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 Day Afternoon

| 2013. 2. 14. 00:51

1. 당신이라면 이 영화의 국내 개봉 제목이 ㅡ 만약 개봉을 하긴 했더라면 ㅡ 무엇이 되리라 짐작하는가? 나는 자연스럽게 "개 같은 날의 오후"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내가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던 저 이름은 동명의 한국 영화로 밝혀졌다. 인터넷을 찾아본 결과 이 영화의 국내판 제목은 《뜨거운 오후》. 뭔가 너무 많이 생략이 되어버린 제목인 것 같아 조금 더 검색을 해봤는데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냈다. 보통 영어에서 "dog days"라고 하는 것은 무더운 여름 날을 의미하는데, 그 이유는 "dog star"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시리우스가 여름에 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Dog day afternoon"은 "개 같은 날의 오후"가 아니라 그냥 "뜨거운 오후"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그냥 썰렁해서 올려본다.

2. 솔직히 말해 영화의 줄거리는 먹잘 것이 별로 없다. 반우범적으로 은행 범행을 계획한 콤비와 그와 대치하는 경찰, FBI의 지루한 실랑이. 그렇다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이 사회적인 상징성을 갖는 사건도 아니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바로 1년 전에 있었던 아티카 폭동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그것은 당시의 정황상, 그리고 영화의 전개상 불가피한 등장이었다. 이 모든 해프닝의 목적, 즉 은행 강도의 1차 원인이 동성애 애인의 성전환 수술 비용을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는 점 역시 당시 시대의 관점에서 봤을 때 파격적이라든가, 무슨 동성애자들의 인권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였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다. 《뜨거운 오후》는 그저 그 날에 있었던 일들을 관객들에게 담담한 감정선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3. 하지만 바로 이 점이 《뜨거운 오후》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임을 아는 것이 이 영화를 감상하는 핵심 포인트라고 본다.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일은, 비록 이 사건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한 여름날의 일상과도 같이 지나가는 일에 불과하다. 실제로 이런 류의 실화 바탕 인질극을 다룬 영화들이 그 당시의 주요 인물이나 그 사건을 부르는 주요 고유 명사들을 광고 전면에 내세우는 것과는 달리, 《뜨거운 오후》는 그저 어느 뜨거운 오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애초부터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언젠가는 법의 심판을 받았겠지만, 그저 평범한 은행 강도들이었던 이들은 재수없게도 갑자기 커져버린 상황의 소용돌이에 휩쓸렸을 뿐이다. 이 이상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다.

4. 그렇다면 대체 무슨 재미로 이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어차피 역사적, 사회적으로 대단한 의미를 가진 사건도 아니고, 그렇다고 결국에는 실패하고말 인질극이라면, 거기에다 무슨 특별한 스펙터클한 연출이 있는 것도 아니면 뭐 그리 재밌는 영화라고 이렇게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뜨거운 오후》라는 영화가 그 나름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두 주연 배우의 ㅡ 상황에 따라 한 명의 주연과 다른 한 명의 조연이라고 묘사할 수도 있겠다 ㅡ 심각하게 훌륭한 연기력 때문이리라. 이미 《대부》 시리즈에서 충분히 그 연기 궁합을 맞춰본[각주:1] 알 파치노와 존 카잘은, 영화 속에서 자신이 맡은 인물에 빙의되는 수준의 연기를 펼쳐 관객들로 하여금 이 별 것도 아닌 이야기에 자신의 모든 신경을 쏟게끔 만들어버리는 기적을 보여준다. 특히 존 카잘이 보여주는 연기, 그 외모가 가진 천부적인 재능(?)을 극한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그 불안하고 외소한 영혼의 그 연기는 내가 최근에 봤던 그 어떤 연기보다 훌륭한 것이었다. 천재적인 배우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사람. 물론 알 파치노의 연기 또한 나무랄데 없다. 비정상적인 상황에 빠진 정상적인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당황과 혼란을 과장없이, 그러나 부족하지도 않게 표현한다. 영화 전체적인 측면에서도 느슨한 듯 치밀하게 구성되었다. 6개의 아카데미 노미네이션과 7개의 골든 글로브 노미네이션이 훌륭함에 대한 방증.

5. 위키피디어를 보면 당시 실제 상황과 영화에 묘사된 장면의 간극과 관련된 이야기를 몇 자 더 적을 수 있겠지만 조금 귀찮아지고 말았다. 결론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는 이야기인 것 같고, 알 파치노가 연기했던 존 보이토비츠 ㅡ 실제로 은행 강도를 벌였던 그 사람 ㅡ 는 20년형을 선고 받고 수감된 뒤 몇 년 후에 풀려나 영화에 대한 판권으로 돈을 벌어 자신이 꿈꾸왔던 동성애인의 성전환 수술 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고, 그 뒤로 다시 잠시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게 된다. 이후로는 별다른 기록 없이 2006년에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망자에게는 조금 가혹한 말일 수 있겠지만, 지극히 평범했던 한 남자에게 더할 나위없이 잘 어울리는 죽음이 아닐까.

http://en.wikipedia.org/wiki/File:John_Wojtowicz.jpg

  1. 뭐, "환상의 콤비를 보여준"과 같은 진부한 구절을 쓸까 했는데, 저 말이 너무 진부하기도 하고 사실 《대부》 시리즈에서 두 사람의 연기가 콤비를 이루는 장면이 딱히 기억나지 않아 그냥 이 정도의 문장으로 갈음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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