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종류의 추천도서목록에 존재하는 것만 확인해 오다가 지인을 통해 문득 '아직도 이 책도 안 읽어봤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읽게 된 책.
나만의 한줄평을 내려보자면 '왜 이 책이 각종 추천도서목록에서 빠지지 않는지 한 번 쓰윽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이다.
전문적인 글쟁이가 어떤 사람과의 인터뷰를 통해 써낸 타인에 의한 자서전이 아닌, 본인이 자식들을 위해 쓴 자서전이라는 점이 이 책의 큰 특징이다.
이름을 김구가 아닌 기구라고 해도 좋을만큼 기구한 삶을 살아온 만큼 내용의 대부분을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던 백범의 서술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훌륭한 주해로 커버된다.
한 지인은 많은 주석 때문에 이 책을 한 번도 완독할 수 없었다는 말을 했는데, 그 수많은 주석을 제대로 읽지 않느다면 백범일지를 온전히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석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들을 빼놓으면 안 되겠다.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이른바 치하포 의거라고 불리는 사건으로 백범일지에 따르면 백범 선생이 젊은 날 치하포에서 일본군 중위를 국모 시해 사건에 대한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 하에 살해한 일이다.
쟁점이 되는 것은 과연 첫째로 당시 살해당한 쓰치다 조스케라는 사람이 과연 일본군 중위가 맞는지, 둘째로는백범 선생의 이 같은 행위가 어느 정도의 명분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다.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이 뜨거운 사실 토론은 네이버 캐스트에 올라온 김구편의 댓글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임에 틀림없는 백범 선생의 인생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이루어져 '사실'과 '잘못된 정보'를 가려낼 수 있다면 백범일지가 갖게 되는 역사적 의의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자신한다.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백범 선생은 기본적으로 대표적인 과도기적 시대의 인물로 보여진다.
어렸을 적부터 전통적인 성리학적 교육을 받고 자란 백범 선생의 일면을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그의 모습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현재의 우리가 보기엔 무슨 조선시대 전래동화의 효자 효녀 이야기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불과 1876년생인 백범 선생도 근본에는 이런 폐단이라고 하기도, 진정한 효심이라고 하기도 뭐한 성리학적 정신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는 어린 시절 동학에 가입한 전력이나, 후조 고능선 선생의 밑에서 공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리라.
하지만 백범 선생의 견문이 고작 조선 시대를 막장의 끝으로 몰고간 성리학이란 우물에만 국한되어 있었다면 현재 그의 저서가 이토록 가치 있게 읽히지는 않을 노릇이다.
비록 백범 선생 자신은 과거의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그의 놀랄만큼 선구자적인 부모님의 지도 방향과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직접 보고 들어 알게 되는 신문물의 영향을 받아 백범 선생은 서서히 민족의 선지자로서의 모습을 갖춰나간다.
구체적으로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해 지식을 습득했는지 궁금했으나 옥중의 이야기가 썩 자세히 서술되어있지 않아 내가 원하는 정보를 알아내기는 힘들었다.
우리 민족의 진정한 밝은 앞날을 위해 인습은 없애고 서구 문화의 산물(아주 넓은 의미에서 서구에서 유래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이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받아들이자는 의식이 생겨난 백범 선생의 의지는 다음 인용문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당대 사회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우리의 조상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1922년에 출판된 버트런드 러셀의 '러셀, 북경에 가다'(원제 : The problem of China)에서 러셀이 당시 중국에 필요한 자세를 서술해 놓은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러셀이 말하듯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서구의 '정치에 관한 도덕이나 도덕률이 아니라 과학과 공업 기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형성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한 수많은 인재들은 궁극적인 목표를 공유하면서도 한낱 이념 싸움으로 충분히 이뤄낼 수 있는 일도 달성하지 못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랴.
백범 선생은 이에 대한 비판도 빼먹지 않았다.
임시정부 수립 이후 백범 선생은 민족의 대동단결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펼쳤으나 그의 시도는 내부적,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번번히 실패로 돌아간다.
이런 면에서 그의 정치적 수완이나 감각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하는 의견도 있는데 그런 의견에 어느 정도 동조하는 바이나 문제의 화살을 모두 백범 선생에게 돌린다는 것 또한 분명히 잘못된 의견이겠다.
논점의 방향을 바꿔 백범 선생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는 거의 초인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나싶다.
특히나 공과 사를 구분하는 면에서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면을 보여준다.
