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ing Arizona

| 2011. 5. 21. 10:22

우리나라 제목으로는 '아리조나 유괴사건'인 이 영화는 영어 제목을 그대로 옮기자면 '아리조나[각주:1] 키우기' 정도가 될텐데 그 이유는 '아리조나'라는 성을 가진 아이를 유괴하는 이야기가 메인 플롯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 아리조나 유괴사건이라길래 꼭 '파고' 같은 범죄 스릴러 물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코엔 형제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파고 상세보기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코엔 형제의 작품을 더 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이 사람들의 영화를 보고 단 한 번도 재미가 없다거나 시간이 아깝다거나하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기에, 그리고 가장 최근의 본 이들의 작품인 '더 브레이브' ㅡ 영어 제목으로는 '트루 그릿(The True Grit)', 우리나라에 출시된 영화의 이름이 어째서 '더 브레이브'가 되었는지는 궁금하지조차 않다 ㅡ 가 상당히 볼만했기 때문이리라.

더 브레이브 상세보기

이 영화 '아리조나 유괴사건' 역시, 이 작품이 그들의 2번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수준의 영화였다.
영화가 다 끝나고는 '역시 코엔'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영화에선 마땅히 남겨두어야 할 한 '장면'은 찾지 못했다 출처는 http://millenione.blog.me/120127533430


위키피디어에서 코미디 장르로 분류되는 이 영화의 진정한 컬트적 재미를 느끼기 위해선 코엔 형제 특유의 화법과 말 뒤의 숨겨진 미묘한 장난을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
넘쳐나는 독백에서 묻어나는 다소 냉소적인 이성(理性)과 미국의 영어 사투리에서 우러나오는 특유의 백치미, 각 캐릭터가 갖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유래되는 해학미 등을 빼먹는다면 코엔 형제의 영화가 높은 질의 웃음을 선사한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다.
(라고 지껄이고는 있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코엔 형제의 이런 컬트 코미디식 영화에 빠지지 않는, 다소 생뚱맞은 결론이 지니는 병맛 감동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저예산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꼼꼼하게 구상될 수밖에 없었다는 형 코엔의 말마따나 각본에 빈틈이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팝콘과 함께 감상해도 충분히 재미있을 영화다.
바보 같은 상황에 바보 같은 캐릭터들이 등장해 빚어내는 바보 같은 광경은 아마 전우주적인 웃음거리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영화의 유머에는 평범한 코미디 영화의 그것 이상의 뭔가가 더 존재한다.
특히 주인공인 하이와 그의 옛 친구 게일이 트레일러에서 몸싸움을 하는 장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태까지 나름 영화를 많이 봐온 사람으로 자부하고 있는 나이지만 이런 액션신은 난생 처음 보는 듯하다.
이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에서 그들의 비범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카메라의 움직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카메라의 위치와 화면의 구성, 즉 세련된 말로 미쟝센이라고 하는 그것이다.
아주 사소한 디테일 하나하나 놓치지 않은 꼼꼼하고 유쾌한 이 격투? 장면은 앞으로 내 머리 속에 길이길이 기억되리.

이 영화의 대사에는 짧게나마 한국이 언급된다.
아이를 납치해서 키우고 있는 주인공 부부의 집에 친구가 놀러와서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백인 아이를 입양할 수 있었냐면서 하는 말이다.

I said, "Healthy white baby? Five years? What else you got?" Said they got two Koreans and a negra born with his heart on the outside. It's a crazy world.

북한의 해외 입양이 가능한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불분명하게나마 아주 힘든 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저기서 언급하고 있는 Koreans는 바로 우리나라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겠다.
뭐 이들이 인종차별주의자의 관점에서 저런 부분을 집어넣었겠냐마는 해외로 입양되어나가는 우리나라 꼬마들의 야속한 운명과, 그들이 입양 대상으로서 기피되는 부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곱씹어보면 괜히 마음이 씁쓸해진다.

각설하고 위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주연으로 나오는 남자는 니콜라스 케이지다.
케이지가 64년생이고, 이 영화가 87년에 개봉했으니 약관 23세의 아주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저 배우가 니콜라스 케이지를 굉장히 빼닮은 어떤 다른 배우라고 생각했다.
주연 배우들의 이름이 나오는 초반의 크레딧을 조금 놓친 탓이겠다.

니콜라스 케이지(Nicholas Kim Coppola) 상세보기

여주인공 역엔 저 유명한 영화 '피아노'에서 주연을 맡았던 홀리 헌터가 출연한다.[각주:2]
필모그래피를 주욱 살펴보니 에반 레이첼 우드가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기에 있어서 호평을 받았던 영화 '써틴'에서 어머니 역할을 맡았던 사람이더라.
올해 4월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바이섹슈얼리티를 선언한 우드가 지금 조지 클루니가 연출, 감독, 각본, 주연을 맡고 있는 드라마 영화를 촬영 중이라니 기대를 걸어봐야겠다.

영화의 음악은 이 뒤로 주욱 코엔 형제와 작업하게 되는 카터 버웰이 맡았다.
남부의 황량한 대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장난기 넘치는 컨트리 음악을 집어넣어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살리는 데 한 몫 톡톡히 해냈다.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글을 썼는데 당연히 글 쓰는 시간이 밥을 먹는 시간보다 길었다.
짭쪼름한 조미김을 습관적으로 씹어먹으면서 글을 썼는데 이제는 더 이상 짜서 김도 못 먹겠다.
그래서 글도 여기까지.
아마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것 같다.

입술이 짜다.
  1. 썩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아리조나'보다 '애리조나'를 선호한다. 비록 '애리조나'가 비교적 푸석푸석한 지역이라고는하나 '아리조나'라고 하면 정말 삭막하기 그지없는 불모의 땅이 연상되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2. 이 영화를 아직 보진 못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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