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 2011. 6. 25. 09:10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여행의 기술'에 이어 읽는 알랭 드 보통의 세 번째 책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영어 원제가 'Essays In Love'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책 '우리는 사랑일까'의 원제가 무엇인지 한 번쯤 고민해보는 것은 인지상정.
'우리는 사랑일까'로 번역된 이 책의 원제는 'The Romantic Movement'이다.

우리는사랑일까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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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보다 더 느낌이 좋았던 책이다.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사랑에 관한 에세이도 내가 여태까지 읽은 책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는 전제 하에 이 책에 대한 단순한 평보다 그의 이야기가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그의 책은 남녀 사이의 관계에 대해, 간략하고 깔끔하면서도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속성 코스의 교재 같은 느낌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과 소설 속 주인공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유대감을 느낀다.
무려 1994년에 만 25세 유대계 스위스인 남자가 쓴 이야기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생각하면 주인공들의 사랑하는 모습과 우리네 처지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전작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비해 '우리는 사랑일까'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들은 독자들에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는 20세 중반의 철없는 여자와 모든 것을 다 갖춘듯 보였으나 결국 어쩔 수 없는 '남자다움'을 노출하는 30세 초반의 남자가 엮어가는 사랑 이야기는 이제 우리들에게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글로벌 시대는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면에까지 민족적인 특성을 뛰어넘는 영향을 미쳐 범지구적인 거대한 '사랑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이는 우리나라의 사랑, 좁혀 말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사랑은 많은 면에서 서구화가 진행되어 더 개방적이고 더 적극적이며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는 방증이기도 하겠다.
어찌되었든 이것이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가 세계적인 호응을 얻어낸 한 가지 이유.

나 역시 이 사람의 책을 읽다보면 감탄을 금치 못한다.
'아리랑'에 나오는 김산의 연애관을 보며 비판을 멈출 수 없던 나, 즉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려면 그 무엇보다 직접적인 경험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나는 이 분야에 대해서라면 내 나이에서 평균 이상의 경험을 가졌다는 생각과 젊은 혈기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자기 철학에 대한 오만함[각주:1]이 더해져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를 개똥 같은 이야기로 치부해 제대로 이해해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각주:2]

저 비장한 얼굴.


알랭 드 보통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이 좀체 인정할 수 없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 서술하는 것을 읽어보면 어쩜 그리 쪽집게처럼 잘 집어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제 막 석사 과정을 마친 인생의 풋내기가 대체 무슨 경험을 했길래!
어쩌면 알랭 드 보통은 내게 결여된 타인 공감 능력에 특화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람의 글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진부한 사랑 이야기를 방대한 철학적, 윤리학적 지식을 동원해 그럴싸한 표현으로 포장을 하는 데에 있다.

그러니까 알랭 드 보통이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꼭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심정과 행동에서 독자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끔 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그의 이야기에서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은 인물들의 심정이라기보다 그 인물들이 맞닥뜨리는 상황이다.
앤디 카우프만이나 존 레넌 같은 사람이 아닌 이상 어차피 범인(凡人)이라는 거대한 범주에 속하는 우리들이 빚어내는 사랑 상황이란 다 거기서 거기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무한 후퇴의 문제를 잠시 무시해두자면 결국 참을 수 없는 권태감에서 두근거리는 첫 만남이 생기고 '사귄다'라는 약속을 맺고 설레는 봄날이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갈등과 위기를 거쳐 문제를 극복하고 계속 사귀거나 한 쪽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어 '사귄다'라는 약속을 깨는 두 가지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 이 커다란 틀을 벗어나는 사랑 상황은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알랭 드 보통은 이런 진부한 상황을 제시하고, 그 밑바탕에 깔린 일반적 서술을 함으로써 공감을 이끌어낸다.
사랑 이야기를 읽는 사람의 대부분이 '사랑'이라는 관념에 대해 관심있게 지켜 본 적이 있다는, 성립 가능성 높은 전제가 깔린다면 그의 철학적 고찰이 좋은 반응을 불러오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 된다.