부모를 제외한 그의 피붙이들의 죽음에 대한 언급은 단 1줄, '누가누가 어떻게하여 죽었다'정도로 그치는 데에 비해 그와 일을 같이하며 억울하게, 안타깝게 죽어간 동료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렇게 비통하게 서술을 할 수가 없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자질이나 그가 실제로 느낀 슬픔과 실의가 어느 정도였을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이는 감옥에 갇힌 김구 선생을 면회하는 김구 선생 어머니의 초연한 태도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역시 저렇게 뛰어난 부모가 있었기에 그 자식 또한 더더욱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고난 속에서도 쉽게 포기하는 법이 없고, 자신의 동료를 항상 챙기며 모든 것을 우리 민족이라는 입장에서 한아름에 안고 밀고 나가려는 선생의 노력을 차분히 읽어나가면 누구에게나 감동이 몰려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감동은 책의 마지막에 실린 그 유명한 '나의 소원'이라는 글로 집대성된다.
한글로 쓰인 단문 중에 이만큼 훌륭한 글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글이지만 백범일지를 모두 훑고나서 읽는 그 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추천한다.
아래 전문을 수록한다.
나만의 한줄평을 내려보자면 '왜 이 책이 각종 추천도서목록에서 빠지지 않는지 한 번 쓰윽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이다.
전문적인 글쟁이가 어떤 사람과의 인터뷰를 통해 써낸 타인에 의한 자서전이 아닌, 본인이 자식들을 위해 쓴 자서전이라는 점이 이 책의 큰 특징이다.
이름을 김구가 아닌 기구라고 해도 좋을만큼 기구한 삶을 살아온 만큼 내용의 대부분을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던 백범의 서술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훌륭한 주해로 커버된다.
한 지인은 많은 주석 때문에 이 책을 한 번도 완독할 수 없었다는 말을 했는데, 그 수많은 주석을 제대로 읽지 않느다면 백범일지를 온전히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석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들을 빼놓으면 안 되겠다.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이른바 치하포 의거라고 불리는 사건으로 백범일지에 따르면 백범 선생이 젊은 날 치하포에서 일본군 중위를 국모 시해 사건에 대한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 하에 살해한 일이다.
쟁점이 되는 것은 과연 첫째로 당시 살해당한 쓰치다 조스케라는 사람이 과연 일본군 중위가 맞는지, 둘째로는백범 선생의 이 같은 행위가 어느 정도의 명분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다.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이 뜨거운 사실 토론은 네이버 캐스트에 올라온 김구편의 댓글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임에 틀림없는 백범 선생의 인생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이루어져 '사실'과 '잘못된 정보'를 가려낼 수 있다면 백범일지가 갖게 되는 역사적 의의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자신한다.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백범 선생은 기본적으로 대표적인 과도기적 시대의 인물로 보여진다.
어렸을 적부터 전통적인 성리학적 교육을 받고 자란 백범 선생의 일면을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그의 모습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산골의 가난한 집에서 고명한 의사를 부른다거나 기사회생의 명약을 드시게 하기에는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 할머님이 임종하실 때 아버님께서 손가락을 자른 것도 이런 절박한 지경에서 하신 일이었는데, 내가 또 단지한다면 어머님의 마음이 상하실 터이다.
그래서 나는 허벅지 살을 베어내기로 결심하고, 어머님이 계시지 않을 때를 틈타 왼쪽 허벅지에서 살조각 한 점을 떼어내었다. 고기는 불에 구워서 약이라 아뢰고 잡수시게 하고, 흐르는 피는 드시게 하였다. 그래도 양이 적은 듯하여 다시 칼을 들어 그보다 크게 살조각을 떼어내려고 할 때에는, 처음보다 천백 배의 용기를 내어 살을 베었지만 살조각은 떨어지지 않고 고통만 심했다. 두번째는 다리 살을 베어놓기만 하고 손톱만큼도 떼어내지 못했다. 나는 스스로 탄식했다.
현재의 우리가 보기엔 무슨 조선시대 전래동화의 효자 효녀 이야기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불과 1876년생인 백범 선생도 근본에는 이런 폐단이라고 하기도, 진정한 효심이라고 하기도 뭐한 성리학적 정신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는 어린 시절 동학에 가입한 전력이나, 후조 고능선 선생의 밑에서 공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리라.
하지만 백범 선생의 견문이 고작 조선 시대를 막장의 끝으로 몰고간 성리학이란 우물에만 국한되어 있었다면 현재 그의 저서가 이토록 가치 있게 읽히지는 않을 노릇이다.
비록 백범 선생 자신은 과거의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그의 놀랄만큼 선구자적인 부모님의 지도 방향과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직접 보고 들어 알게 되는 신문물의 영향을 받아 백범 선생은 서서히 민족의 선지자로서의 모습을 갖춰나간다.
