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책 관련 포스팅을 한 것이 5월 27일, 이 한 권의 책을 읽는데 거의 20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휴일에는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특성상 휴일이 대부분이었던 그 20일동안 막상 책을 읽은 시간은 굉장히 적었다는 점을 참작할 수 있겠지만 확실히 나는 근래에 책을 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이 책이 나의 취향과, 또는 나의 기대와 썩 잘 맞아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작년 겨울이 되도록 이런 책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백범 선생의 '백범일지'와 이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 나타난 두 사람의 독립 운동 노선을 비교하라는 과제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1
비록 그 때까지 백범일지도 읽지 못한 나였지만 최소한 그 책의 존재 정도는 알고 있었던 나로서 님 웨일즈의 '아리랑'이라는 책은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두 책의 비교가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두 책 모두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백범일지는 지난 5월 초에,그리고 이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을 다룬 '아리랑'은 6월 중순에 독서를 마쳤다.
두 책의 비교의 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두 책에 나타나는 독립 운동의 방법론이 비교하기 적합하게끔 잘 대조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도 여기에 이 두 작품에 나타난 김구와 김산의 노선에 대한 비교를 하려면 어느 정도 끄적일 수야 있겠지만 이미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훌륭한 글들에 비해 나의 글이 딱히 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여기서 그런 글을 쓰지는 않으려고 한다. 2
하지만 '백범일지'와 '아리랑'이라는 두 책 자체만 비교하는 것은 나름 신선한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각종 레포트 사이트에 올라가 있는 자료들을 원문 그대로 확인할 수는 없어 자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대부분의 자료들이 책의 내용을 역사적 문헌의 관점에서 분석했지 단순한 문학 작품으로 조명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백범일지'와 '아리랑'은 본질적으로 아주 다른 양상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 차이는 글을 쓴 주체가 누구냐에 기인하는 것이다.
'백범일지'는 백범 선생 당신이 손수 써내려간 책으로 작성한 시기에 따라 크게 두 편으로 나뉘는 책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내려간다는 것은 기억의 왜곡에 빠질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구구절절한 심정을 풀어내는 면에 있어서는 최고의 방법이다.
특히나 백범 선생 같은 삶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우여곡절한 삶이라, 직접적인 경험이 없고서 당시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백범일지'의 첫 편은 무려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야 작성한 것으로 순전히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는 불리함을 안고 작성한 부분이다.
많은 부분에서 오류가 있었고 그런 오류를 붙잡기 위해 수많은 주석이 달렸다.
또한 백범 선생 자신은 그런 부분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겠지만 지천명이라는 그 단어가 가리키듯이 집필 당시의 백범 선생은 인격적으로도 이념적으로도 자신의 정신 세계를 구축하는 단계에 있어서 거의 완성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기 때문에 서술의 내용 면에 있어서 굉장한 깊이가 느껴진다.
두 번째 편의 경우 그 중후함이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겠고 책 마지막에 수록된 '나의 소원'은 이미 한 번 밝힌 바 있지만, 여태까지 내가 본 한글로 쓰인 단문 중 단연 최고의 글이었다.
'아리랑'은 위에서 언급한 '백범일지'의 서술 환경과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우선 '아리랑'이라는 책은 김산 자신이 직접 쓴 책이 아니다.
비록 두 사람 간의 많은 대화와 합의가 전제되어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은 님 웨일즈(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우)라는 외국인 저널리스트의 손에 쓰여진 책이다.
책의 서장에서 이런 말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정말로 님 웨일즈가 이 책을 '소설'로서 썼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3
이 관점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가끔은 당시 조선인의 사고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서구화된 관점을 엿볼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은 대부분이 님 웨일즈의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간 부분일 것이다.
같은 문화권에서 자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서로 간의 이해에 오차를 줄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 바로 전기라는 장르다.
하물며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한국인과 미국 유타의 땅에서 태어난 미국인 여자가 영어로 진행되는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 전기에는 얼마나 큰 시각차가 존재할 것인가.