타인과 사랑을 나누는 일은 어찌 보면 과거에 같이 잔 사람들의 습관이나 기억과 충돌하는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방식에는 우리의 성생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키스는 과거에 했던 키스들의 종합형이고, 침실에서 하는 행위에는 과거 거쳤던 침실의 흔적이 넘쳐난다. (중략)
순전히 기술적인 관점에서는 성생활의 역사가 있는 편이 바람직하겠지만, 심리적으로 그것은 복잡 미묘한 영향을 미쳤다. 성생활 역사가 있다는 것은 여러 사람과 성행위를 했다는 의미일뿐 아니라, 잠자리를 같이한 사람을 차거나 그 사람에게 채였다는 뜻이었다. 좀 어두운 면에서 보자면 섹스 기교의 역사는 실망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기가 막힌 이야기가 아닌가.
이런 서술은 마치 이 책에서 앨리스가 주로 읽는 자기계발서처럼 독자가 평소에 어느 정도 인지하고는 있었으나 똑부러지게 표현할 수 없었던 그 가려운 부분을 쏙쏙 골라 긁어주는 역할을 한다.
오히려 그런 신선함이 너무 자주 등장해 책 한 권을 통채로 읽으면 그 신선함이 진부함으로 느껴진다는 단점이 있으나 바로 이런 점이 알랭 드 보통의 책을 한 번 읽으면 자연스레 그의 다른 책을 읽어보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가 이 사람의 작품을 읽으면서 견지해야 할 중요한 태도가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라는 간단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야기 속에서 그는 어떤 가치 판단도 직접 내리지 않는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작중 인물들의 의중 속에 나타나는 호불호 역시 그저 이야기를 이끌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지 작가 그 자신의 선호를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의 판단은 독자 자신이 하는 것이다.
힌트를 정답으로 받아들이는 오류에 빠져선 안 되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다시금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알랭 드 보통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기보다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앨리스가 지금 에릭을 〔신중하게 말해서〕 사랑하는 것일 리가 없다면, 그녀는 아마 사랑을 사랑한 것이다. 이 동어 반복적인 묘한 감정은 무엇인가? 이것은 거울에 비친 사랑이다. 감정을 자아내는 애정의 대상보다는 감정적인 열정에서 더 많은 쾌감을 도출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관점에서[각주:3] 책을 보면 이 책은 중반부까지 굉장히 술술 넘어가다가 그 이후로 정체에 빠진다.[각주:4]
나란 남자 나쁘고 뻔한 남자.

진담인데 나는 이 만화를 보고 춘봉이와 같은 기개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자는 다짐을 했다.


소제목 '신성한 관계'와 '독서의 문제'에서 종교적 취향과 사랑 취향을, 독서 취향과 사랑 취향을 각각 관련지은 것은 흥미롭다.
'신성한 관계'를 읽다보면 알랭 드 보통의 종교관, 즉 무신론적인 태도를 옹호하는 관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촉매'에서는 현 시대의 무턱대로 따라하는 식의 문화, 한국식으로 '냄비 문화'라고 말할 수도 있는 그런 세태에 강력한 똥침을 놓는다.
흔히 허세가 잔뜩 들었다고 표현하는 그런 분위기의 사랑이 존재하는 사회를 비판하고 있지만, 이 사람의 섬세한 사물 묘사를 읽고 있으면 결국 이 사람도 그런 허세 부림이 먹혀 들어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분위기를 이용해 먹고있지는 않나하는 역발상이 들기도 한다.
착각이든 아니든 그렇게 중요한 사항은 아니지만서도.

이 세상에 수많은 훌륭한 작가들의 글을 모두 읽어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몇몇 훌륭한 사람들이 쓴 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못한 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필연적인 일. 알랭 드 보통이라는 사람도 그의 이름에서 드는 프랑스적 권위에의 또는 그의 작품이 상업적으로 흥행했다는 사실에의 거부감 때문에 쉽게 놓쳐버릴 수 있는 그런 몇몇 훌륭한 사람 중에 하나로 취급 받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책이라면 한 권쯤은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1. 줄여서 개똥철학이라 한다. [본문으로]
  2. 대표적인 예로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있다. [본문으로]
  3.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문으로]
  4. 단순한 개인적 취향에 따른 문제일 뿐이다. 책 자체가 허술하게 구성되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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