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알랭 드 보통이라는 감탄이 나오는 책이다.
역시 알랭 드 보통!
노오란 겉표지를 넘기고 거대한 질서 속에 널부러진 카오스의 물류 센터 현장 사진을 넘기면 갱지 위에 써진 알랭 드 보통의 친필 편지를 볼 수 있다.
바로 그 짧은 편지만 읽고도 이 책이 얼마나 흥미진진할지 기대가 되었다.
이런 틈새 주제를 찾아 글을 뚝딱 써내는 ㅡ "뚝딱 써낸다"는 표현은 이 책을 다 읽기 전에 적어둔 메모에서 그대로 옮겨온 것인데 사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그렇게 뚝딱 써진 책은 아니다 ㅡ 알랭 드 보통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서 빠르게 책장을 넘겨갔다.
때로는 주의를 기울이며 읽었고 때로는 나무 하나 하나보다 전체적인 숲의 조망을 감상하듯이 빠른 속도로 훑어내려가기도 했다.
정말이지 기가 막히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우리 삶에서 소외된, 그러나 분명히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존재해야 하는 단편을 어쩜 이리도 잘 집어낼 수 있는가!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대의 일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하는 알랭 드 보통의 수필 모음이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을 그대로 옮겨오자면 다음과 같다.
저자는 우리가 일이라는 추상적이면서 구체적인 개념에 대해 평소에 놓치고 살기 쉬운 여러가지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
그는 그런 신선함을 얻기 위해 직접 몸으로 현장을 뛰었다.
참치의 유통 과정을 알기 위해 몰디브 해에서 참치잡이 어선에 오르기도 했고 인공위성의 발사를 보기 위해 프랑스령 기아나를 방문하기도 했고 송전선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런던 근교의 들판을 거닐기도 했다.
이런 작가의 수고로움 ㅡ 어쩌면 그에게는 즐거움일 수도 있겠다 ㅡ 덕분에 독자는 산지 직송의 신선한 관점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사실 요새 글 좀 잘 쓴다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독자들에게 이런 신선함을 제공하는 것은 필히 갖춰야 할 능력인 것 같다.
노래의 가사도 글의 한 종류라고 본다면 가사 또한 마찬가지다.
신선함을 제공하는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도 풍부해야 하지만 애초에 어떤 대상이나 개념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진부함과는 거리가 멀어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태도를 객관화하여 진부함의 먼지를 털어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선천적으로 잘 되는 알랭 드 보통 같은 사람도 있고, 나처럼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잘 안 되는 사람도 있지만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쥐꼬리만큼은 이런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아래의 인용 부분의 주어가 꼭 블랙스톤 그룹의 소유자들일 필요는 없다.
주어를 '일상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물질들에 대해 별 생각없이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들'로 대체하더라도 무방하다.
알랭 드 보통은 구체적이면서 실제적인 면의 일을 다루는 한편, 추상적인 개념의 일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통 일이라고 하는 것에 담는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진지한 재고를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그러나 360여쪽에 달하는 이 적당한 두께의 책이 모두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 관한 3부작이라고 불리는 세 권의 책에서 알랭 드 보통이 보여준, 일상의 소소함을 잡아내는 놀라운 관찰력과 그에 대한 통찰력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직업 상담' 편에서 그는 현대 교육 이론에 대한 다윈주의를 논한다.
'로켓 과학'에서 그는 현대 문명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 과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과학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 전반에 걸쳐 논의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알랭 드 보통은 현대 문명이 이룩해놓은 자뭇 거룩한 성취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런 거룩한 경의를 이룬 인간의 본성적인 측면, 우리가 흔히 '인간적인 면'이라고 부르는 부분 또한 전혀 놓치고 있지 않다.
따지고 보면 시작부터 인본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여태껏 그토록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주류의 논의에서는 소외되어왔던 개념인 일에 대해 다루는 책이니 결국 사람 중심의 관점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긴 하다.
하지만 이 사람이 과학의 독단성과 거만함을 경고하는 부분을 읽다 보면 그가 과학 중심주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가 '그래서 대체 그 사람의 업적이 뭐가 중요하다는 거야?'라는 질문을 던지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리고 교과서에서 대단한 과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알랭 드 보통이 생각하는 만큼 쉽고 간단하게 과학 중심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그가 리처드 파인만의 책들을 읽게 된다면 그 생각이 조금은 바뀔 수 있을까.