또 한 가지 큰 차이점은 '아리랑'의 경우 김산의 나이가 막 30세를 넘었을 때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주석이 조금 달리기는 했지만 김산의 기억은 대체적으로 정확한 편이다.
하지만 그의 인격은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겨우 완성의 조짐이 보이는 수준으로, 대부분의 경우 방황하는 젊은 지식인의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의 상당 부분은 누군가와 이루어진 대화와 단순한 사실들의 나열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의 신념을 이루고 있는 이론적인 배경과 철학적인 고뇌는 많이 찾아볼 수 없었으며, 새로운 이성을 만나는 부분에서는 억지스러울 정도로 낭만스러운 서술을 하고 있어 독자들이 이 인물에 대해 어떤 일관된 대상을 떠올리는 것을 어렵게 한다. 4
바로 이 두 부분이 '백범일지'와 '아리랑'을 내용 외적인 면에서 간단하게 비교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서술 환경의 차이점을 인지하고 두 책을 읽어 나간다면 조금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두 책의 내용을 비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서론이 너무 길어져 막상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원래 준비한만큼의 분량으로 쓰기에 부담스러워졌다(고 쓰고 귀찮아졌다라고 읽는다.).
그래서 짧게짧게 줄였다. 5
김산은 나의 입장에서 원리주의자이며 극단주의자이며 융통성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에게 자신의 행동 수단은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목적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여야 했고,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는 조금 더 유해질 수 있는 부분에 있어 지나친 행동을 하기 일쑤였다.
그가 더 젊은 날 자신에게 찾아온 발전의 기회들을 그렇게 손쉽게 날려버리지 않았더라면 김산의 정신은 더 빠르게 성숙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위에서도 언뜻 보이지만 김산의 여성관은 상당히 독특하다.
다소 생뚱맞은 주제이지만 김산의 연애관을 현대의 연애심리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인 것 같다.
이 분야의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에 김산의 연애관, 여성관은 21세기를 살아가는 20대 초반 남자의 그것보다 유치하고 졸렬한 편이다.
연애에 있어서 직접적인 경험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내게 김산은 실천할 용기는 나지 않으나 그에 대해 이리저리 왈가왈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겁쟁이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의 치열한 삶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따라서 그와 같은 삶을 살았다면 그런 관점이 형성될 수도 있다는 점에까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김산의 인격적 발전이 여기에서 끝났더라면 이 책을 읽는 가치는 정말 형편없이 떨어졌을 테지만 그는 끊임없는 시련을 이겨내면서 자아의 완성을 이뤄낸다.
결국 김산이라는 인물을 다룬 이 책의 핵심, 김산이란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마지막 장 '패배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자만이'를 읽어보라.
그러고 흥미가 생긴다면 책을 다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비록 나에게는 그렇게 흥미로운 책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휴일에는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특성상 휴일이 대부분이었던 그 20일동안 막상 책을 읽은 시간은 굉장히 적었다는 점을 참작할 수 있겠지만 확실히 나는 근래에 책을 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이 책이 나의 취향과, 또는 나의 기대와 썩 잘 맞아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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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년 겨울이 되도록 이런 책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백범 선생의 '백범일지'와 이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 나타난 두 사람의 독립 운동 노선을 비교하라는 과제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1
비록 그 때까지 백범일지도 읽지 못한 나였지만 최소한 그 책의 존재 정도는 알고 있었던 나로서 님 웨일즈의 '아리랑'이라는 책은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두 책의 비교가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두 책 모두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백범일지는 지난 5월 초에,그리고 이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을 다룬 '아리랑'은 6월 중순에 독서를 마쳤다.
