차기 시작했다.
결국 예배는 사람이 가득 찬 가운데 시작되었고,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열심히 졸았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교회에 딱 들어간 순간부터 내가 아무리 할 일이 없었다곤 했지만 이보다 더 잘못된 선택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이틀 동안이나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몸이 극도로 피곤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도무지 나의 정서와 교회의 분위기는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부분이 거의 단 한 구석도 없었다.
역시나 무신론자가 일요일 아침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지난 밤으로부터의 숙취와 열심히 싸우는 일 정도라는 생각이었다.

어느덧 예배가 끝났고 나와 내 친구는 일단 쏜살 같이 그 공간을 빠져 나왔다.
바깥에는 일주일에 한 번 보는 사람들끼리의 혼잡한 사교의 장이 열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대지의 부름을 받은 나는 화장실에 가서 묽은 농도의 그것을 사정없이 쏟았다.
이건 그냥 개인적인 취향인데, 나는 남자 좌식 변기 칸이 장애인 용으로 된 것 하나만 있는 화장실을 몹시도 싫어한다.
아무리 자리가 비어 있어도 노약자석이나 장애인석에는 절대 앉지 않는 내게, 장애인용 화장실을 이용하는 선택권만 주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다.

밖으로 나와 그 교회 청년부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의 친구와 셋이서 베이징 덕을 먹었다.
처음 먹어 보는 베이징 덕 요리였다.
뭐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자리를 파했다.
다시 교회로 돌아가 봐야 한다는 친구는 어느 정도까지 우리를 바래다 주었고 헤어지면서 지하철 역에 닿을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었다.

버스 출발 시각까지 시간이 넉넉하게 남은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움직이기로 했다.
일단 지하철을 타고 타임 스퀘어로 갔다.

정말 혼잡하기 그지 없는 곳이다.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내겐 최악의 장소 정도.

날이 너무 더워 어디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어디를 둘러 보든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차마 타임 스퀘어에서 어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좀 시원할 것 같아 보이는 스포츠 용품점 가게에 들어갔다.
뉴욕 아니랄까봐 실내의 거대한 전광판에서 뉴욕 양키스의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이 때만 해도 승승장구하고 있었지 양키스여.

지하에는 넓은 신발 매장이 있었다.
별로 용건이 없었기에 금방 나왔다.

계속 이런 저런 가게를 기웃거리면서 서 있을 힘이 없었다.
어딘가 들어가서 앉아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친구의 아이폰을 이용해 타임 스퀘어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스타벅스를 검색했다.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써가면서 겨우 스타벅스에 도착, 딸기 스무디를 시켜 놓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빨대를 쪽쪽 빨았다.

드디어 버스 출발 시각까지 10분이 남게 되었다.
일찌감치 다 먹었던 스무디 컵을 쓰레기 통에 버리고 왠지 더 무거워진 것만 같은 가방을 매고 스타벅스를 나섰다.
그런데 불과 한 시간 전까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던 터미널에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이는 것이 아닌가.
무슨 영문인가 근처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한테 말을 걸었더니 터미널이 있는 구역에 무슨 범죄가 발생해서 경찰이 통제를 하는 바람에 임시로 터미널을 옮겼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미국에 온 뒤로 느꼈던 좌절 중에 가장 큰 좌절감을 느끼면서 직원을 따라 옮겨진 터미널로 이동했다.

그 더운 날씨 아래서 30분~40분 가량을 기다린 끝에야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바로 기절한 듯 잠에 들었다.
무슨 꿈을 꾸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뉴욕과 작별 인사를 했다.
뉴욕을 떠나기 약 2시간 전부터의 내 마음을 십분 반영한다면, 그것은 "작별 인사"라기 보다 "탈출기"에 가까웠지만.

예정된 시각보다 조금 빨리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점심에 먹은 북경 오리가 체한 느낌이었다.
다음 날 저녁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집에서 쉰 뒤에서야 뭔가를 먹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드디어 오래 전부터 완성을 미뤄 오던 뉴욕 여행기가 끝났다.
속이 다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