구체적으로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해 지식을 습득했는지 궁금했으나 옥중의 이야기가 썩 자세히 서술되어있지 않아 내가 원하는 정보를 알아내기는 힘들었다.
우리 민족의 진정한 밝은 앞날을 위해 인습은 없애고 서구 문화의 산물(아주 넓은 의미에서 서구에서 유래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이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받아들이자는 의식이 생겨난 백범 선생의 의지는 다음 인용문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자제를 교육하라고 권하니 머리 깎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교육은 단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인재를 양성하여 장래 완전한 국가의 일원이 되어, 약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어둠에서 광명을 되찾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의 귀에는 천주학이나 하라는 소린 줄 알고, 자긴 가문 중에도 예수교에 참가한 사람이 있다며 대화를 기피하였다.
(중략)
구식 양반은 군주 일개인에 대한 충성으로도 자자손손이 혜택을 입었거니와, 신식 양반은 삼천리 강토의 이천만 민중에게 충성을 다하여 자기 자손과 이천만 민중의 자손에게 만세토록 복음을 남길지라. 그 얼마나 훌륭한 양반이냐. 환등 기구를 가지고 고향에 갔을 때, 나는 인근 양반 상놈을 다 모아놓고, 환등회 석상에서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라고 절규하였다.
당대 사회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우리의 조상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비운은 사대사상의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질적인 국리민복을 도외시하고, 주희학설 같은 것은 원래 주희 이상으로 강고한 이론을 주창하여 사색 당파가 생겨 수백년 동안 다투기만 하다 민족적 원기는 다 소진하고, 발달된 것은 오직 의뢰성뿐이니, 망하지 않고 어찌하리오.
그의 이러한 관점은 1922년에 출판된 버트런드 러셀의 '러셀, 북경에 가다'(원제 : The problem of China)에서 러셀이 당시 중국에 필요한 자세를 서술해 놓은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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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요한 것은 러셀이 말하듯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서구의 '정치에 관한 도덕이나 도덕률이 아니라 과학과 공업 기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형성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한 수많은 인재들은 궁극적인 목표를 공유하면서도 한낱 이념 싸움으로 충분히 이뤄낼 수 있는 일도 달성하지 못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랴.
백범 선생은 이에 대한 비판도 빼먹지 않았다.
정주의 방귀를 '향기롭다'고 하던 자들을 비웃던 그 입과 혀로 레닌의 방귀는 '달다' 하니, 청년들이여. 정신을 좀 차릴지어다. 나는 결코 정주학설의 신봉자가 아니고 마르크스와 레닌주의 배척자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특성과 백성들의 수준에 맞는 주의와 제도를 연구·실시하려고 머리를 쓰는 자 있는가? 없다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으랴.
임시정부 수립 이후 백범 선생은 민족의 대동단결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펼쳤으나 그의 시도는 내부적,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번번히 실패로 돌아간다.
이런 면에서 그의 정치적 수완이나 감각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하는 의견도 있는데 그런 의견에 어느 정도 동조하는 바이나 문제의 화살을 모두 백범 선생에게 돌린다는 것 또한 분명히 잘못된 의견이겠다.
논점의 방향을 바꿔 백범 선생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는 거의 초인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나싶다.
특히나 공과 사를 구분하는 면에서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면을 보여준다.
부모를 제외한 그의 피붙이들의 죽음에 대한 언급은 단 1줄, '누가누가 어떻게하여 죽었다'정도로 그치는 데에 비해 그와 일을 같이하며 억울하게, 안타깝게 죽어간 동료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렇게 비통하게 서술을 할 수가 없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자질이나 그가 실제로 느낀 슬픔과 실의가 어느 정도였을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이는 감옥에 갇힌 김구 선생을 면회하는 김구 선생 어머니의 초연한 태도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역시 저렇게 뛰어난 부모가 있었기에 그 자식 또한 더더욱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고난 속에서도 쉽게 포기하는 법이 없고, 자신의 동료를 항상 챙기며 모든 것을 우리 민족이라는 입장에서 한아름에 안고 밀고 나가려는 선생의 노력을 차분히 읽어나가면 누구에게나 감동이 몰려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감동은 책의 마지막에 실린 그 유명한 '나의 소원'이라는 글로 집대성된다.
한글로 쓰인 단문 중에 이만큼 훌륭한 글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글이지만 백범일지를 모두 훑고나서 읽는 그 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추천한다.
아래 전문을 수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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