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일본 소설은 다 비슷한 느낌을 준다.
에쿠니 가오리의 '마미야 형제'나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 쓰쓰이 야스타카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같이 아무런 부담없이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소설부터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 같은 예술성 짙은 소설, 요시카와 에이지의 대하 소설, 히라노 게이치로의 '센티멘털',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과 같이 조금은 진지한 자세로 읽어야 하는 소설까지 모두 한 번에 묶을 수 있는 어떤 교집합이 저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에서 느껴진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의 이유로는 일본어라는 언어가 가진 특유의 느낌을 그나마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을 수 있는데 과연 한 언어가 나타내는 특질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단테의 '신곡'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가 떠올랐던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앞의 두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작품이 아닌가!
물론 움베르토 에코의 문체와 이탈로 칼비노의 문체는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의 거리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요시카와 에이지와 에쿠니 가오리,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도 은하와 은하 사이의 거리만큼은 아니지만 지구와 태양 정도의 거리감은 있는 것이다.
그 남자와 그 여자의 거리감.
다른 이유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몇몇 비슷한 분위기의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의 교집합을 집어냈고 그 교집합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며 필요 이상으로 확대한 뒤 그 다음에 내가 읽는 책이 '일본 소설'이라는 것을 의식하면 그 책의 분위기를 억지스럽게 과대화된 그 교집합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름 근 1년 반 이런 저런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성향을 구분하는 것에 나 자신이 꽤 능해졌다고 생각한다.
어쩌다가 한 두 작품쯤 그 갈래를 잘못 파악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국적성 하나에만 의존해서 국적성 이외의 특징들이 다르다는 것을 잡아내지 못하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모르겠다.
하여간 내가 일본의 소설에서 느끼는 것은 일본의 영화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박한 연대감이다.
어쨌든, 오쿠다 히데오의 '스무 살, 도쿄'는 뭐 그냥 무난히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작가의 실제 생년과 같은 59년생의 남자를 주인공으로 스무 살 무렵의 젊은 나날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아무래도 자전적일 수밖에 없는 소설인데, 자전 소설의 치명적인 단점인 진부함은 빼고, 그 장점인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디테일들을 쏙쏙 뽑아 그 시대에 전혀 살아보지 않은 나 같은 애송이에게 1980년 어귀의 시대감을 생생히 전해준다.
역자가 달아놓은 주석은 일본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어려움 없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든다.
굳이 이 책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려고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책의 가장 마지막 장, 주인공이 '"스무 살", 도쿄'라는 제목이 유효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인 29살일 때의 이야기에서도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흘러가는 젊은 날과 점차 다가오는 젊지 않은 날을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서술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다소 식상하긴 하지만 청춘 소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피터팬 컴플렉스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방금 말했지만, '스무 살, 도쿄'가 고작 그 진부한 피터팬 컴플렉스를 전하려는 소설은 아니라고 본다.
"얼마 전에 기타하고 앰프, 처분했어. 신혼집에는 놓을 데가 없다고 해서. 별로 미련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없어지고 나니까, 아, 나는 이렇게 꿈을 포기하는구나, 싶고."
오구라가 짧아진 머리를 쓸어 올렸다.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겸연쩍은 웃음을 내보였다.
"우스운 얘기지만 내가 아직도 어딘가에서 꿈을 꾸고 있었나봐. 이카텐에 나가고 레코드 회사의 눈에 들어서 혹시 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다음 달이면 서른인데, 정말 바보 같은 소리다만."
"아냐, 바보 같을 건 없어."
"악보도 다 처분하고 레코드는 어머니 집에 보내고, 그런 주변 정리를 하다 보니 뭔가 완전히 끝났다는 기분이 들더라고."
"그 기분, 나도 알 거 같아."
"이 머리도 장인 장모한테서 은근히 지적이 들어오더라고. 결혼식에 그 머리로 나올 거냐고.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자, 그럼, 왜 기르고 있냐고 자문을 해봤더니 딱히 대답이 안 나오더라고. 한마디로 이건 정신적인 모라토리움인 거야. 이십 대 내내 어른이 되기 싫다고 생각했었어."
"그렇게 말하자면 나도 마찬가지야."
"대학 졸업하고 기업에 취직한 녀석들은 주위에 어른들이 있으니까 저절로 사회나 세상에 동화되잖아?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게 없었기 때문에 계속 학생 기분으로 이십 대를 보내버렸나 봐. 내일 결혼식은, 너희들 이제 어지간히 좀 나가라고 대학 12학년생을 억지로 등 떠밀어 졸업시키는 거나 마찬가지야."
히사오가 말없이 맞장구를 쳤다. 오구라의 말을 들으면서 어쩐지 자기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세계에서 일본 사람들, 그리고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몇몇 한국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문체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문장을 읽다 보면 왠지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현상이 발생하지만 "오오, 니힐하잖아." 같은 표현이 없다면 80년대를 주름잡던 일본 "시티 보이"의 심정에 동화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오오, 니힐하잖아.
이걸로 충분히 시티 보이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 선에서 글을 마치려고 했는데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가 생각났다.
1983년에 태어난 아는 형님이, 바로 이 책과 나의 이미지가 상당히 잘 오버랩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스무 살, 도쿄'를 읽게 된 계기였다.
'스무 살, 도쿄'의 주인공 다무라 히사오와 나의 모습이 닮았다는 의미로 한 말일 텐데 글쎄, 내가 비록 락 음악을 좋아하고 적당한 선의 자유를 누리길 바라는 사람이지만 히사오보다 락 음악은 덜 좋아하는 편이고 그만한 자유를 누려본 적도 없고 그럴 만한 용기도, 그런 책임감을 지고 싶지도 않다.
나에게 어울리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은 '스무 살, 도쿄'보다는 '서른 살, 서울'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마저도 내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게 나의 '서른 살, 서울'의 모습은 아니겠지? http://yfrog.com/h8rschbq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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