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실력으로 비유하자면 흉측하게 생긴 사람의 얼굴을 깜깜한 곳에서 턱 바로 밑에서 켜진 손전등의 불로 바라보는 것이 지옥편이고, 그냥 평범한 형광등 불빛에서 보는 것이 연옥편이다.
지옥편과 연옥편 둘 다 결국에는 죄인을 다루고 있고 죄인이란 죄질의 정도를 떠나 죄를 지었다는 사실에 있어서 매한가지다.
다만 죄를 지었다는 면에서는 같은, 그런 죄인들을 다루더라도 그 주변의 환경은 사뭇 다르다.
월리엄 블레이크의 삽화가 대부분 허여멀건한 무채색의 배경을 ㅡ 지옥편에서는 대부분이 검붉은 계열의 색이었다 ㅡ 띠고 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화려한 수사법으로 대상을 묘사하고 수식하는 문체는 변함이 없다.
그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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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한 문단 정도가 '신곡 : 연옥편'에 대한 개괄적이며 종합적인 평이다.
이 뒤로 이어지는 내용은 다소 사족으로 흥미로웠거나 주목할 만한 점들을 짧게 정리한 것이다.
1. 별과 달, 태양의 위치와 그에 따른 각종 현상에 대해 이런저런 서술을 한 것은 묘사의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단순히 시간대를 알려주기 위함일까.
단테가 직접 쓴 몇몇 문장을 보거나 옮긴이의 주석을 읽거나 인간의 자연 해석사(史)에 대한 상식에 기대거나 어떤 수단을 통해서 파악하든, '신곡'이 쓰여지던 시기에 날짜와 시각을 수치화하고 정량화했음은 분명하다.
비록 날짜의 경우 천체 관측의 오차에 따라 여러 번 이리저리 조정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으나 어찌되었든 단테는 숫자를 사용해 모든 별, 달, 태양에 대한 서술을 대체할 수도 있었다.
결국 이는 단테가 즐겨쓰는 간접 묘사적 서술의 일환인가.
아메리칸 인디언이 소설을 썼더라면 꼭 이런 식의 문체를 구사했을 것 같다.
2. 그의 세태 비판은 여전히 이어진다.
아, 비천한 이탈리아여, 고통스러운 곳이여,
사공도 없이 폭풍우에 휩쓸린 배여,
부패와 싸움으로 젖은 곳이여,
저 친절한 영혼은 그저 자기 고향
이름만 듣고도 동향인이라며
앞뒤 가리지 않고 환영하지 않는가!
지금 네 안에서 살고 있는 자들은
전쟁만 일삼고, 같은 성벽과 해자에 둘러싸여
서로가 서로를 물어 뜯기에 바쁘다.
가엾구나! 평화로운 곳이 어디 한 군데라도 있는지,
너의 해안 어디를 둘러보아도, 중심부를
찾아보아도, 도무지 눈에 뜨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생각이 든다.
자신의 입장에서 망자와 산 사람의 선악판단을 내린 단테 자신은 이런 비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 역시 혼란스러운 시국에 휘말려 떠돌이 생활을 하지 않았는가.
결국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은 아닐까.
덕후스럽지만 이런 짤방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3. 단테는 길잡이의 입을 빌려 이성의 힘과 자유의지의 능력을 인정한다.
'신곡'에는 종종 인식론에 대한 철학적 담론, 기초적인 물리학 지식을 토대로 한 자연 해석등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토록 방대한 이성적 능력을 지녔던 그가 종교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꼭 움베르토 에코와 같은 작품을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에코와 같은 작품을 쓰려면 종교에 대한 지대한 관심 외에 그에 대한 강한 회의감이 필요하긴 하지만 다른 여러가지 곁다리 지식을 종교라는 소재와 섞어 대작을 만들어낸다는 면에서 두 사람을 관련지어보았다.
특히나 지옥편보다 연옥편에서 훨씬 심해진 상징성과 기호성을 보면 두 사람이 많이 오버랩되는 편이다.
만일 단테가 천국편의 결말을 기가 막히게 뒤집어 꼬아놨다면 ㅡ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ㅡ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는 21세기판 신곡이라는 꼬리표를 절대 면치 못했으리라.
아울러 상징성의 연구와 그 연구 결과의 합일 ㅡ 즉, 이러이러한 것은 '무엇무엇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된다'가 아닌 '무엇무엇을 나타낸다'라는 확정적 서술어를 쓰는 단계 ㅡ 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지, 참 신비롭고 방대한 지식을 내포하지만 허술하고 음모론이 난무하는 학문 분야가 아닌지 궁금해졌다.
4. 단테에게 있어서의 베아트리체가 아닌, 그냥 베아트리체라는 객관적인 인물은 현실에서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이자 마지막 편인 '신곡 : 천국편'에서 조금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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