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 책은 스티븐 호킹과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가 공저한 '위대한 설계'에서 그 이름을 보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책이다.
'아마'라는 부사가 들어가는 이유는 별 건 없고 단지 내 기억이 가물가물하기 때문.
어쨌든 확실한 것은, 내가 어떤 책에서 '여섯 개의 수'라는 이름을 봤든 그 책은 지적으로 깊은 내용을 담고 있고 그 깊은 내용은 꽤나 훌륭한 성격의 것이었으리라는 것이다.
책의 저자 마틴 리스는 일반 한국인들에게 그렇게 낯이 익은 이름은 아니다.
잠시 책 뒤표지의 그의 설명을 빌린다.
일단 저자가 어느 정도의 권위를 인정 받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맘 놓고 글을 읽을 수 있지 않겠는가.
정리하면 매우 대단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짧은 글로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었던 나는 이런저런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봤는데 그가 매우 대단한 사람이라는 결론은 변함이 없었다.
조금 더 와닿게 설명하자면, 이 사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티븐 호킹 이상의 인물이다.
최소한 나의 판단에 의하면 말이다.
그가 템플턴 수상과 관련해, 그리고 종교에 대한 그의 조심스러운 태도와 발언 때문에 이공계도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는 사실은 차치해두자.
이는 내가 좀 더 많은 관점의 책을 읽고 그 바탕으로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 전까지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섯 개의 수'는 우리의 우주가 가지고 있는 여섯 가지 기본적인 상수들에 관한 이야기다.
아무리 마틴 리스가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는 하지만 우주를 다루는 학문이란 자고로 범인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단위부터 큰 단위까지를 필히 고루고루 다뤄야 하는 학문이다.
그런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초 미시 세계, 초 거시세계와의 극명한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학문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상식을 심하게 벗어나는 극단의 두 학문을 마스터해야 함은 물론, 점점 논의가 심화될 수록 철학적인 이야기에까지 다가가는 우주의 근원과 한계, 그 미래를 이야기하는 학문은 이렇게 갸웃 생각해봐도 정상적인 인간이 소화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머리가 빠득빠득 거친 소리를 내며 억지스럽게 돌아가는 느낌을 받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은 비추다.
하지만 그런 지적인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틴 리스의 '여섯 개의 수'만큼 좋은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
사실은, 내가 우주에 관한 책 자체를 별로 읽어본 적이 없다!
첫 번째로 다뤄지는 수는 우주의 중력을 나타내는 N이다. 1
이 수는 우주의 크기와 수명을 결정하는 상수일 뿐만이 아니라 그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성(星)들의 크기와 수명, 지구를 포함해 몇몇 행성에 살고 있을 수많은 생명체들의 크기까지 정하는 상수다.
N의 감소(중력의 증가)는 우주 크기의 축소를 불러와 별의 밀도를 높이는데 이럴 경우 안정한 행성계의 형성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행성의 크기와 수명도 줄고 그 위의 생명체 역시 신체가 짜부라지기 전에 더 작은 몸체를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별의 수명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생명의 진화가 충분히 이루어지기 전에 별의 생명이 끝나게 된다.
반대로 N이 커지면?
즉, 중력이 약해진다면?
마틴 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두 번째 수 ε은 핵력이다. 2
우주의 탄생 이후 현재 우수의 구성 원소들의 비율을 결정하는 상수로 이 상수의 변화는 안정한 원자들의 수와 그 비율의 변화를 가져온다.
즉, 이 수의 값이 단 몇 퍼센트만 작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생태계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볼 수 있는 "탄소에 기초한 생물권"은 말 그대로 탄소를 그 환경의 기반 요소로 삼는데, 그 탄소의 양이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ε이 조금이라도 컸다면 두 수소의 두 양성자는 훨씬 쉽게 결합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수소의 비율이 현재보다 심하게 줄어들게 되므로 별들의 연료도,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생명의 필수 조건인 물도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임계 밀도에 대한 실제 밀도의 비인 Ω는 우주의 팽창과 수축 여부를 결정하는 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3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로부터 어림한 Ω값은 0.04밖에 되지 않는데 이는 우리가 측정하는 질량 물질이 실제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말하면 아직도 우주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질량 물질이 엄청나게 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로부터 우리는 암흑 물질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우주의 초기 팽창 속도에 따라 그 우주의 모습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현재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초기 Ω값이 얼마나 정교해야 하는지 마틴 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틴 리스는 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6장의 주제를 암흑 물질로 잡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암흑 물질들의 존재와 그 후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암흑 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손쉽게 그 이야기에 압도당하게 된다.