이 책에 대한 더 곁다리의 이야기로 들어간다면, 우선 대한민국이라는 고유 명사가 꽤나 자주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전혀 정반대의 두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이제 다른 나라 사람이 지은 책에 모욕적이지 않은 의미에서 그 이름을 드러낸다는 것은 첫째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네임 밸류가 상승했다는 증거일 수 있고 둘째로 대한민국, 영어로는 Republic of Korea 또는 그냥 Korea라고 하는 그 고유 명사가 주는 낯섦의 다양한 활용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알랭 드 보통은 전자의 의미보다 후자의 의미로 고유 명사 대한민국을 더 많이 사용한 것 같다.
그러니까 영국인들은 프랑스령 기아나가 주는 이국적인 느낌을 대한민국에서도 조금은 어렴풋하게 느낀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이 책에는 알랭 드 보통의 특기인 멋드러진 말의 '크~'하는 맛이 어김없이 살아 숨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의 본문 중 가장 마지막 문단을 옮겨둔다.
아무래도 알랭 드 보통이 '일의 기쁨과 슬픔'을 쓰면서 일에 대한 자신의 결론을 간추린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재밌는 책이었다.
이 사람이 쓴 책 전부를 읽기 전까지, 나의 알랭 드 보통 읽기는 계속될 것이다.
역시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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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 겉표지를 넘기고 거대한 질서 속에 널부러진 카오스의 물류 센터 현장 사진을 넘기면 갱지 위에 써진 알랭 드 보통의 친필 편지를 볼 수 있다.
바로 그 짧은 편지만 읽고도 이 책이 얼마나 흥미진진할지 기대가 되었다.
이런 틈새 주제를 찾아 글을 뚝딱 써내는 ㅡ "뚝딱 써낸다"는 표현은 이 책을 다 읽기 전에 적어둔 메모에서 그대로 옮겨온 것인데 사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그렇게 뚝딱 써진 책은 아니다 ㅡ 알랭 드 보통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서 빠르게 책장을 넘겨갔다.
때로는 주의를 기울이며 읽었고 때로는 나무 하나 하나보다 전체적인 숲의 조망을 감상하듯이 빠른 속도로 훑어내려가기도 했다.
정말이지 기가 막히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우리 삶에서 소외된, 그러나 분명히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존재해야 하는 단편을 어쩜 이리도 잘 집어낼 수 있는가!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대의 일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하는 알랭 드 보통의 수필 모음이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을 그대로 옮겨오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부두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현대 일터의 지성과 특수성,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노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일이 우리에게 사랑과 더불어 삶의 의미의 주요한 원천을 제공할 수 있다는 그 특별한 주장을 주의 깊게 들여다볼 생각이다.
저자는 우리가 일이라는 추상적이면서 구체적인 개념에 대해 평소에 놓치고 살기 쉬운 여러가지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
그는 그런 신선함을 얻기 위해 직접 몸으로 현장을 뛰었다.
참치의 유통 과정을 알기 위해 몰디브 해에서 참치잡이 어선에 오르기도 했고 인공위성의 발사를 보기 위해 프랑스령 기아나를 방문하기도 했고 송전선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런던 근교의 들판을 거닐기도 했다.
이런 작가의 수고로움 ㅡ 어쩌면 그에게는 즐거움일 수도 있겠다 ㅡ 덕분에 독자는 산지 직송의 신선한 관점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사실 요새 글 좀 잘 쓴다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독자들에게 이런 신선함을 제공하는 것은 필히 갖춰야 할 능력인 것 같다.
노래의 가사도 글의 한 종류라고 본다면 가사 또한 마찬가지다.
신선함을 제공하는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도 풍부해야 하지만 애초에 어떤 대상이나 개념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진부함과는 거리가 멀어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태도를 객관화하여 진부함의 먼지를 털어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선천적으로 잘 되는 알랭 드 보통 같은 사람도 있고, 나처럼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잘 안 되는 사람도 있지만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쥐꼬리만큼은 이런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아래의 인용 부분의 주어가 꼭 블랙스톤 그룹의 소유자들일 필요는 없다.
주어를 '일상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물질들에 대해 별 생각없이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들'로 대체하더라도 무방하다.
하지만 블랙스톤 그룹의 소유자들이 벨기에 동부에서 넓은 땅과 200명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소유하는 것의 완전한 의미를 알고 있을까? 맨해튼의 사무실에서 이윤과 손실을 알려주는 숫자를 훑어볼 때 잠시라도 이런 사실들을 상상하거나 확인할까?
