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Hours

| 2011. 6. 15. 09:23

굉장히 가까운 지인이 이렇게 보면서 힘들었던 영화는 또 없었다고 말한 것이 3월초였고, 내가 드디어 그 힘든 영화를 보게된 것은 어제였다.
나의 한줄 감상평 역시 '보기 힘들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가장 보기 편한 장면이랄까


나는 보통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혹시라도 튀어나올 스포일을 방지하기 위해 내용 자체에 대한 언급은 잘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례적으로 내 맘대로 스포일을 하겠다!
주인공은 하이킹을 하다가 바위와 함께 좁은 낭떠러지로 추락을 하는데 오른팔이 바위와 절벽에 맞물려서 빠지지가 않자 스스로 자신의 오른팔을 끊고 탈출하는 내용이다.
실화 바탕이다.

이 무슨 만행이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당한 스포일.
하지만 우리가 스포일을 당했을 때 기분이 나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이 영화가 그런 면에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렇게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영화의 결말을 알게 되었을 때 짜증이 나는 이유는 그 영화의 결말이 너무나 중요해서 결말을 알아버리면 그 마지막까지 이르는 과정이 매우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127시간'은 어떤 영화일까?
결론을 알아도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말이다.[각주:1]
이 영화의 결말인 팔을 끊고 탈출하는 것은 비록 그 이름이 '결말'이긴 하지만 그 이상의 중요함은 없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은 바로 주인공이 그 뻔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다.
이제 좀 가슴이 시원해졌는지 모르겠다.

가슴이 시원해짐을 느낍니다.


이 영화는 많이들 인도 영화라고 착각하는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제작진이 대부분 다시 손을 잡고 만든 영화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상세보기

대니 보일이 여전히 메가폰을 잡았고,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제작을 맡았던 크리스티안 콜슨이 마찬가지로 제작을 맡았다.[각주:2]
각본을 맡았던 사이먼 뷰포이도, 음악을 맡았던 A.R.라만도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이어 '127시간'을 만드는 과정에 다시 참여했다.
개인적으로 여태까지 본 영화 중에 최고라고 생각하는 '시티 오브 갓'에 맞먹을만큼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보여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제작진이 다시 모여 만들어 낸 '127시간' 역시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한다.

시티 오브 갓 상세보기

상황이 점점 더 극으로 치달으면서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나타나는 각종 환영과 끊임없이 꾸게 되는 자신의 소망이 발현된 꿈, 그리고 끊임없이 빠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상념들을 표현할 때 그야말로 예술에 가까운 화면을 보여준다.
유식한 말로 미쟝센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면, '127시간'은 여태까지 봤던 어떤 영화보다 기발한 미쟝센을 가지고 있는 영화다.
특히나 영화의 프레임은 기본적으로 하나라는 고정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화면을 나누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는 부분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렇게 한 장면만 따로 떼어놓고 보니 굉장히 어색하다.


또한 이 영화는 고립되어 있는 한 사람의 심정을 담아내기 위해 대사를 극도로 자제하고, 주인공의 행동이나 주변 사물의 상황을 제시하는 간접적인 화법을 적절하게 구사한다.
여기서 적절하다는 말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든 관객이 알아차릴 수 있으면서도 너무 떠다 먹여주는 식의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 영화 외적인 면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각주:3], 영화의 내용에서는 어떤 점을 느낄 수 있는가.
우선 굉장히 목이 마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신경을 건드릴 때 나는 기괴한 소리는 내 팔꿈치를 꿈틀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빠져있던 고어물로 단련이 되어있는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등에 식은 땀이 났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이 하는 생각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을 대비하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애런 랄스톤이 영화 초반에 여자 둘을 만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심정에 충실하게 만들어졌다고 했을만큼 영화에서 나오는 심경 묘사는 한 눈에 보기에도 꾸밈이 없다.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에 실제 주인공이 찍었던 영상이 나왔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소소한 아쉬움을 제외하고 이 영화에서 내가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관객의 심정을 움켜잡고 뿌리부터 뒤흔드는 영화가 훌륭한 영화라는 나의 영화관에서 이 영화는 훌륭한 영화에 속한다고 본다.
비록 수상은 실패했지만 아카데미에 6개 부문, 골든 글로브에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사실은 나의 의견이 단순한 사견에 그치지 않는다는 증거이겠다.
  1. 못 믿겠다면 영화를 실제로 보면 되겠다. 그러면 나의 결백이 증명되겠지. [본문으로]
  2. 단 '127시간'에서는 감독인 대니 보일과 영화 감독이자 제작자인 존 스미슨과 함께 제작을 맡았다. [본문으로]
  3. 쓰면 쓸 수록 나의 무지함이 드러나는 것 같아 더 진행할 수가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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