비록 우주학이라는 학문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우주의 90% 이상이 암흑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아직도 그 암흑 물질의 정체를 거의 가늠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인간의 박탈감을 극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우주의 팽창과 축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마틴 리스는 네 번째 수, λ 이야기를 시작한다. 5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정적(靜的) 우주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한 반중력을 개입시키기 위해 도입한 우주 상수가 바로 그 λ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나중에 우주 상수를 도입한 것은 자기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인정하기도 했는데 마틴 리스는 최근에 이 상수 값의 의미가 재조명되었고 우주의 궁극적 결말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열쇠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 장 자체가 다른 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고, 구체적인 내용은 별로 언급되지 않는 바람에 나도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다섯 번째 수는 중력으로 결합된 구조를 와해시키는 에너지와 정지 질량 에너지의 비의 값 Q다. 6
이 수가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여러 은하단과 은하를 비롯한 우주의 구조가 성장할 수 있는 '씨앗'이 생길 수 있는 우주 초기의 불규칙성이다.
우주의 모든 원자가 균일하게 지금의 공간 안에 균일하게 존재한다면 별을 만들기에 충분한 밀도가 생길 수 없다.
우주가 현재와 같이 은하와 은하단의 구조를 가지기 위해서는 불규칙한 배열, 굴곡이 필수적이고 Q의 값이 나타내는 것이 바로 그 굴곡의 크기라는 말이다.
Q가 현재의 값보다 작다면 은하의 밀도는 낮아지게 되고 중력으로 구속된 어떠한 구조 형성도 불가능하게 된다.
Q가 현재의 값보다 크다면 지금의 은하 단위보다 훨씬 더 큰 크기의 지역이 한 번에 응축하게 되므로 은하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고 만다.
설령 은하가 어떻게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안의 별들이 너무 모이게 되어 안정한 행성계의 형성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마틴 리스는 흥미롭게도 다윈을 언급한다.
다윈주의 위주의 대통합이론을 꿈꾸는 리처드 도킨스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마지막 수는 나머지 수와는 비교할 수 없게 우리에게 익숙한 차원의 수, D다.
우주학은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우리의 우주 차원의 수, 3이라는 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왜 우리 우주는 1도 2도, 아예 다른 수도 아닌 하필이면 3이라는 수를 자신의 차원의 수로 가지게 되었는가?
이 차원의 수는 앞의 수들처럼, 그 수 자체가 우리 우주 구조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기보다 그 수가 왜 3인지 그 이유를 조사함으로써 우주에 대한 더 원론적인 이야기, 본질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수라고 볼 수 있다.
그 논의의 핵심으로 마틴 리스가 들고 있는 것은 초끈 이론인데, 6차원이네 11차원이네 2차원 평면이 돌돌 말려있네 하는 이야기를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마틴 리스마저 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마틴 리스는 책의 마지막에서 다우주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현재 우주론이 나아갈 수 있는 그 한계를 되도록 쉬운 말을 사용해 설명하고 300쪽이 채 되지 않는 짧으나 그 내용은 무시무시하게 어려운 책을 끝낸다.
이런 거대 석학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똑같이 밀려들어왔다.
이런 책은 물론 지식적으로 책의 내용을 속속 파악하고 그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1차적인 독서의 목적이다.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 별의 이동 상태를 파악한다는 것이나,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하고 그 빛이 우리에게까지 도달하는 경로를 분석함으로써 우주에 대한 온갖 사실을 도출해내는 과정 따위가 내가 '여섯 개의 수'를 읽음으로써 얻은 지식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 지식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독서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독서가 아닌 노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얻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계속 버리면서 이 책을 읽은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의무적으로 글자를 읽고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내가 이런 책을 읽으며 더 집중하는 부분은 저자의 논리 전개 과정에 주목하고, 인간의 놀라운 지성에 경이를 표하며, 그로부터 개인적으로는 나의 지적 역량 발전에 채찍질을 가하고, 거시적으로는 그 책에서 다루는 주요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관점을 확보해 나를 포함한 우리 인간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실감도 나지 않는 거대한 세계를 다루는 사람들은 우주를 어떤 개념으로 생각할까?
