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32 : 여행기로 보는 콜드플레이의 공연

| 2012. 7. 17. 10:25

인디펜던스 데이 연휴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은 2012년 7월 6일 금요일은 콜드플레이의 필라델피아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다른 카테고리 란으로 따로 분류해서 올린 공연 후기를 참고하길 바란다.

굳이 여행의 관점에서 콜드플레이 공연을 보러 가는 것에 어떤 특징을 잡자면, 처음으로 필라델피아에서 나 혼자서 제법 먼 곳을 다녀온 일이었다는 것 정도겠다.
이는 물론 외국에서의 나의 사회성이 떨어진다거나, 독립성이 결여되었다거나, 내가 길을 찾는 것에 밝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딱히 그럴 만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은 달랐다.
나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시 집에 돌아오는 순간까지 혼자였다.

여태까지 스포츠 컴플렉스를 찾아갈 때는 항상 택시를 탔지만 혼자 가는 마당에 굳이 택시를 잡을 필요는 없었다.
집 바로 뒤에 위치한 트레인을 타고 시내까지 나가서 환승, AT&T 역에 내려 걸어가는 루트를 선택했다.
많이 챙겨봤자 별로 쓸 만한 일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괜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지하철 토큰도 여분으로 더 챙겨갔다.

단거.

콜드플레이의 신보를 꾸준히 복습하면서 갔다.
한 번도 이 방향으로 지하철을 타본 적은 없지만, 반대 방향으로는 두 번이나 타고 왔던 경험이 있기에 환승 장소를 찾는다거나 출구를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거의 정확히 예정된 시각에 AT&T 역이 도착했고, 거기서부터는 뜨거운 햇살과 싸워가며 걷기 시작했다.
짧은 거리를 걸었음에도 정말 덥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핫한 날씨였다.

안 그래도 피곤했는데 갑자기 햇살을 집중적으로 받아서 시야가 흐려졌다. 물론 내 얘기가 아니고 전화기에 달린 카메라 얘기다.

한국 같았으면 "콜드플레이 내한" 따위가 쓰인 거대한 현수막이 당연히 걸려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 것도 없었다.
정확히 웰스 파고 센터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사실 아주 근처까지 가기 전엔 대체 오늘 여기서 무슨 이벤트가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주변은 평소처럼 깔끔했다.

여느 때와 아주 다름 없는 그냥 웰스 파고 센터의 모습.

딱히 바깥에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입장을 했다.
들어가자 마자 티셔츠를 포함한 각종 공연 관련 용품들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공연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콜드플레이에 그렇게 매료되어 있지 않았던 나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지나쳤다.
경기장 내부의 음식점들은 모두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경기장에서 공연을 하더라도 내부 인프라가 거의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와는 아주 다른 풍경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용하지 않았지만 굳이 관객이 공연장 외부에서 먹을 것을 공수해올 필요 없이 간단하게 경기장 내부에서 요기할 만한 것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편리해 보였다.

땀을 많이 흘릴 것 같아 출발하기 전에 물을 많이 먹었더니 웰스 파고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대지의 부름이 있었다.
화장실에 가서 지퍼를 내리는데 바지가 상당히 축축한 것에 놀랐다.
공연에 대한 기대감에 흔히들 표현하는 "지렸다"는 느낌보다 단순히 더운 날씨로 인한 땀 때문인 것 같았다.

일단 경기장 내부, 즉 실제 공연이 열리는 장소로 들어갔다.
티켓에 나온 공연 시작 시각이 오후 저녁 7시였는데 슬슬 그 시각이 가까워왔기 때문이다.
자리를 찾는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앉아야 할 자리 근처에 거대한 프로젝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설마 저 근처의 표를 팔았을까 싶어서 고개를 갸웃하다가, 내가 다른 입구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주변을 조금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자 프로젝터 근처에 있던 스태프가 자리를 찾냐고 물어왔다.
그냥 마음 편하게 스태프에게 자리를 찾아달라고 하기로 한 나는 내 티켓을 보여주면서 아마 자리가 이 근처인 것 같은데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며 자리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것으로, 프로젝터 때문에 앉을 수가 없으니 내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겠다는 것이었다.
내게 혼자 왔냐고 묻던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여분의 티켓을 이리 저리 둘러 보더니 저 앞 쪽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 근처에 가서 다시 자리를 찾아보라고 했다.

