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 2011. 6. 8. 21:14

내가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무대에서 공연을 했던 것은 2010년 1월 27일의 일이다.
대전의 한 라이브 클럽의 하우스 밴드로 소속되어 한 달에 한 번 공연을 하는 것이 첫 계약 내용이었으나 중간에 한 번은 빼먹었다.
나는 그 밴드에서 메인 보컬과 세컨 기타라고 할 수 있는 포지션을 담당했다.
앞으로 나의 밴드 인생이 어떤 식으로 풀릴지는 미지수이나 아마 이 때가 나의 밴드 인생에 있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야말로 써머 오브 식스티나인, 아니 윈터 오브 오나인('09)이었다.

첫 공연은 기록에 의하면 2009년 10월 28일에 있었다. 정말 옛날의 일이다.


작년 1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나는 사진에 보이는 저 이쁜 SG를 동아리 후배에게 무상으로 대여하고 당분간 '직접적으로 하는 음악'과는 거리를 두고자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떠난 동유럽 여행 중 우크라이나에서의 한가로운 일상은 다시 한 번 내 손에 기타를 잡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약 1달 정도 다른 사람의 기타를 빌려서 취미로 치고는 우크라이나를 탈출하면서 다시 '직접적으로 하는 음악'과 멀어졌다.

나의 손에 다시 기타가 들어온 것은 작년 10월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경우와 비슷하게 지루한 서울 생활을 이기지 못한 나는 먼저 나의 예쁜 SG를 가지고 있는 동아리 후배에게 기타를 돌려줄 수 있는지 연락을 해보았으나 돌아온 대답은 당분간은 새 기타를 살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어쿠스틱 기타를 하나 사자고 결심하고 부모님으로부터 3개월 무이자 융자를 받아 소리가 괜찮은 기타를 하나 장만했다.
중학교 이후 처음으로 어쿠스틱 기타를 주(主)로 잡게 된 것이었다.
일렉트릭 기타와는 다른 특유의 빳빳한 텐션과 몽글거리는 음색에 매료되어 한동안 열심히 어쿠스틱 기타를 쳤고 그 덕에 예전보다 강한 왼손 악력을 얻었다.

학교 인맥을 제외하고, 요 근래에 주변에 기타를 같이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경력으로보나 실력으로보나 내가 제일 우위에 있었다.
나는 나의 졸렬한 실력으로도 다른 사람의 연주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뻐 자주 다른 사람들과 기타를 같이 쳤고, 조언을 줄 수 있는 부분엔 조언을 주었으며, 기타나 밴드와 관련한 이야기가 필요한 부분엔 나의 경험을 기꺼이 이야기했다.
거의 '기타'하면 '이한결'이 떠오를 정도로 거의 기타와 동일시 되던 요 근래의 어느 날.

자주 일렉트릭 기타 이야기를 꺼내던 나를 위해 누군가 손수 자신의 방에서 잠 자던 일렉트릭 기타와 앰프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굉장히 기쁜 마음에(게다가 그 사람의 기타 역시 SG였다.) 심금을 울리는 드라이브를 걸고 연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악력은 강해졌으나 기술적인 면에서 굉장히 퇴보한 나의 밴드식 연주를 들으면서 많이 좌절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여기서 말하는 문제는 내 연주 실력이 떨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연주를 듣던 사람들이 뭔가 전기적인 소리의 매력을 찾았다는 데에 있다.
정말 연주 그 자체는 형편없었지만 새로운 소리를 눈 앞에서 접한 사람들에겐 임팩트가 상당했던 모양이다.
누군가 갑자기 밴드 드립을 치기 시작했다.
그 드립은 드립의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구체화되었다.
수많은 메일이 오고 갔다.
나는 비록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최고 경험자라는 경력을 앞세워 이 논의의 중심에 서서 그 수많은 의견을 조율하여 이 전대미문의 프로젝트를 현실적으로 구상했다.

그러던 어제, 내 기억이 맞다면 나의 인생에 있어서 8번째 밴드[각주:1]가 결성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밴드의 모습. 은 훼이크고 아쉽게도 여자 멤버는 없다.


노래하는 이 1명에 나를 포함한 기타 2명, 베이스 1명에 드럼 1명.
드럼을 제외하면 밴드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을 이끌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필요도가 다소 떨어지는 건반 세션은 우선 제외했다.

이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신생 밴드는 내가 역대로 했던 밴드들 중에 최악의 조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밴드 경험이 없는 사람이 태반이다.
밴드 활동의 기본인 합주라는 것이 물론 연주 실력, 노래 실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합주 그 자체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련미라는 것이다.
개개인의 소리를 어떻게 조화롭게 운용할 것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그 답답함을 생각하자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하다.

제대로 된 합주 여건이 없다는 것도 대단한 단점이다.
좋은 합주 환경이 조성되어있지 않다는 이 점은 나의 옛 밴드 '허세[각주:2]'의 상황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그 당시와 차이가 있는 것은 리더 격인 나의 귀가 요구하는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과연 열악한 환경 속의 합주가 나의 기준과 얼마나 부합할 수 있을까.

또 다른 단점은 밴드 멤버의 교체가 필연적이라는 사실.
현재 소속된 집단의 특성상 이 점은 나아질 수도, 고쳐질 수도 없는 점이다.
기껏 합주가 된다 싶을 때 새로운 멤버로 교체되어야 한다는 것.
여자랑 술을 먹다가 분위기가 좀 좋아지려고 할 때쯤 통금을 둘러대며 떠나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이다.

뒷모습도 뒷모습 나름.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열악한 상황을 짊어지고 내년 2월에 공연을 하기로 결심했다.
단독 공연은 힘들 것이다.
그래도 구속의 메마른 황무지에서 음악이라는 오아시스를 창조한다는 위대한 사명감을 모두가 가진다면 어떤 형태로든 우리만의 공연을 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현재의 밴드원, 또는 미래의 밴드원 중에 누가 이 글을 보게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현재 또는 미래의 밴드원들 또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이한결을 좋아하는 사람들(여기에 가장 비중이 쏠릴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이 있다면 이 무명의 밴드에게 조촐한 응원이라도 부탁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멈출 수 없는, 아니 멈추지 않는 나의 이 열정이 부디 올바른 방향으로 승화되기를!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나의 8번째 신생 밴드의 창립 2일을 기념하는 글을 마치며, 세계적인 밴드(였)던 오아시스가 이제 막 태어난 밴드에게 주는 짧고 굵은 덕담 한 마디 올린다.

 
  1.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밴드 구성(예를 들면 허세 1기와 2기와 3기 등)은 셈에서 제외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2개의 밴드, 다음 해에 다른 밴드를 하나 더 해봤고, 대학교 1학년에 하나, 2학년에 하나 더, 대학교 3학년(+휴학 시절)에 서로 다른 두 밴드에서 더 연주&노래를 했다. 이 숫자를 모두 합하면 7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본문으로]
  2. 괜히 정확해지자면 '팀 허세'가 더 맞는 표현이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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