그리고 그 거대한 우주 안에 있는 지구와 그 지구에서 한낱 중요하지도 않는 일로 티격태격하는 인간들에 대해선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런 개념과 관념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여섯 개의 수' 같은 책에서 얻어야 할 양분은 바로 이런 관점에 관한 것이다.
특히나 마틴 리스의 경우, 그의 과학 중심주의에 대한 경계,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이 여전히 무한히 멀다는 견해 등은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들이 다져놓은 나의 일편향적인 생각에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마틴 리스의 템플턴 수상과 같은 소식에 대해 예전보다 좀 더 조심스러운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 현재로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말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훌륭한 책이었고, 이 책의 시리즈, 사이언스 마스터스의 책을 몇 권 더 구매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추신의 성격으로 뭔가 덧붙이자면, 아인슈타인과 뉴턴에 대한 흔한 오해는 이제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론은 그 이론 자체의 유효성 문제를 떠나, 많은 경우 유사 과학이 정규 과학의 자리를 침범하는 것의 발판 이론으로 그릇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때 대표적으로 들먹이는 근거가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이론을 뒤집어 엎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뉴턴의 이론이 틀렸다고 증명한 것도 아니고, 그의 이론과 전혀 기반이 다른 브랜드 뉴 띠오리(theory)를 제시한 것도 아니다.
제발 아인슈타인과 뉴턴의 예를 들며 과학이란 전혀 근본이 다른 어떤 이론이 다른 이론을 집어삼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든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기성 과학과의 경쟁 상대로 만드려고 한다든지 하는 짓은 이제 제발 그만.
'아마'라는 부사가 들어가는 이유는 별 건 없고 단지 내 기억이 가물가물하기 때문.
어쨌든 확실한 것은, 내가 어떤 책에서 '여섯 개의 수'라는 이름을 봤든 그 책은 지적으로 깊은 내용을 담고 있고 그 깊은 내용은 꽤나 훌륭한 성격의 것이었으리라는 것이다.
|
책의 저자 마틴 리스는 일반 한국인들에게 그렇게 낯이 익은 이름은 아니다.
잠시 책 뒤표지의 그의 설명을 빌린다.
일단 저자가 어느 정도의 권위를 인정 받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맘 놓고 글을 읽을 수 있지 않겠는가.
영국 트리니티 대학의 우주론·천체물리학 교수이자 명예 왕립 천문대장인 마틴 리스는 영국이 자랑하는 우주론 연구자이자 천체물리학자이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서섹스 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다. 그는 우주 구조 형성, 고 에너지 물리학 등에 대한 연구로 수많은 상을 받았고, 2006년 현재 영국 왕립 학회의 의장으로 재직 중이다.
정리하면 매우 대단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짧은 글로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었던 나는 이런저런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봤는데 그가 매우 대단한 사람이라는 결론은 변함이 없었다.
조금 더 와닿게 설명하자면, 이 사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티븐 호킹 이상의 인물이다.
최소한 나의 판단에 의하면 말이다.
그가 템플턴 수상과 관련해, 그리고 종교에 대한 그의 조심스러운 태도와 발언 때문에 이공계도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는 사실은 차치해두자.
이는 내가 좀 더 많은 관점의 책을 읽고 그 바탕으로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 전까지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섯 개의 수'는 우리의 우주가 가지고 있는 여섯 가지 기본적인 상수들에 관한 이야기다.
아무리 마틴 리스가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는 하지만 우주를 다루는 학문이란 자고로 범인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단위부터 큰 단위까지를 필히 고루고루 다뤄야 하는 학문이다.
그런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초 미시 세계, 초 거시세계와의 극명한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학문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상식을 심하게 벗어나는 극단의 두 학문을 마스터해야 함은 물론, 점점 논의가 심화될 수록 철학적인 이야기에까지 다가가는 우주의 근원과 한계, 그 미래를 이야기하는 학문은 이렇게 갸웃 생각해봐도 정상적인 인간이 소화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머리가 빠득빠득 거친 소리를 내며 억지스럽게 돌아가는 느낌을 받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은 비추다.
