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ght Below

| 2011. 11. 25. 15:00

어느 날 부모님이 TV로 어떤 영상물을 시청하는 것을 보았다.
적적한 설원에서 시베리안 허스키처럼 생긴 개 몇 마리가 뛰어놀고 있는 그런 광경이었다.
나는 약 30초간 서서 그 프로그램을 지켜 보고 있었다.
자체 생존 기간이 자막으로 나타났다.
그 짧은 순간에 내가 추측한 그 프로그램은, 굉장히 퀄리티가 높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극지방 토종 개들이 어떻게 극지방에서 자신들끼리 생존해 왔는지를 다루는, 아주 흥미로운 류의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생각한 것은 인간이 아직도 정복하지 못한 지구 육지의 몇 안 되는 곳인 극지방의 아름다운 자연과 자연의 피조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카메라로 훌륭하게 담아낸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화면 구석에 '에잇 빌로우'라는 이름을 봤고, 바로 방으로 들어와 다음에 볼 영상물 목록에 적어두었다.

'에잇 빌로우'가 내게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것은 나의 별 근거없던 오해 때문이었다.
'에잇 빌로우'는 철저히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일본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그런 류의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대상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자연히 화면에서 봤던 개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자연을 그대로 관찰한 것이 아닌, 연기의 하나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개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개 보는 것을 참아가면서 보기로 결정한 영화가 단순한 배우 개들의 영화라니, 허탈할 뿐이었다.

개허탈.


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그렇게 나쁜 영화는 아니다.
디즈니에서 만든 영화답게 적당한 웃음과 적당한 감동을 담은 평범한 가족 영화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더 볼 만한 영화라고 본다.
비록 이 영화에서 개들이 보여주는, 의미가 담긴 듯한 움직임과 눈빛이 모두 사람에 의해 조작된 연기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제대로 의사 소통도 되지 않는 동물을 훈련시켜 이런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사실이다.

굳이 영화에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5점, 딱 중간이다.
여기에 나의 개인적인 배신감과 개에 대한 비호를 조금 더하면 4.5점 정도.

 

참고로 영화 제목인 '에잇 빌로우'는 화씨 온도 마이너스 8도를 의미한다.
이는 섭씨로 고치면 영하 22도보다 조금 낮은 온도로 남극의 평균 온도라고 한다.
그냥 궁금해서 찾아봤다.
나 말고 누가 또 궁금해 할까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