두 책의 비교의 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두 책에 나타나는 독립 운동의 방법론이 비교하기 적합하게끔 잘 대조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도 여기에 이 두 작품에 나타난 김구와 김산의 노선에 대한 비교를 하려면 어느 정도 끄적일 수야 있겠지만 이미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훌륭한 글들에 비해 나의 글이 딱히 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여기서 그런 글을 쓰지는 않으려고 한다. 2
하지만 '백범일지'와 '아리랑'이라는 두 책 자체만 비교하는 것은 나름 신선한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각종 레포트 사이트에 올라가 있는 자료들을 원문 그대로 확인할 수는 없어 자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대부분의 자료들이 책의 내용을 역사적 문헌의 관점에서 분석했지 단순한 문학 작품으로 조명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백범일지'와 '아리랑'은 본질적으로 아주 다른 양상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 차이는 글을 쓴 주체가 누구냐에 기인하는 것이다.
'백범일지'는 백범 선생 당신이 손수 써내려간 책으로 작성한 시기에 따라 크게 두 편으로 나뉘는 책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내려간다는 것은 기억의 왜곡에 빠질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구구절절한 심정을 풀어내는 면에 있어서는 최고의 방법이다.
특히나 백범 선생 같은 삶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우여곡절한 삶이라, 직접적인 경험이 없고서 당시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백범일지'의 첫 편은 무려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야 작성한 것으로 순전히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는 불리함을 안고 작성한 부분이다.
많은 부분에서 오류가 있었고 그런 오류를 붙잡기 위해 수많은 주석이 달렸다.
또한 백범 선생 자신은 그런 부분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겠지만 지천명이라는 그 단어가 가리키듯이 집필 당시의 백범 선생은 인격적으로도 이념적으로도 자신의 정신 세계를 구축하는 단계에 있어서 거의 완성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기 때문에 서술의 내용 면에 있어서 굉장한 깊이가 느껴진다.
두 번째 편의 경우 그 중후함이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겠고 책 마지막에 수록된 '나의 소원'은 이미 한 번 밝힌 바 있지만, 여태까지 내가 본 한글로 쓰인 단문 중 단연 최고의 글이었다.
'아리랑'은 위에서 언급한 '백범일지'의 서술 환경과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우선 '아리랑'이라는 책은 김산 자신이 직접 쓴 책이 아니다.
비록 두 사람 간의 많은 대화와 합의가 전제되어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은 님 웨일즈(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우)라는 외국인 저널리스트의 손에 쓰여진 책이다.
책의 서장에서 이런 말을 찾아볼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지난 이야기를 들려줄 의사가 있다면 저는 당신의 전기를 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줄곧 당신 같은 사람을 소재로 소설을 한번 써보고 싶었어요. 당신이라면 훌륭한 주인공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말로 님 웨일즈가 이 책을 '소설'로서 썼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3
이 관점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가끔은 당시 조선인의 사고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서구화된 관점을 엿볼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은 대부분이 님 웨일즈의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간 부분일 것이다.
같은 문화권에서 자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서로 간의 이해에 오차를 줄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 바로 전기라는 장르다.
하물며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한국인과 미국 유타의 땅에서 태어난 미국인 여자가 영어로 진행되는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 전기에는 얼마나 큰 시각차가 존재할 것인가.
또 한 가지 큰 차이점은 '아리랑'의 경우 김산의 나이가 막 30세를 넘었을 때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주석이 조금 달리기는 했지만 김산의 기억은 대체적으로 정확한 편이다.
하지만 그의 인격은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겨우 완성의 조짐이 보이는 수준으로, 대부분의 경우 방황하는 젊은 지식인의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의 상당 부분은 누군가와 이루어진 대화와 단순한 사실들의 나열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의 신념을 이루고 있는 이론적인 배경과 철학적인 고뇌는 많이 찾아볼 수 없었으며, 새로운 이성을 만나는 부분에서는 억지스러울 정도로 낭만스러운 서술을 하고 있어 독자들이 이 인물에 대해 어떤 일관된 대상을 떠올리는 것을 어렵게 한다. 4
바로 이 두 부분이 '백범일지'와 '아리랑'을 내용 외적인 면에서 간단하게 비교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서술 환경의 차이점을 인지하고 두 책을 읽어 나간다면 조금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두 책의 내용을 비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서론이 너무 길어져 막상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원래 준비한만큼의 분량으로 쓰기에 부담스러워졌다(고 쓰고 귀찮아졌다라고 읽는다.).
