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밑에서 외

| 2011. 5. 4. 17:26

수레바퀴밑에서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헤르만 헤세 ((주)하서출판사펴냄,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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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특히나 많은 사랑을 받는 독일 작가라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라고는 단 한 편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집어든 책.
위의 정보와는 달리 1993년에 초판 발행된 책이라 적당히 낡기는 했으나 책벌레가 발견된다거나 할만한 수준은 아니므로 읽기에 지장이 없어보였다.
책 안에는 '수레바퀴 밑에서'뿐만 아니라 '크눌프', '싯다르타'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수레바퀴 밑에서'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의 이름은 이 이야기를 읽기 전부터 알고 있던 이름이었다.
아버지는 대학교 이후 대체적으로 예정된 궤도에서 자꾸 벗어나가는 내 모습에 대해 질책하실 때마다 그의 이름을 언급하곤 하셨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나는 한스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나와 비교해 보았는데 그게 바로 내가 이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지 못한 이유가 아닌가싶다.
내 입장에서 봤을 때 한스라는 자와 나는 소동대이(小同大異)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로 그는 나로서 상상도 하지 못할만큼 감수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 상처가 쉽게 노출되는 종류의 사람이다.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나는 그의 삶 속에서 심한 압박이 될만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삶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이후로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 분명한 차이점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류의 과대망상적인 신경쇠약의 소설로는 '적과 흑', '장 크리스토프'등의 작품을 예로 들 수 있는데 나는 그 어떤 이야기에서도 만족할만한 공감을 얻지 못했다.
물론 이는 나름의 시련을 잘 견뎌낸 지금에 와서야 내릴 수 있는 결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여전히 한스는 나와는 반대편 극에 치우친 사람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둘째로 그가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게 된 계기가 나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맥락상 한스 기벤라트는 주 시험에 2등으로 합격해 들어간 신학교에서 과도한 학업적 부담감을 느끼다 하일루너라는 친구와의 관계를 불씨로 삼아 주변의 상황이 전반적으로 그에게 비우호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내가 과거를 돌이켜봤을 때 나는 공학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못 이겼다기보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책임감없이 낭비했다고 보는 게 맞다.
그와 내가 삶에 있어 어느 정도 비슷한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나(小同한 점이다) 그 국면을 초래하게 된 근본 원인이 달랐기 때문에 변사체로 발견된 한스와 달리 나는 이렇게 지금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나는 한스보다는 하일루너 과(科)에 더 가까운 사람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두번째 이유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세번째 요소는 주변 환경이다.
문제에 빠진 한스를 진정으로 도와줄 수 있었던 사람으로 그의 고지식하고 엄격한 아버지, 기벤라트씨밖에 없었던 반면에 내게는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시는 감사한 두 부모님과 형을 비롯해 제법 많은 또래의 지인들이 든든히 버티고 있었다.(비록 그 감사한 부모님은 몇몇의 또래 지인들을 내 방종에 한 몫 거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한스만 하더라도 그의 주변에, 구체적으로 그 학교에 버팀목이 될만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더라면 '죽은 시인의 사회'의 토드 앤더슨처럼 소극적 성격으로 인한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낼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재미없는 내 이야기를 집어치고 보면, 이 이야기는 저자 헤르만 헤세의 아름다운 자연 묘사가 일품인 작품이다.

그 동안에 태양은 높이 올라 오고 윗마을 둑의 물거품은 눈같이 하얗게 빛나고 물결 위에는 따스한 가늘 바람이 떨고 있었다. 쳐다보니 무크베르크산 위에는 손바닥한만 눈부신 조각 구름이 두 서넛 떠 올라있었다. 몹시 더워졌다. 창공의 한 가운데 쯤 두 서넛 가만히 그리고 하얗게 떠서 오래도록 보고 있지 못할 정도로 빛을 담뿍 머금고 있는 고요한 조각 구름만큼 깨끗이 개인 한 여름의 무더위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은 없다. 그러한 구름이 없으면 얼마큼 더운가를 알아 차리지 못할 때가 많으리라. 푸르른 하늘도 반짝 반짝 빛나는 강 표면도 아니고 둥그렇게 뭉쳐진 하이얀 대낮의 구름을 보면 별안간에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로는 것같이 느껴져 그늘을 찾고 땀에 젖은 이마 위에 손을 얹는 것이다.

