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Legend - Soul joint

| 2011. 12. 3. 12:40

이전에 썼던 글에서도 밝혔듯이 날씨와 음악에는 꽤나 큰 연관 관계가 있다.
이는 단순히 상당 수의 음악이 날씨를 주소재로든 부소재로든 활용한다는 사실이나, 이런 날씨엔 이런 음악이 제 격이라는 일상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말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날씨와 음악이라는 두 요소는 더 강한 연관인 인과 관계로 묶이는 경우가 잦다.
어떤 날씨를 맞았을 때 과거의 비슷한 날씨에 들었던 음악이 우뚝 생각나거나 반대로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과거 그 음악을 듣던 때의 날씨가 불쑥 고개를 들 때, 우리는 음악과 날씨를 인과 관계를 가지는 두 요소라고 치부할 수 있다.
과거를 떠올린다는 점에서 날씨라는 개별적 요소만이 우리 기억의 트리거로 작용하지는 않고 장소나 시간 따위의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개입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날씨는 충분히 단독의 트리거로서 작용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슬금슬금 겨울로 다가가는 이 11월과 12월의 경계에서 나는 작년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줄기차게 듣던 한 음악을 불현듯 떠올렸기 때문이다.

작년 2월 말(겨울)부터 4월 말(봄)까지 나는 김태희 밭을 간다고 알려진 나라, 우크라이나에 있었다.
극초반에는 어버버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로 살았지만 나의 명석한 두뇌를 활용해 도착한 지 한 주도 되지 않아 우크라이나 문자를 익혔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닐 줄 알게 되었다.
뭐, 문자를 익혔대봐야 5살 유치원생이 신문은 읽으면서 뜻은 모르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까막눈이나 다름 없었고 지하철도 방송을 듣고 어디서 내리는지 알기보다 미리 노선도를 보고 몇 번째 정거장에서 내리는지 숙지한 뒤 예정된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닐 줄 알았다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거짓이다.
결국 그 나라의 문자를 읽을 수도 없었고 그 나라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던 내가 이동 간에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유일하게 나의 뉴런을 활성화할 수 있는 일은 MP3 플레이어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는 일이었다.

타국이라는 제한된 환경 때문에 MP3 플레이어의 노래를 한국에 있었을 때만큼 자주 바꿀 수 없었다.
나는 총 3달 간의 유럽 생활 중 딱 1번 MP3 플레이어의 앨범을 정리할 수 있었는데 그 때는 내가 4월 말에 우크라이나를 떠나기 직전이었다.
즉, 내가 우크라이나에서 주구장창 들을 수 있었던 음악은 굉장히 한정적이었다는 뜻이다.
슬슬 봄으로 접어드는 우크라이나의 날씨와 흡사한 딱 바로 요맘 때의 날씨, 쌀쌀함과 추움의 언저리에서 오락가락하는 날씨는 내 머리 속 기억의 방아쇠를 당겼고 곧장 발사된 총알은 존 레전드의, 아니 존 스티븐스[각주:1]의 'Soul joint'로 날아갔다.


전 아티스트를 통틀어 언더 시절에 녹음된 라이브 앨범 중에 거의 최고로 꼽을 수 있는 'Live At SOB's'의 4번 트랙으로 수록된 'Soul joint'는 왜 지금은 이런 음악을 만들지 않나 궁금하게 만들 만큼 훌륭한 클래식함과 빈티지함을 마음껏 뿜어내는 복고풍 소울곡이다.
소울 조인트라니, 제목부터 아주 찐득찐득한 소울의 내음이 느껴지지 않나!
미니멀한 악기 구성으로 그루브함을 살린 것이 꽤 신기하다.
이 트랙에서 그루브함이 그토록 많이 느껴지는 것은 소울감이 철철 넘쳐흐르는 목소리가 자체 내장된 존 레전드의 전설 아닌 레전드적 보컬 때문이리라.
사실상 반주의 변주가 극도로 제한된 이 곡에서 곡의 완급을 쥐고 흔드는 것은 그의 노래뿐이다.
비록 최근에는 이런 스타일의 창법을 구사하지 않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의 노래는 또 다른 방면으로의 완벽함을 구사하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흑인 보컬리스트라는 찬사는 존 레전드에게 전혀 아까운 말이 아니다.


은근히 실망스러웠던 더 루츠와의 앨범 이후, 또 다른 정규 앨범을 준비하고 있는 존 레전드.
전자적인 사운드가 결합된 R&B나 심금을 울리는 팝적인 발라드도 좋지만, 'Soul joint'와 같은 그루브한 소울 사운드로 회귀하는 것은 어떨는지.
최근에 멸종 위기에 빠진 이와 같은 장르를 다시 한 번 개척한다면 그런 움직임을 반길 팬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데 말이다.

처음에 하던 날씨 얘기로 돌아가면 솔직히 이 노래는 딱히 추울랑말랑하는 날씨 자체와는 그다지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라는 나라의 주된 인종이나, 덜커덩거리고 아주 소움이 큰 지하철, 제대로 치워지지 않아 차도를 시커멓게 물들이고 인도를 죄다 빙판을 만드는 눈 등과는 더더욱 매치가 안 된다.
쌀쌀건조한 날씨 하나의 끈으로 이 곡을 생각해내다니, 인간의 의식이란 이처럼 엉뚱한 요소들이 무질서한 배열로 엉망진창 얽히고 섥힌 고물더미에 불과하다. 
  1. 존 레전드(John Legend)는 카니예 웨스트에 의해 메이저 레이블로 데뷔하기 전에 본명인 존 스티븐스(John Stephens)로 활약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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