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은 것이 1년도 넘었을 텐데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사놓기만 하고는 오래 책장에 방치해두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 불후의 명작을 썩혀둘 수만은 없는 법.
용기를 내어 책을 꺼내들었다.
지옥, 연옥, 천국편으로 나누어진 3권의 책 중 가장 앞 순번인 지옥편부터 차분히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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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시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신곡'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섬세한 묘사다.
거의 50여쪽에 달하는 주석이 설명하는 여러 상징적인 의미와 윤리, 철학적인 가르침 따위를 다 떠나 그 감각적인 기술(記述)만 보더라도 왜 이 작품이 수도 없이 많은 예술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단테는 이 작품에서 시각적, 청각적인 심상 이외에 촉각, 미각, 후각의 오각을 모두 자극하며 공감각적인 묘사를 하는데, 이는 '신곡'의 배경이 되는 비현실의 세계를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당시의 사람들이라면 단테의 글을 읽으며 지옥의 실재를 피부로 느끼지 않았을까.
다음은 3곡에 있는 구절로 이런 식의 묘사는 정말 산더미 같이 많다.
눈물에 흠뻑 젖은 대지가 바람을 뱉어 냈고
갈라진 틈을 통해 붉은 번개를 쏘았다
그 뻗친 섬광은 나의 온 감각을 빼앗았기에
나는 마치 잠든 사람처럼 쓰러졌다.
여기에 이 작품이 약 700년 전에 쓰여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진다.
뉴 밀레니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더 자세히 보게 된 것이든 아니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만들어내어 보는 것이든 700년 전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다양해졌다.
반대로 말해, 700년 전의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본 것으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것의 한계는 지금의 우리는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단테는 그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10곡까지 읽고 약 40분간 잠을 잤는데 '신곡'을 배경으로 한 꿈을 꿨을 정도다.
이 정도면 거의 마법이 아니겠나.
자그마한 해설에 적혀 있는 대로 단테는 호메로스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의 크로스오버는 그 시대의 보편적인 믿음이라기보다 단테의 독창적인 발상이라고 보는데, 매우 치밀하게 두 거대한 이야기를 잘 버무렸다.
수식어로서 간접적으로 대상을 가리키는 법, 즉 구체적인 수식어로 일반 명사를 고유 명사의 역할로 만드는 것이나 어떤 대상이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비슷한 대상이나 행동을 끌어와 비유하는 것은 호메로스의 저 유명한 '일리야드'와 '오디세이'에서 매우 자주 볼 수 있는 표현법이다.
이런 방식의 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 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민음사 시리즈답지 않은 훌륭한 주석 처리에 기대어 별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비유의 경우도 가끔은 주석을 들춰야 할 때가 있지만 어느 정도는 나의 사고 능력으로 떠올릴 수 있는 느낌인 경우가 많았는데 때로 그런 비유가 길이가 지나치게 길어져 웃음을 자아낼 때가 있었다.
저 간단한 동작을 위해 얼마나 많은 비유를 끌어왔는지 살펴보자.
한 해가 시작될 무렵, 물병자리 아래서
태양이 미지근한 빛을 내고
밤은 벌써 하루의 절반을 향해 갈 무렵,
서리가 땅 위에 하얀 자기 누이의
모습을 그려 두려 하지만
그의 붓질이 오래가지 않을 무렵,
양에게 줄 먹이가 바닥난 시골 농부가
아침에 일어나 눈이 내려 하얗게 변한 들녘을
보고 걱정하여 허리를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와 무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안쓰럽게 서성거리다
밖에 나가 보니 그새 온통
바뀐 세상의 모습을 보고
다시 희망에 부풀어 지팡이를 쥐고
양 떼를 몰고 풀을 먹이러 나서는 것처럼,
바로 그렇게 선생님은 찌푸린 이마로 날
놀라게 하시더니 곧바로 나의 아픈 곳에
약을 발라 치료를 해 주셨다.
단테의 '신곡'은 분명히 많은 이야기를 한 데 녹여낸 대작이기는 하지만 결국 자신의 종교적 색채와 삶의 흔적을 바탕으로 하는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선악 결정, 인물 판단이라는 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신곡'을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와 같은 역사 왜곡의 교과서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결국 자신의 옹졸한 입장에서 나온 공허하고 비겁한 외침일 수 있지 않겠는가.
단테는 주관적인 입장에서의 역사 기술로 자신의 작품의 역사서로서의 가치는 다소 떨어뜨렸을지는 모르나, 이를 위에서 언급한 뛰어난 비유로 승화해 아주 높은 문학적 가치를 만들었다.
좀 더 개괄적인 평은 3편인 '신곡 : 천국편'까지 독서를 마친 뒤에 쓰기로 하고 이제 '신곡 : 연옥편'을 읽어야겠다.
근데 왜 단테의 풀 네임이 단테 알리기에리인데 우리는 단테를 알리기에리라고 부르지 않고 단테라고 부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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