알랭 드 보통은 구체적이면서 실제적인 면의 일을 다루는 한편, 추상적인 개념의 일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통 일이라고 하는 것에 담는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진지한 재고를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나는 시먼스의 회사를 나오면서, 모두가 일과 사랑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너그러운 부르주아적 자신감 안에 은밀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배려 없는 잔혹성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 두 가지에서 절대 충족감을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충족감을 얻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뜻일 뿐이다. 예외가 규칙으로 잘못 표현될 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삶에 불가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운명에서 갈망과 오류를 위해 마련된 자연스러운 자리를 부정하여, 우리가 경솔하게 결혼을 하고 야망을 실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집단적인 위로를 받을 가능성을 부인해버린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떻게 해도 진정한 나 자신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 혼자만 박해와 수모를 당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360여쪽에 달하는 이 적당한 두께의 책이 모두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 관한 3부작이라고 불리는 세 권의 책에서 알랭 드 보통이 보여준, 일상의 소소함을 잡아내는 놀라운 관찰력과 그에 대한 통찰력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직업 상담' 편에서 그는 현대 교육 이론에 대한 다윈주의를 논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현대 교육 이론이 양육이라는 관념과 자존심 발달에 부여하는 무게는 우리 사회가 미쳤거나 약해졌다는 표시로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강조는 현대의 노동하는 삶의 요구에 섬세하게 조율된 것이다. 고대의 위급한 시기에 금욕주의와 신체적 용맹을 가르친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런 이론이 나타나게 된 것은 친절 때문이 아니라 실제적 필요 때문이다. 시대마다 등장한 여러 가지 아이 양육 방법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적대적 환경이 젊은이들에게 최적의 생존 가능성을 제공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로켓 과학'에서 그는 현대 문명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 과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는 여전히 이 변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리안 론처는 그런 변화의 한 예다. 자연은 19세기에 걸쳐 숭고한 느낌을 자아내는 주된 촉매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기술적 숭고함의 시대로 깊이 들어왔다. 숲이나 빙산이 아니라 슈퍼컴퓨터, 로켓, 입자 가속기가 가장 강렬한 경외감을 자아내는 시대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거의 우리 자신에게만 놀라고 있다.
사실 과학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 전반에 걸쳐 논의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알랭 드 보통은 현대 문명이 이룩해놓은 자뭇 거룩한 성취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런 거룩한 경의를 이룬 인간의 본성적인 측면, 우리가 흔히 '인간적인 면'이라고 부르는 부분 또한 전혀 놓치고 있지 않다.
따지고 보면 시작부터 인본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여태껏 그토록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주류의 논의에서는 소외되어왔던 개념인 일에 대해 다루는 책이니 결국 사람 중심의 관점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긴 하다.
하지만 이 사람이 과학의 독단성과 거만함을 경고하는 부분을 읽다 보면 그가 과학 중심주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가 '그래서 대체 그 사람의 업적이 뭐가 중요하다는 거야?'라는 질문을 던지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리고 교과서에서 대단한 과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알랭 드 보통이 생각하는 만큼 쉽고 간단하게 과학 중심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그가 리처드 파인만의 책들을 읽게 된다면 그 생각이 조금은 바뀔 수 있을까.
이 책에 대한 더 곁다리의 이야기로 들어간다면, 우선 대한민국이라는 고유 명사가 꽤나 자주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전혀 정반대의 두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이제 다른 나라 사람이 지은 책에 모욕적이지 않은 의미에서 그 이름을 드러낸다는 것은 첫째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네임 밸류가 상승했다는 증거일 수 있고 둘째로 대한민국, 영어로는 Republic of Korea 또는 그냥 Korea라고 하는 그 고유 명사가 주는 낯섦의 다양한 활용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알랭 드 보통은 전자의 의미보다 후자의 의미로 고유 명사 대한민국을 더 많이 사용한 것 같다.
그러니까 영국인들은 프랑스령 기아나가 주는 이국적인 느낌을 대한민국에서도 조금은 어렴풋하게 느낀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이 책에는 알랭 드 보통의 특기인 멋드러진 말의 '크~'하는 맛이 어김없이 살아 숨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이런 식으로 피곤하고 신경이 곤두설 때 유일하게 효과가 있는 해결책은 와인이다. 사무실 문명은 커피와 알코올 덕분에 가능한 가파른 이륙과 착륙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밤에는 자비로운 칠레산 카베르네, 그리고 전혀 괴롭지 않게 최면을 걸듯 오늘의 범죄와 변화를 이야기해주는 저녁 뉴스의 안내를 받아 착륙 지점을 향하여 다가가게 될 것이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의 본문 중 가장 마지막 문단을 옮겨둔다.
아무래도 알랭 드 보통이 '일의 기쁨과 슬픔'을 쓰면서 일에 대한 자신의 결론을 간추린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재밌는 책이었다.
이 사람이 쓴 책 전부를 읽기 전까지, 나의 알랭 드 보통 읽기는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식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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