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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는 내가 여태까지 노암 촘스키의 책을 대여섯권 읽으면서 내가 그 이름을 볼 수 있었던 정말 몇 안 되는 작가 중에 하나다.
그럼, 당연히 그의 대표작쯤은 읽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세계 명작에 속하는 책은 대부분 민음사의 책을 사보는 편인데, '목로주점'의 경우 민음사의 책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저런 책을 둘러보다가 열린책들의 책을 샀다.
책 안에 껴있는 팜플렛으로부터 열린책들에도 세계 문학 시리즈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목록에서 꽤나 흥미로운 이름들을 볼 수 있었다.
앞으로 열린책들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책말고 다른 책들도 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끝까지 쫘악 못 벌리는 답답함은 조금 제쳐두고서 말이다.
'목로주점'의 상권까지 읽었을 때의 소감은 '만족스럽다' 정도.
전반적인 느낌은 '마담 보바리'와 비슷하다는 정도.
사실적이고 외설적인 묘사와 타락해가는 사람, 그 타락을 방조하는 사람, 그 타락에 같이 빠져드는 사람 등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닮았다.
두 작품 다 세간에 공개되었을 때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점 역시 '목로주점'과 '마담 보바리'가 닮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겠다.
'목로주점'에 대한 짧은 소개로는 에밀 졸라 자신이 직접 남긴 문장을 인용하겠다.
나 자신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의 작품이 나를 변호해 주리라. 이것은 진실의 작품이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민중의 냄새가 나는 최초의 민중 소설이다.
우선 이 책이 "민중의 냄새가 나는" 소설이라는 말은 소설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이 죄다, 모두다 소시민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에밀 졸라는 '목로주점'에 아주 전형적인 캐릭터들만을 등장시킨다.
레진의 최근 포스팅에 올라온 영화 '부당거래'의 명대사,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을 읽고 있으면 '이 얼마나 일일 연속극에나 나올 것 같은 상황인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때부터 제르베즈는 남에게 선물하는 버릇을 딱 끊어 버렸다. 이제 포도주도, 수프도, 오렌지도, 케이크도, 아무것도 없어. 망할 놈의 부부가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겠어! 그런데 보슈 부부는 쿠포 부부가 자기들에게 더 이상 선물을 주지 않는 행위를 자기들에게서 도둑질을 해가는 행위로 취급했다. 제르베즈는 비로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만일 그들에게 바보처럼 퍼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나쁜 습관을 들이지 않았을 테고 지금도 여전히 상냥하게 굴 테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은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나는 결국 이 책은 현실 폭로와 사실적 묘사에만 그 문학적 가치를 두고 있을 뿐이지 그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요소는 그다지 치밀하지 못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치부되고 말 작품이었다면 내가 '목로주점'이라는 작품의 이름은 물론이요, 그 존재마저 알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전형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른 관점에서 보고자 노력했다.
책을 읽어감에 따라 내 노력은 빛을 발했는데, 내가 전형적이라고 평했던 '목로주점'의 등장 인물들은 사실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달은 것이다.
답은 전형적이라는 단어 속에 있었는데, 우리가 무언가를 전형적으로 느껴지기 위해서는 그 무언가가 집단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야 하고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여야 한다.
에밀 졸라가 묘사한 속이 옹졸한 등장 인물들은 이런 류의 소설이라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런 진부함의 발현이 아니라 그 자체가 범인들의 일상을 꿰뚫고 있는 것이었다.
범인들의 일상. 잡았다 요놈!
에밀 졸라는 크게 두 가지면의 소시민을 묘사하고 있다.
1번은,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기계적인 노동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스스로 몰락해가는 모습.
2번은,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이면서 에밀 졸라가 주제 정신을 담고 있는 탐욕스럽게 변해가는 인간상이다.
작가는 주인공 제르베즈의 일상을 불안한 행복의 연속으로 채워넣으면서 중간 중간 우연한 사건을 삽입, 그녀의 인생 그래프를 완만한 음의 기울기로 유지한다.