하지만 그런 지적인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틴 리스의 '여섯 개의 수'만큼 좋은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
사실은, 내가 우주에 관한 책 자체를 별로 읽어본 적이 없다!
첫 번째로 다뤄지는 수는 우주의 중력을 나타내는 N이다. 1
이 수는 우주의 크기와 수명을 결정하는 상수일 뿐만이 아니라 그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성(星)들의 크기와 수명, 지구를 포함해 몇몇 행성에 살고 있을 수많은 생명체들의 크기까지 정하는 상수다.
N의 감소(중력의 증가)는 우주 크기의 축소를 불러와 별의 밀도를 높이는데 이럴 경우 안정한 행성계의 형성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행성의 크기와 수명도 줄고 그 위의 생명체 역시 신체가 짜부라지기 전에 더 작은 몸체를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별의 수명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생명의 진화가 충분히 이루어지기 전에 별의 생명이 끝나게 된다.
반대로 N이 커지면?
즉, 중력이 약해진다면?
마틴 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거꾸로 훨씬 더 약한 중력은 훨씬 더 정교하고 더 수명이 긴 구조를 발달시킬 수 있다.
(중략)
역설적으로 중력이 약할수록(그것이 실제로 0이 아니라고 가정하면), 결과는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우리는 N의 값을 설명해 주는 어떤 이론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주의 끝은 어떤 모양일까. 재미없게도 우주의 끝에서 우리는 저런 평범하기 그지없는 벽에 부딪히고 끝나는 것은 아닐는지.
두 번째 수 ε은 핵력이다. 2
우주의 탄생 이후 현재 우수의 구성 원소들의 비율을 결정하는 상수로 이 상수의 변화는 안정한 원자들의 수와 그 비율의 변화를 가져온다.
즉, 이 수의 값이 단 몇 퍼센트만 작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생태계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볼 수 있는 "탄소에 기초한 생물권"은 말 그대로 탄소를 그 환경의 기반 요소로 삼는데, 그 탄소의 양이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ε이 조금이라도 컸다면 두 수소의 두 양성자는 훨씬 쉽게 결합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수소의 비율이 현재보다 심하게 줄어들게 되므로 별들의 연료도,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생명의 필수 조건인 물도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임계 밀도에 대한 실제 밀도의 비인 Ω는 우주의 팽창과 수축 여부를 결정하는 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3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로부터 어림한 Ω값은 0.04밖에 되지 않는데 이는 우리가 측정하는 질량 물질이 실제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말하면 아직도 우주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질량 물질이 엄청나게 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로부터 우리는 암흑 물질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우주의 초기 팽창 속도에 따라 그 우주의 모습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현재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초기 Ω값이 얼마나 정교해야 하는지 마틴 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우주가 팽창을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는 중력과 정확히 균형을 이룰 정도로 아주 미세하게 조율된 자극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워 보인다. 그것은 마치 우물 바닥에 앉아서 돌멩이 하나를 던져 정확히 맨 꼭대기에 올려놓는 묘기와 같다. 이때 요구되는 정확도는 놀랍다. 우주가 100억년 뒤, 여전히 팽창하고 있고 확실히 1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Ω의 값을 갖기 위해서는, 대폭발 뒤 1초 되었을 때의 Ω가 1과 10^(-15) 이상 차이가 나면 안 된다. 4
마틴 리스는 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6장의 주제를 암흑 물질로 잡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암흑 물질들의 존재와 그 후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암흑 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손쉽게 그 이야기에 압도당하게 된다.
비록 우주학이라는 학문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우주의 90% 이상이 암흑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아직도 그 암흑 물질의 정체를 거의 가늠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인간의 박탈감을 극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우주의 팽창과 축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마틴 리스는 네 번째 수, λ 이야기를 시작한다. 5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정적(靜的) 우주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한 반중력을 개입시키기 위해 도입한 우주 상수가 바로 그 λ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나중에 우주 상수를 도입한 것은 자기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인정하기도 했는데 마틴 리스는 최근에 이 상수 값의 의미가 재조명되었고 우주의 궁극적 결말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열쇠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 장 자체가 다른 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고, 구체적인 내용은 별로 언급되지 않는 바람에 나도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다섯 번째 수는 중력으로 결합된 구조를 와해시키는 에너지와 정지 질량 에너지의 비의 값 Q다. 6
이 수가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여러 은하단과 은하를 비롯한 우주의 구조가 성장할 수 있는 '씨앗'이 생길 수 있는 우주 초기의 불규칙성이다.