내가 실감나게 묘사할 수 있는 자연 환경이란 고작


것밖에는 안 떠오르는 저주스러운 상황에서 그의 묘사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야기 자체의 내용을 떠나서 본다면 아래와 같은 발 번역도 내가 이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었던 하나의 이유가 되리라.

"얘! 하일루너! 뭘하고 있니?"
"호머를 읽고 있지. 그렇지만 넌? 기벤라트!"
"그렇지 않겠지? 네가 뭘하고 있는지 난 벌써 알고 있는 걸."
"그래?"
"물론이지 너 시를 짓고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물론이지."
"하여간 거기 앉아라." 

도저히 제정신의 두 인간이 나누는 대화라고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몇 번을 읽어봐도 종잡을 수가 없다.
전반적으로 기대에 못 미쳤던 작품이다.

한스의 이야기가 싱겁게 끝마치고 나면 '크눌프'라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크눌프'는 '수레바퀴 밑에서'에 비하면 채도면에서나 명도면에서나 훨씬 더 밝은 이야기다.
헤르만 헤세는 이 이야기에서 크눌프와 그 주변인들의 입을 빌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영혼을 갖고 있지.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영혼과는 완전히 구별되네. 사람은 둘이서 같이 걸어갈 수도 있고, 말할 수 있으며,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지만, 두 영혼은 마치 꽃과 같아서 각각 어느 일정한 곳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가까이 할 수 없네. 가까이 하려면 뿌리를 뽑아야 할 테니 그건 어디 될 말인가. 그러므로 꽃은 그 향기나 씨앗으로 가까지 접근할 수 있네. 그러나, 그것은 꽃이 하는 일이 아니고 바람이 하는 일이지. 바람은 마음대로 내왕할 수 있으니 말이야."

영화 《다운 인 더 밸리》의 '할렌'을 연상시키는(개인적으로 상당히 추천할만한 영화다.) 주인공 크눌프 또한 아름다운 사람임이 분명해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모든 독자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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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부류의 삶을 동경(하지만 절대로 실천에 옮길만한 위인은 되지 못한다.)하기 때문에 남들에 비해 이 이야기를 더  마음에 들어한 것일 수도 있겠다.
다소 밝아진 분위기로 바뀐 책은 헤르만 헤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싯다르타'를 소개한다.

이야기를 한참이나 읽고 나서야 내가 이 작품을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언젠가 시험 기간에 읽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무엇이든 재미있는 시험 기간이라 그랬는지 단 몇 시간만에 주파했는데 지금 이렇게나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당시 큰 감명을 받지는 못했던 모양.
이 '싯다르타'는 파울로 코엘료의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연금술사》와 닮은 것 같다.(시간적 순서를 고려하면 연금술사가 싯다르타와 닮았다고 해야 맞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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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 진리를 찾아 떠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깨달음의 과정에 맞춰 서사적으로 표현한 것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점.
독일의 작가가 인도의 고대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경로를 알고 싶었으나 검색이 잘 안되므로 포기.
어쨌든 헤세는 싯다르타에서 자기 자신의 철학이라기보다 '옴', '윤회', '범' 같은 기존의 인도 철학에 내재한 개념들을 이용해 서양인들에게 그들의 독특한 정신 세계를 알리는 소설을 쓰려고 했던 것 같다.
만약 이 이야기가 한 개인의 머리속에서 모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헤르만 헤세는 거의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싯다르타는 진리의 길을 찾아 떠나 누군가의 가르침으로는 궁극적인 해탈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닫기도 하고 감각적 세계의 빠져 다음과 같은 말도 안 되게 거만한 말을 내뱉기도 한다.

"나는 당신과 같소. 당신도 또한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오. 사랑하고서야 어떻게 사랑을 기교로 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겠소? 아마 우리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없을 것이오. 소인들에게나 그런 것이 가능할 것이오. 그것은 그들의 비밀이라오."

결국 그가 마지막에 자신의 지기, 고빈다에게 말하는 말에 그가 일생동안 직접 경험하여 축적한 철학의 세계가 펼쳐진다.
싯다르타가 말하는 진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직접들 읽어보고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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