가끔씩은 그런 불안함을 유지하기 위해 분위기를 급반전시키는 사건을 집어넣어 조금은 억지스럽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자면, '운수 좋은 날'에서 현진건이 그랬던 것처럼 꾸준하게 불길한 복선을 깐다.
결국 모든 문제의 근원은 술이라는 인생의 진리를, 에밀 졸라는 놓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금주를 권하고 싶다면 '목로주점'을 추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
술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타락에 저항할 능력과 의지를 모두 빼앗아가는 인류 최고이자 최악의 발명품이 아닐까.
그는 그녀를 꼭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세탁물 더미가 불러일으키는 가벼운 현기증에 얼이 빠진 채 쿠포의 술 냄새 나는 숨결조차 싫어하지 않으며 몸을 맡기고 있었다. 불결한 가게 한복판에서 그들이 한입 가득 교환한 이 진한 키스야말로 서서히 무너져 가는 그들의 삶이 보여 준 최초의 전락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침 쿠포는 길을 건너오고 있었다. 그는 가게 문을 잘못 밀어 하마터면 어깨로 유리창을 깰 뻔했다. 그는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대취한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제르베즈는 대번에 <목로주점>의 독주가 그의 혈관에 돌고 있음을 알아차렸는데, 중독된 피는 그의 피부를 창백하게 만들었다.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어린애처럼 굴던 날처럼, 그녀는 웃으며 그를 데리고 가서 재우려 했다. 하지만 그는 입을 꽉 다문 채 그녀를 떠밀었다. 그러고는 혼자서 침대로 가면서 그녀를 향해 주먹을 쳐들었다. 그는 저 위층에서 마누라를 때리다 지쳐 코를 골며 잠든 주정뱅이를 닮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온몸이 오싹해졌고,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으리라는 절망적 예감에 가슴이 미어지며 남편, 구제, 랑티에를 차례로 떠올렸다.
이 책이 "진실의 작품"이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소설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이 소설에 어떤 인위적인 허위, 과장, 은폐, 누락 따위가 일체 배제되어 있다는 말이다.
'목로주점'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성(性)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다.
지금봐도 충분히 외설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만약 당시 프랑스 사회가 에밀 졸라가 서술한 정도로 문란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성의 개방에 있어 프랑스보다 적어도 한 200년은 뒤져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름이 마른 도르래 같은 소리로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클레망스는 작업대에 바싹 붙은 채 손목과 팔꿈치를 능란하게 놀리면서 목을 굽히고 열심히 다림질을 했다. 그녀의 벌거벗은 맨살이 부풀었고, 어깨가 보드라운 피부 밑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힘줄의 율동과 함께 솟아올랐으며, 살며시 벌어진 내의의 장밋빛 그늘 속에서 젖가슴이 땀에 젖어 불룩해졌다. 그러자 그가 손을 뻗어 만지려 했다.
에밀 졸라는 서술 시점을 교묘하게 변화하여 등장 인물의 심리를 직접 이해하게 하는 서술법을 사용한다.
소설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 독자를 그 소설로 흡입시키는 역할.
아침에 그는 다리가 마치 솜뭉치처럼 힘이 없다고 불평했고, 과음하면 결국 심신을 망칠 텐데 그렇게 마셔 대다니 자기도 한심한 인간이라고 자학했다. 술꾼들과 마주치면 팔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으니, 본의 아니게 부어라 마셔라 하게 되고, 결국 고주망태로 뻗게 된단 말이야! 아! 이래선 안 돼!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 한창 나이에 선술집에서 객사하고 싶진 않아. 점심 식사 후에 그는 원기를 되찾아 아직도 멋진 저음이 살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에헴! 에헴! 하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불 보듯 뻔하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제르베즈와 그 주변인들의 미래를, 에밀 졸라는 얼마나 지루하지 않게 써냈을까.
이제 끝까지 쫙쫙 벌어지지도 않는 양장본을 붙들고 다시 씨름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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