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진자 2

| 2011. 5. 23. 12:17

1권에 비해 상당히 적은 분량이었기에 브릿지를 부르는 느낌으로 부담없이 읽었다.
3장에서 끝난 1권에 이어 2권에는 2개의 긴 장이 포함되어있다.

푸코의진자2(개정판)
카테고리 소설 > 기타나라소설 > 이탈리아소설
지은이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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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기본적으로 숨을 고르는 책이다.
한동안 이리저리 주변을 건드리면서 서술의 속도를 늦춘다.
이 소설에 결과적으로 용의자라든가 범인이라든가 하는 것이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어쨌든 수상쩍은 사람들을 반복해서 등장시킴으로써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킨다.
그러면서도 수로 이야기나 신비스러운 광경[각주:1]을 목격하게 되는 이야기 등을 꺼냄으로써 이 방대한 이야기의 마지막 권을 준비하는 데에도 모자람은 없다.

2권의 초반부를 장식하는 출판 업계에 관한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롭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출판 업계에 종사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독서라는 것도 직업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다면 굉장히 괴로운 일이 되겠지.
하지만 분명히 어떤 책을 기획하고 그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편집하여 출간하는 일은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류의 재미는 바로 내가 학창 시절[각주:2]에는 무시하고 지냈던 학구적인 만족감이였으리라. 어린 나이에 양서를 더 접할 수 있었더라면, 그럴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되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양질의 사고를 하고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 움베르토 에코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지식 체계를 정리하는지 서술하는 장면도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컴퓨터 대신 나에게는 상호 참조 색인 카드가 있었다. 네불라이[星雲]와 수학자 라플라스, 수학자 라플라스와 칸트, 칸트의 출생지인 쾨니히스베르크와 쾨니히스베르크에 있는 일곱 개의 교량과 토폴로지(風土誌)의 제 이론……. 이것은 관념의 연상을 통해 소시지에서 플라톤까지 가야 하는 말놀이와 비슷했다. 가령 소시지에서 플라톤까지는 이렇게 간다. 소시지, 돼지 털, 화필(畵筆), 매너리즘, 이데아, 플라톤, 식은 죽 먹기였다. 따라서 아무리 맥 빠지는 원고라도 내 비장의 무기인 색인 카드 파일에 적어도 스무 장은 보태 줄 터였다. 내게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는데, 모르기는 하지만 정보 기관에도 그런 규칙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보 위에 정보 없다는 원칙이었다. 정보가 파일에 모이고, 특정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규명해 내는 것이 곧 힘이다. 정보와 정보 사이의 연관성은 늘 존재한다. 찾아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바로 이런 정보간의 상호 연관성을 찾는, 이 책에서 그토록 외치는 헤르메스학적 접근은 ‘푸코의 진자’처럼 사실에 바탕을 둔 팩션 음모 소설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음모론이라는 것 자체가 실제로 존재하는 개별 사실들 사이의 실낱같은 관련성을 찾아 한 데 묶음으로써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연관성을 찾기 위해 우리는, 사실이라고 또는 사실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또는 당연시되는 기존의 정보, 기존의 관련성에 대해 에코가 1권에서 말한 바 있는 무엇이든 의심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그는 책의 다른 부분에서도 이러한 점을 언급한다.

당신 말이 옳아. 어떤 사상(事象)이든, 다른 것과 관련을 맺을 때 비로소 중요성을 획득하는 법일세. 관련성이야말로 우리의 시각을 바꾸거든. 관련성이라는 것 때문에 세계의 드러나는 모든 사상, 우리가 보거나 들은 것, 쓰이거나 언표된 사상은 표면상의 의미 이상의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고 그 의미를 통해 우리에게 궁극적인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니깐. 규칙은 간단하다네. 의심하라, 오로지 의심하라. 의심하면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교통 표지판에서도 언외언(言外言)을 읽을 수 있는 것이네.

하지만 이 책에서 에코가 보여주는 헤르메스학적 접근은 단순한 음모론의 울타리를 넘어선다.
특히나 ‘운전자를 위한 자동차 교범’을 통해 표현되는 일상 속에서의 헤르메스학적 접근을 읽고 있으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다.(바로 이런 부분이 궁금할 때 직접 책을 읽어보면 되는 것이다.)
과연 그 누가 자동차 동력 기관에서 세피로트 나무와의 관련성을 유추할 수 있겠는가.
역자 이윤기씨는 1권에서 주석을 통해 이런 말을 한다.

『피카트릭스』라는 잡지의 이름이 그렇듯이 에코의 이 소설에 나오는 많은 고유 명사는 다룬 문화 유산(텍스트)과 연관성을 지닌다. 이러한 상호 연관성은 <인터텍스추얼리티intertextuality>라고 불린다. <상호 텍스트성>이라고 번역되는 이 용어는 사실 <상호 전거성(相互典據性)>으로 번역하면 좋을 듯하다. 한 원전과 다른 원전이 서로 출처를 문헌상으로 전거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상호 전거성, 인터텍스추얼리티를 자유 자재로 구사하는 것이야말로 지성인이 행할 수 있는 박식함의 종결류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에코는 ‘푸코의 진자’ 2권에서 자신의 헤르메스학적 접근을 다음과 같이 재치있게 마무리 짓는다. 

「내일은 전화번호부를 신비주의적인 관점에서 분석해 오도록 할게요.」
「우리의 카소봉 씨는 언제 보아도 야심만만하다니까. 전화번호부를 분석하자면 <일자>와 <다자(多者)>라고 하는 불가해한 문제에 먼저 도전해야 할걸. 그보다 세탁기 분석으로 시작하지 그래?」
「그건 너무 쉬워요. 흑에서 백보다 더 흰 백으로 향한 연금술적 전환.」

저자의 뛰어난 글 솜씨는 다소 허무맹랑했던, 1권에서 아리에티 대령이 말한 내용에 신빙성을 끊임없이 더함으로써 이 소설의 주인공 카소봉이 그러듯 독자들의 의식이 자연스레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게끔 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카소봉과 같은 사람들을 타겟으로 만든 소설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범인(凡人)이 여태까지의 이야기 전개에 흥미를 느끼고, 그의 생각과 심정에 공감하기가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면서 이런 계산까지 집어넣은 것이라면 그저 탄복!
엉엉, 나를 가져요!

마음의 소리 안 본 지도 꽤 된 것 같다.


2권의 후반부로 가면서 프리메이슨과의 관계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마치 댄 브라운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 나기도 했다.
댄 브라운의 책은 약 5년전 ‘천사와 악마’를 읽어본 것이 유일한데 지금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평가하자면 움베르토 에코의 책이 댄 브라운의 그것보다 좀 더 담백하고 은은한 맛이 있는 것 같다.

댄 브라운(Dan Brown) 상세보기
천사와악마 상세보기

과연 에코는 이 흥미진진했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끝 맺을까.
빨리 3권을 읽어야겠다.


  1. 책에 나오는 각종 의식들에 대해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지만 마땅히 마음에 드는 자료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의식일까? [본문으로]
  2. 학창 시절이라 하면 대개 중, 고등학교 때를 의미한다. 별로 대학교 같지도 않는 대학교에서 보낸 세월은 ‘학’창 시절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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