우주의 모든 원자가 균일하게 지금의 공간 안에 균일하게 존재한다면 별을 만들기에 충분한 밀도가 생길 수 없다.
우주가 현재와 같이 은하와 은하단의 구조를 가지기 위해서는 불규칙한 배열, 굴곡이 필수적이고 Q의 값이 나타내는 것이 바로 그 굴곡의 크기라는 말이다.
Q가 현재의 값보다 작다면 은하의 밀도는 낮아지게 되고 중력으로 구속된 어떠한 구조 형성도 불가능하게 된다.
Q가 현재의 값보다 크다면 지금의 은하 단위보다 훨씬 더 큰 크기의 지역이 한 번에 응축하게 되므로 은하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고 만다.
설령 은하가 어떻게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안의 별들이 너무 모이게 되어 안정한 행성계의 형성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마틴 리스는 흥미롭게도 다윈을 언급한다.
다윈주의 위주의 대통합이론을 꿈꾸는 리처드 도킨스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우주의 구조가 어떻게 창발되었는가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흥미롭게도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다윈의 견해와 비슷하다. 진화론에서도 전체 과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즉 Q가 결정되는 방식(아마도 아주 초기 우주에서 미세 진동 등이 발생하는 방식)은 지구에 출현한 최초의 유기체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수수께끼다. 그러나 우주는 한 가지 중요한 면에서 더 간단하다. 일단 시작점이 결정되면 결과를 개괄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출발한 우주의 모든 커다란 부분은 통계적으로 유사하게 끝난다. 반대로 생물학적 진화의 총체적인 과정은 기후 변화, 소행성 충돌, 전염병 같은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만약 지구의 역사가 다시 실행된다면, 상당히 다른 생물권으로 끝날 수도 있다.
마지막 수는 나머지 수와는 비교할 수 없게 우리에게 익숙한 차원의 수, D다.
우주학은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우리의 우주 차원의 수, 3이라는 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왜 우리 우주는 1도 2도, 아예 다른 수도 아닌 하필이면 3이라는 수를 자신의 차원의 수로 가지게 되었는가?
이 차원의 수는 앞의 수들처럼, 그 수 자체가 우리 우주 구조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기보다 그 수가 왜 3인지 그 이유를 조사함으로써 우주에 대한 더 원론적인 이야기, 본질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수라고 볼 수 있다.
그 논의의 핵심으로 마틴 리스가 들고 있는 것은 초끈 이론인데, 6차원이네 11차원이네 2차원 평면이 돌돌 말려있네 하는 이야기를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마틴 리스마저 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유한한 광속으로 고정된 우주의 지평선 저 너머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측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우주 공간은 100억 광년을 훨씬 뛰어넘는 큰 규모에서 매우 복잡하게 엉켜 있을 수도 있다. 심지어 차원의 수가 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망원경으로 볼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암시 이상은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이 우주의 어딘가는 10+5-(8X2)+3이 2가 아니고 4인 세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이 메모를 남긴 사람은 머나먼 우주에서 떨어진 외계 생명체일 가능성이 크다. 또는 그냥 수학 지진아이거나.
마틴 리스는 책의 마지막에서 다우주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현재 우주론이 나아갈 수 있는 그 한계를 되도록 쉬운 말을 사용해 설명하고 300쪽이 채 되지 않는 짧으나 그 내용은 무시무시하게 어려운 책을 끝낸다.
이런 거대 석학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똑같이 밀려들어왔다.
이런 책은 물론 지식적으로 책의 내용을 속속 파악하고 그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1차적인 독서의 목적이다.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 별의 이동 상태를 파악한다는 것이나,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하고 그 빛이 우리에게까지 도달하는 경로를 분석함으로써 우주에 대한 온갖 사실을 도출해내는 과정 따위가 내가 '여섯 개의 수'를 읽음으로써 얻은 지식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 지식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독서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독서가 아닌 노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얻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계속 버리면서 이 책을 읽은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의무적으로 글자를 읽고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내가 이런 책을 읽으며 더 집중하는 부분은 저자의 논리 전개 과정에 주목하고, 인간의 놀라운 지성에 경이를 표하며, 그로부터 개인적으로는 나의 지적 역량 발전에 채찍질을 가하고, 거시적으로는 그 책에서 다루는 주요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관점을 확보해 나를 포함한 우리 인간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실감도 나지 않는 거대한 세계를 다루는 사람들은 우주를 어떤 개념으로 생각할까?
