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Gilbert - Friday night (Say yeah)

| 2011. 12. 16. 22:24

미스터 빅 이후, 폴 길버트의 디스코그래피는 확실히 한 풀 꺾였다.
꾸준한 솔로 활동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계속 어필하였으나 그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80, 90년대를 주름 잡았던 그 기백은 전혀 꺾이지 않았고 대중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주옥 같은 곡을 솔로 앨범 곳곳에 남겼다.
전혀 의미심장하지 않은 앨범 커버를 가진 2002년작 'Burning Organ'에 수록된 'Friday night (Say yeah)'도 그런 진흙 속의 진주 중 하나다.


2분 42초, 162초의 엄청난 미학이다.
금요일 밤이라는, 연령대를 불문하고 1주 7일제를 도입한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신나게 놀 수 있는 바로 그 시간대를 소재로 삼아 짧지만 강력한 한 편의 드라마를 써냈다.

가사는 간단 명료한 것이 아주 폴 길버트적이다.
금요일 밤이고, 밤은 늦었고, 지하철은 놓쳤고, 어차피 집에 가기는 싫으니 그냥 "예!"라고 말해달라는 첫 버스(verse) ㅡ 어떻게 보면 이 버스 부분들은 동시에 코러스이기도 하다 ㅡ 부분을 미묘한 라임(rhyme)에 맞춰 시원하게 흐르는 청산유수와도 같이 풀어놨다.
긴장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주는 몽환적인 인트로가 한 번 더 등장하고 바로 두 번째 버스가 이어진다.
이렇게 야릇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 역시 술의 탓이라고 고백하며 이번엔 좀 더 직설적으로 상대에게 나와 함께 머물지 않겠냐고, 그냥 알았다고 대답하라고 종용한다.
영훠 '원스'의 시츄를 닮은 남주인공이 애절하면서도 개(犬) 같은 눈빛으로 "Stay tonight."이라고 호소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개구쟁이 폴 길버트의 천연덕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부분.

http://www.dimarzio.com/player/paul-gilbert


이번에는 분위기를 쓸데없이 고조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브릿지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으로 넘어간다.
"오늘은 나와 함께 머물자!"라는 말의 대답으로 "Yeah!"를 이끌어내기 위한 작업을 위해서다.
폴 길버트는 이 브릿지에서 8분의 6박자 특유의 낭만감을 극대화해 느끼한 멘트를 연사한다.
당신과 옆에 앉아 기분이 좋다면서 은근슬쩍 상대방이 자신의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하고 적당한 음악과 어두운 조명 ㅡ 술과 여자와 음악과 어두운 조명이라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조화가 어디 있으랴! ㅡ 이라는 야릇한 분위기를 새삼 상기시키면서 상대방의 외모를 칭찬하여 환심을 사려는 간계를 펼치기도 한다.
능구렁이 같은 녀석!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그 음흉한 인트로를 한 번 더 써먹으며 기타 솔로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맞다.
여자를 이런 식으로 사정없이 당겼으면 팽팽히진 긴장감을 풀어줄 필요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작업의 고수답게 호락호락 그녀를 밀어내진 않는다.
다소 편안해보이는 느긋한 솔로를 구사하다가 난데없이 폴 길버트표 속주를 후려 갈기면서 절대 둘 사이의 긴장감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끔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레이서 엑스나 미스터 빅 시절에 몸에 깃든 몹쓸 버릇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여태까지의 맥락상 다분히 의도적인 짓궃음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관점이다.
마지막 버스(또는 코러스)로 넘어가기 직전에 잠잠해진 긴장감을 마침내 있는 그대로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라.
이 녀석, 분명히 여자 꼬시기의 왕도를 깨우친 것이 분명하다.

한층 고조된 분위기에서 마지막 구애가 시작된다.
오락가락하는 정신 속에서도 당신만을 보는 자신의 모습을 강조하며 이제는 대답을 강요하기 시작한다.
"Yeah!"라고 말하라고.
갈팡질팡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부드럽게 꼬드긴다.
"Yeah!"라고 말해달라고.
여기서도 망설이는 그녀.
평소 일본을 굉장히 좋아하는 ㅡ 부인조차 일본인이 아닌가 ㅡ 폴 길버트는 동양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해 삼고초려에 나선다.
하지만 이 세 번째 부탁은 거의 협박에 가깝다.
폴은 최후의 순간에 갑자기 화를 버럭 낸다.

"알았다고 하라고!"

그와 동시에 오밀조밀 스케일을 따라 올라가는 기계적인 솔로가 이어진다.
어디까지 올라갈지 모르는 불안함과 함께 폴은 여자를 한껏 자기 품으로 당긴다.
오오!

이 짧은 러브 스토리의 엔딩은 여기서 갑작스런 평화를 찾는다.
이 마지막의 평온함은 드림 시어터의 '봄이 온다'가 사람의 삶이란 아무런 예측이 불가능하게 끝이 난다는 것을 상징하여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끝나버리는 것과 같은 그런 의사(擬似) 철학(pseudo-philosophy)으로 억지스럽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다정하게 어깨 동무를 한 채 바를 나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평화롭게 페이드 아웃되는 부분일 수도 있고, 여자의 난데없는 귀싸대기에 갑작스레 데이토나 비치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일 수도 있고, 과도한 맥주 섭취로 그 자리에 쓰러졌거나 다음 날 눈을 떠보니 '아! 슈ㅣ발 꿈!'을 외치는 장면일 수도 있다.
폴 길버트는 이 흥미진진한 160여초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끝맺을지, 그 몫을 청자들의 자유에 맡긴 것이다.
철두철미한 배려심에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다.

금요일 밤이다.
블로그에 이런 주절거림을 거추장스러운 흔적으로 남기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이 즐거운 금요일 밤을 폴 길버트식으로 즐겁게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Friday night (Say yeah)'의 가장 행복한 결말인 둘이 다정하게 술집을 나서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밖으로 나가자마자 전신을 강타하는 혹한의 바람 때문에 몽롱했던 분위기가 후닥닥 날아갈 만큼 추운 날씨다.
모두들 술 적당히 먹고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자.
폴 길버트식 금요일 밤은 블링블링하게 찾아올 2012년의 여름으로 미뤄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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