내게 몇 만원의 행운을 안겨다 준 기특한 녀석.

그 결과, 내 자리는 상당히 앞쪽으로 당겨지게 되었다.
원래 자리가 앞에서 약 20번째쯤 되는 곳이었다면, 새롭게 배정받은 자리는 고작 다섯 번째나 될 법했다.

새로운 자리에서 내려다 보이던 무대. 땡 잡았다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무대와 가까워졌더랬다.

오프닝 밴드들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근처 자리에 영 사람들이 차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냉방이 빵빵하게 나오는 바람에 약간의 추위를 느낄 정도로 한산했다.
설마 콜드플레이가 직접 나올 때도 이 정도의 사람들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한 순간 의심을 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단순한 오프닝 밴드에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임이 밝혀졌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오프닝 밴드 로빈의 공연이 끝났을 때는 저녁 8시 30분이 지나 있었는데 그 때부터 사람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좌석 블럭에서 가장 오른편에 앉았던 나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을 보아하니 가족 단위의 관객들, 특히나 10대의 자녀들을 동반한 중년의 가족들이 꽤나 많았다.
나이를 가늠하긴 힘들지만 내 입장에서 "노부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동양인 혼자서 공연장을 찾은 것은 전 관객을 통틀어 나 혼자였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전혀 보지 못했으나, 전반적으로 동양계의 사람들은 꽤 보이는 편이었다.
전체 숫자로만 따지면 가장 드물게 보였던 것은 흑인이었던 듯.

거의 만원이 된 공연장.

콜드플레이의 무대 셋팅이 시작되었다.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천장 어딘가에서 내려온 줄 사다리.
오프닝 밴드의 공연에서 작동하지 않았던 조명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생각했는데, 뭔가 좀 만지는 척을 하더니 그냥 그 자리에 털썩 앉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거의 중앙 상단쯤에 사다리를 탄 사람이 보이는가.

그리고 그들은 공연 내내 저렇게 공중에 매달려서는 관객들에게, 그리고 콜드플레이들에게 더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공연의 완성도를 위해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지, 거의 신실함까지 느낄 수 있었던 대목.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사진은 초반에 몇 장 찍었고, 후반에 몇 장 찍은 것이 전부인데, 사진마다 코멘트를 달 만큼 딱히 그 사진을 찍은 이유랄 것이 없으므로 슬렁슬렁 넘어간다.












맨 마지막 곡이었던 'Every teardrop is a waterfall'이 끝나자 마자 쏜살 같이 밖으로 튀어 나갔다.
공연의 후희를 현장에 남아서까지 느끼기에 그다지 좋은 자리도 아니었고, 후희를 같이 나눌 사람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았고, 어차피 혼자인데 일찍 집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빛나는 팔찌를 반납하고 가게끔 수거함 비슷한 것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딱 봐도 자신이 받았던 팔찌를 반납하는 사람은 전체 중에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물론 법규를 준수하는 모범 시민인 나는 얌전하게 팔찌를 내고 나왔다.

배터리가 다 떨어져 가는 휴대폰으로 다시 한 번 <Mylo Xyloto> 앨범을 감상하면서 지하철을 타러 갔다.
공연 중간 중간에 남겨둔 메모를 정리하면서 방금 막 끝난 공연을 되새김질했는데, 그렇게도 가슴이 벅차오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의 그 벅차오름은 꾸역꾸역 지하철로 밀려 들어오던 다른 관객들 때문에 곧 퇴색되고 말았다.
공연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얌전했던 녀석들은, 지하철이라는 공공 장소에 들어오자마자 본연의 무질서함을 드러내는 기이한 행태를 보였는데, 심지어 내가 타 있던 칸과 인접한 어느 다른 칸에서는 'Viva la vida'를 떼창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집까지 돌아오는 길에 더 이상의 특이한 일은 없었다.
필라델피아에서의 또 다른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