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40 : 유명무실의 아이콘, 리버티 벨

| 2012. 9. 9. 14:59

찬조 출연한 내 팔과 손.

살면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내가, 과연 얼마나 긴 기다림을 갖게 될지 궁금해서 줄을 서자마자 바로 시각을 기록해뒀다.
당초의 계획은 줄을 서기 시작할 때의 시각과, 리버티 벨이 있는 건물에 들어서기 직전의 시각을 찍어 나의 수고로움을 수치적으로 기록하는 것이었으나, 예상보다 줄이 빨리 빠지는 바람에 그런 작위적인 허세를 부릴 기회가 없어져버렸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대충 20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다.
귀에 꼽혀 있던 이어폰에서는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와 정우택 의원의 성 상납과 관련된 의혹이 꾸역꾸역 흘러 나오고 있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기 직전에 아주 간단한 짐 검사가 있었다.
나는 짐이라고는 들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볍게 통과했다.

내부는 예상한 대로 썰렁했다.
결국 리버티 벨, 즉 진짜 종은 동선 상 안에 배치를 하고, 그 곳까지 가는 길에는 리버티 벨과 관련된 갖가지 자료들을 디스플레이 해놓은 형식이었다.
시간이 아주 많은 편도 아니었고, 굳이 깨알 같은 영어 활자를 하나 하나 읽어 보고 싶은 마음도 안 들었기 때문에 사진이나 보면서 훅훅 훑었다.

대체 리버티 벨과 저 아메리칸 인디언의 관계는 무엇일까.

리버티 벨을 보기 위해 건물로 들어선 관광객은 상당히 많은 수였지만 거의 대부분의 관광객이 나처럼 디스플레이 부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아마 이 전시 자료를 만들던 사람들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결과물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시간은 디립다 투자하지만 결국 큰 재조명 없이 잊혀지고 마는 환경 미화의 산물들처럼 말이다.

달라이 라마의 브이가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뭔가 흥미로운 사진이 없을까 해서 디스플레이 패널을 하나 하나 살피던 도중 눈에 익은 문양을 발견했다.
실제로 김치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김치맨인 내가 이런 걸 보고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1954년 4월 22일 인디펜던스 홀을 방문한 한국 어린이 합창단의 사진. 지금 사진 속 저 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약 20~30m에 달하는 전시를 다 보니 사람들이 몹시 번잡하게 모여 있는 곳이 나타났다.
바로 거기에 그 놈의 리버티 벨이 있는 것이 분명하렷다.

바로 이 종을 보기 위해 나는 적지 않은 수분과 시간을 소비한 것이다.

그래도 리버티 벨 실물 앞에 왔으니 기념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었다.
웬만해선 다른 사람한테 사진을 잘 부탁하지 않는 나였지만 이번 만큼은 별 다른 수가 없었다.
주변에 내게 손쉽게 도움을 줄 만한, 그러면서도 적당한 퀄리티의 사진을 찍을 능력이 있을 것 같은 사람을 찾았다.
어디 보자.

현실은 시궁창.

그러나 도무지 저 많은 인파 앞에 서서 사진을 찍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사람들의 사진에 노출되지 않을 만한 각도에서 셀카를 몇 장 찍었다.
그리고 바로 건물을 나섰다.
이것이 바로 필라델피아를 대표하는 관광지인 리버티 벨의 시작과 끝이었다.
혼자만의 결론을 내리자면, 껍데기와 내용물의 구성비가 현대식 과자 포장보다도 못한 곳이었다.

밖으로 나가니 다시 인디펜던스 홀이 나타났다.

조금 더 공들여서 찍은 사진.

리버티 벨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 곳을 둘러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남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유명무실의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한 이후, 필라델피아 관광에 대한 모든 기대감이 사그라들면서 그 아쉬움도 같이 종적을 감추었다.

보도 블럭에 새겨져 있던 인디펜던스 홀의 역사.

인디펜던스 홀 정면의 동상이 누구의 동상인지 확인하기 위해 줌을 끝까지 당겨봤다.
예상과는 다르게, 동상의 주인공은 조지 워싱턴이었다.

설마 워싱턴이라고 적혀 있는데 조지 워싱턴이 아니진 않겠지.

점심 약속 시각까지 시간이 약간 남았다.
시내 관광의 마지막 코스는 시청까지의 가벼운 걸음으로 결정했다.

첼시의 경기를 보지 못하고 떠난다는 건, 첼시 팬에겐 가슴 아픈 일.

여태까지 시청 건물을 볼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가까이서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건물이 제법 고풍스럽고 단단하게 지어진 것이, 서울특별시의 신청사와 여러 모로 대조되었다.
도무지 주변 건물과는 어울릴 기색조차 없는 그 이상하게 생기고 비비 꼬이고 들쑥날쑥한 구조물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 들어서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첼시 경기 소식을 알리는 현수막 옆에 걸린 현수막은 내가 이 다음 날에 보게 된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전시 안내 현수막이다.

오른쪽으로 높게 솟은 탑 위에 무슨 동상이 있는 건지 궁금했다.
저 높은 곳에서 필라델피아 시내를 내려다 보는 저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시청을 끝으로 모든 오전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잽싸게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 막 플랫폼에 들어오고 있던 녀석에 올라 탔다.

오후 일정은 유펜 교정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에는 매년 아이비 리그 대학교를 둘러 보는 캠프가 있는데, 내 친구가 그 일행의 가이드로 일찌감치 뽑힌 바 있고 나라고 해서 딱히 그 시간에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냥 그 무리에 같이 어울려 다니기로 했다.
당연히 포커스가 유펜에 맞춰져 있었으므로 사실상 이 학교와 거의 관련이 없는 사람인 내가 나서서 한 일은 없다.
그저 뻘쭘해 하는 친구에게 조금의 힘이 되고자 그의 곁을 졸졸 쫓아다닌 것 빼고는.

유펜 교정의 벤자민 프랭클린 동상 앞에 있는 부러진 단추 모양의 구조물.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저 구조물 밑에서 쿵쿵 야한 일을 하면 인생에서 꼭 성공할 수 있단다.

점심 같이 먹어주고 교내의 이런 건물 저런 건물을 기웃거리다 보니 약속한 시간이 대충 다 흘러 있었다.
중간에 어떤 친구에게 연락처를 알려주기도 했고 ㅡ 하지만 그 연락처를 주고 한 달 반이 지난 지금까지 그로부터 일절 연락이 없었다 ㅡ 유펜이라는 학교에 대해서, 미국 유학 입시라는 전반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있었다.
그 외에 흥미로운 일은 없었다.

학생 식당 건너 편에 있던 건물인데 사진을 찍은 이유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