그리고 그 거대한 우주 안에 있는 지구와 그 지구에서 한낱 중요하지도 않는 일로 티격태격하는 인간들에 대해선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런 개념과 관념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여섯 개의 수' 같은 책에서 얻어야 할 양분은 바로 이런 관점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망원경은 초끈(원자 내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되는 가장 작은 구조)보다 60자리 더 큰 거리까지 관찰할 수 있다. 즉 우리는 배율이 각기 다른 60개의 '줌 렌즈'로 자연을 볼 수 있다(현재 사용 가능한 줌 렌즈는 그중 43개이다.). 물론 우리의 일상 경험(1밀리미터 정도의 물체에서 대륙 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거리까지)은 기껏해야 9개의 줌 렌즈면 충분히 볼 수 있다. 이것은 중요하고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 준다. 즉 우리 우주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작은 다양한 구조들을 엄청나게 다양하게 포함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마틴 리스의 경우, 그의 과학 중심주의에 대한 경계,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이 여전히 무한히 멀다는 견해 등은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들이 다져놓은 나의 일편향적인 생각에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마틴 리스의 템플턴 수상과 같은 소식에 대해 예전보다 좀 더 조심스러운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 현재로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말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훌륭한 책이었고, 이 책의 시리즈, 사이언스 마스터스의 책을 몇 권 더 구매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추신의 성격으로 뭔가 덧붙이자면, 아인슈타인과 뉴턴에 대한 흔한 오해는 이제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론은 그 이론 자체의 유효성 문제를 떠나, 많은 경우 유사 과학이 정규 과학의 자리를 침범하는 것의 발판 이론으로 그릇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때 대표적으로 들먹이는 근거가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이론을 뒤집어 엎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뉴턴의 이론이 틀렸다고 증명한 것도 아니고, 그의 이론과 전혀 기반이 다른 브랜드 뉴 띠오리(theory)를 제시한 것도 아니다.
제발 아인슈타인과 뉴턴의 예를 들며 과학이란 전혀 근본이 다른 어떤 이론이 다른 이론을 집어삼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든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기성 과학과의 경쟁 상대로 만드려고 한다든지 하는 짓은 이제 제발 그만.
아인슈타인은 '뉴턴이 틀렸다고 입증하지' 않았다. 그는 뉴턴의 이론을 훨씬 더 심오한 무언가로 편입시켜 더 광범위하게 응용할 수 있게 했다. 사실 만약 그의 이론에 다른 이름, 즉 '상대성 이론'이 아니라' 불변 이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그리고 그 문화적 의미에 대한 폭넓은 오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사실 이 N은 그 자체가 중력의 크기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크기가 무려 10의 36승이나 되는 수가 중력과 직접 관련이 있는 수라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게 아닌가. N은 "원자들을 결합시키는 전자기력의 세기를 원자들 사이의 중력으로 나눈 값이다". 즉, 중력과는 반비례 관계에 있는 수라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 엡실론이라고 읽자. 이 상수의 값은 0.007이다. [본문으로]
- 오메가라고 읽으면 된다. [본문으로]
- 책에는 "맨 꼭대기에서"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서"는 오자가 아닐까? [본문으로]
- 국어 발음으로 람다. [본문으로]
- 약 십만분의 일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A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마를 보았다 (0) | 2011.12.25 |
---|---|
KMFDM <What Do You Know, Deutschland?> (0) | 2011.12.24 |
목로주점 상 (0) | 2011.12.24 |
Mission : Impossible - Ghost Protocol (0) | 2011.12.23 |
Radiohead - You (0) | 2011.12.23 |
Alice Cooper - Alma mater (0) | 2011.12.18 |
Glengarry Glen Ross (0) | 2011.12.18 |
Planet Terror (0) | 2011.12.18 |
Death Proof (0) | 2011.12.17 |
Radiohead <The Bends> (3) | 2011.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