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24 : 그 이름도 섹시한 69가의 밤

| 2012. 6. 18. 09:12

아무래도 시간 순으로 글을 쓰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비루한 일상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재밌는 글을 쓰려고 했으나 나의 일상이라는 것이 타인에게 공개하기에 너무나 하잘 것 없는 일들로 채워져나가고 있기 때문에 그저께는 뭐 했다, 어제는 뭐 했다 쓰는 것이 정말 의미가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감이 어느 정도 쌓인 뒤에 글을 쓰려고 하다 보니 자꾸 포스팅만 늦어지더라.
작전을 바꾸어 내가 생활하는 공간에 대한 글이나 쓸까 하다가 그마저도 하나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라는 생각에 작전 변경,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을 위주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 전에 지난 주의 일정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월요일 화요일에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뻗지 않았고, 수요일에는 그 지난 수요일과 비슷하게 농구를 했으며 ㅡ 부대에서 신던 조깅화 대신 편하게 신을 요량으로 가져간 조던을 신었으나 몸이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ㅡ 목요일엔 아마 고등학교 후배 두 명을 만나 같이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치약과 비누를 샀고 ㅡ 이상하게도 치약과 비누가 인크레더블한 속도로 소모되었다 ㅡ 시덥잖은 일을 하느라 저녁에 거의 밤을 새운 뒤, 금요일 오전에 의미 있는 브런치 약속을 갖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퍼잤더랬다.

정말 간단한 일상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써놓고도 놀라울 수준.

예리한 사람이라면 이 시점에서 심상치 않은 감(感)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
이야기의 끝이 금요일 오후에서 끊겼다는 점을 선정적인 제목과 엮었을 때 발생하는 불끈거리는 욕망의 시너지, 그것을 느꼈다면 어느 정도 답을 맞춘 셈이다.
69라는 숫자에서 연상되는 어떤 행위, "섹시"와 "밤"이라는 단어로부터 유추되는 그 몽롱한 느낌 같은 것이 흥미 유발을 위한 나의 낚시였다는 점만 뺀다면 말이다.

어쨌든 다시 지난 금요일 오후로 돌아가자.
밤을 샌 뒤의 신체적인 피로함에, 멘토 역할이 되어준 분의 소중한 질타로 인한 멘붕까지 겹쳐 정신 없이 골아떨어졌던 내가 정신을 차려 보니 거의 오후 4시가 다 되어 있었다.
확실하게 약속을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금요일 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불금이라고 부르기 좋아하는 그 금요일 밤에 우리 셋 ㅡ 우리 셋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이 포스트의 여섯 번째 문단을 읽어보길 권한다 ㅡ 은 가볍게 술이라도 한 잔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누가 딱 꼬집어 낸 것은 아니지만 인턴을 하던 친구가 첫 월급을 받았고 그 친구가 전역한 지 1년이 되었고 등등은 다 시덥잖은 이유고 그냥 지난 토요일에 곯아 떨어진 이후로 술을 안 먹었기 때문이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인턴을 마친 친구가 집에 왔다.
둘이 노가리나 좀 까면서 나머지 친구가 잠에서 일어나길 기다렸다.
집에서 셋이 제 꼴로 나온 시각은 약 7시 30분.
날씨는 화창했다.
놀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은 없는 것 같았다.

택시를 잡고 69가로 갔다.
이상한 생각이 나는 것까지 말릴 수는 없으나 69가란 예순아홉 번째 거리라는 뜻이다.
사실 우리의 목적지는 69가가 아닌 70가 너머에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으나 필라델피아에서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69가라는 단어를 썼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첫째로 입에 착착 감기기 때문이요, 둘째로 택시 기사들에게 다른 목적지를 말하는 것보다 69가라든지, 69가 버스 터미널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잘 알아먹히기 때문인 것 같다.

첫 목적지.