그래서 짧게짧게 줄였다. 5
김산은 나의 입장에서 원리주의자이며 극단주의자이며 융통성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에게 자신의 행동 수단은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목적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여야 했고,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는 조금 더 유해질 수 있는 부분에 있어 지나친 행동을 하기 일쑤였다.
그가 더 젊은 날 자신에게 찾아온 발전의 기회들을 그렇게 손쉽게 날려버리지 않았더라면 김산의 정신은 더 빠르게 성숙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때로 우리들은 더욱 낭만적이었다. 연회에 쳐들어가서 톨스토이를 인용하여, 우리들 수백 명이 굶주리고 있을 때 어떻게 하여 부자들이 먹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늘어놓고는 상을 엎어버리고 아주 경멸하는 태도로 걸어 나왔다. 배고픔과 자존심을 달래며.
여성과 결혼은 생물학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라고 나는 단정지었다. 평화의 시대에는 여성과 결혼이 중요하지만, 투쟁의 시대에는 부차적이며 또 의지로 부차적인 위치로 끌어내려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남자도 결혼을 하면 독립성을 잃어버리고, 연애를 하면 더욱 강한 속박에 묶인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개인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자기 신체의 내적인 자유까지도 잃어버린다. 여자는 남자보다 약한데, 나는 어떤 종류의 약함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혁명사업을 하면서 살아가야지, 여자나 돌보며 살 수는 없다.
위에서도 언뜻 보이지만 김산의 여성관은 상당히 독특하다.
다소 생뚱맞은 주제이지만 김산의 연애관을 현대의 연애심리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인 것 같다.
이 분야의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에 김산의 연애관, 여성관은 21세기를 살아가는 20대 초반 남자의 그것보다 유치하고 졸렬한 편이다.
연애에 있어서 직접적인 경험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내게 김산은 실천할 용기는 나지 않으나 그에 대해 이리저리 왈가왈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겁쟁이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의 치열한 삶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따라서 그와 같은 삶을 살았다면 그런 관점이 형성될 수도 있다는 점에까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류링은 이 모든 경우에 딱 들어맞는 아가씨였다. 그녀는 그다지 예쁘지는 않지만 독립적이고, 육체적으로 튼튼하고 매력적이며, 지성이 있고, 마음씨가 따뜻하고, 용감하고, 솔직하고, 훌륭한 혁명가였다. 게다가 그녀는 나를 좋아했고 나 또한 그녀가 좋았다. 단 하나 잘못된 점이 있었다. 나 이전에 이미 연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원래의 내 그림 속에는 이러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혁명적 사상가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되어서 밖으로 밀쳐내 버렸다.
결국 내 본질 속에는 행복이라는 것이 없으며 행복을 찾는 것조차도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떤 다른 아가씨와 함께 있다 할지라도 나는 다시 불행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김산의 인격적 발전이 여기에서 끝났더라면 이 책을 읽는 가치는 정말 형편없이 떨어졌을 테지만 그는 끊임없는 시련을 이겨내면서 자아의 완성을 이뤄낸다.
결국 김산이라는 인물을 다룬 이 책의 핵심, 김산이란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마지막 장 '패배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자만이'를 읽어보라.
그러고 흥미가 생긴다면 책을 다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비록 나에게는 그렇게 흥미로운 책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 물론 김구와 님 웨일즈가 아니라 김구와 김산이 그 두 사람이겠다. [본문으로]
- 좋은 예시가 여기에 있다. http://risingstar12.blog.me/20120107389 [본문으로]
- 아마 '소설'이란 번역을 할 때 같은 단어를 피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가 아닌가 싶다. [본문으로]
- 두 부분 다 이 책이 외국인 여자의 손에 쓰여졌다는 것에도 기인한다. [본문으로]
- 어떻게 보면 짧게 줄였다기보다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의 내용을 다 빼버렸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다. 20세기 이데올로기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공산주의, 사회주의, 톨스토이, 계급, 투쟁 따위를 언급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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