사실 나는 이미 69가에 여러 번 온 적이 있다.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이튿날 밤 친구들과 가볍게 술을 먹었다는 곳도 69가였고 고기 파티를 위해 장을 보러 갔던 곳도 69가였다.
다만 내가 갔던 곳들은 전부 Y자로 펼쳐진 길 ㅡ 내가 사는 곳에서 69가를 오려면 6시 방향의 길을 타고 와야 한다 ㅡ 에서 10시 방향으로 뻗은 길에 있던 곳이었고 이 날은 따지자면 정중앙, 즉 삼거리에 근처에 있는 곳으로 간 것이다.

건물을 등지고 서서 보이는 풍경.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34가 근처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낑낑거리며 돌아다니던 시내가 15가~19가 근처인 것을 감안했을 때 69가는 사실 필라델피아의 입장에서 보면 변두리 지역이다.
주변도 황량하고 늦은 밤에 돌아다니면 자꾸 이상한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이 없나 돌아보게 만드는 곳이다.
하지만 불타는 금요일에 그런 걸 고민하고 있으면 사내 대장부가 아니지.

사진을 찍었을 때 이미 흔들렸던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시 찍으려니 쪽이 팔려서 관뒀다.

가장 무난하게 먹을 수 있다는 순대 볶음과 부대 찌개를 안주 + 저녁 먹거리로 시키고 막걸리와 소주와 맥주를 골고루 주문했다.
한 잔 두 잔 술잔을 비워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곳 69가의 상권 생태계는 비교적 간단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설명하기 복잡한 알력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 곳을 직접 수 차례 방문했거나, 필라델피아에서 유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
설명을 함에 있어 고유 명사가 튀어 나오지 않는 것에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짧게 밝혀두는 바이다.

TV에서 하는 퀴즈 쇼의 답을 맞춰가며 서로 술을 먹는 정말 하잘 것 없고 시덥잖은 시간을 보내다가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아주 당연하게도 우리의 발걸음은 택시 승강장이 아닌 2차 장소로 향했다.
그것은 마치 뉴턴의 눈에 띈 사과가 대지 방향으로 떨어지듯,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뭇남성들의 목이 일제히 돌아가듯 토를 달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 사진도 흔들렸을 줄은 몰랐다.

비록 룸살롱이라고 하는 곳에 가본 적은 태어나서 한 번도 없지만 왠지 영화에서나 봤던 것 같은 룸살롱과 비슷한 분위기의 술집이다.
그렇다고 사진에 보이는 것이 독립적인 한 방이라는 뜻은 아니다.
전체적인 구조는 그냥 음식점이나 술집과 비슷하게 테이블들과 바가 놓여 있는 하나의 넓은 공간, 독립되어 있는 주방, 복도를 통해 갈 수 있는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는 곳이다.
다르게 말하면 저 사진에서 보이는 공간 뒷 편으로 다른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술을 먹고 있었다는 말인데, 취기가 적당히 오른 우리는 저렇게 오픈된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냥 술에 취한 자들이 흥얼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가게 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노래방 기계를 틀고야 말았고, 알코올 증기 반, 날숨 반 섞인 기괴한 진동을 토해냈다.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만의, 우리만을 위한, 우리만에 의한 사태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았다.

적당히 놀고 ㅡ 여기서의 "적당히"는 논 정도를 어느 수준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말이 아니라 그냥 이 이상의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 ㅡ 남은 안주를 정리한 뒤 술집을 나섰다.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간 것이 아니고 3차를 갔다.
흥미롭게 기억되는 것은 워낙에 갈 수 있는 곳의 선택권이 좁기 때문에 우리가 3차 자리로 갔던 곳은 바로 1차 자리를 보냈던 그 곳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거의 한국 지방 중소도시 유흥가 같은 느낌이다.

내가 알기로 69가에서 한국 사람들이 흥겹게 놀 수 있는 곳은 딱 네 군데가 있다.
내가 1차, 3차로 갔던 곳은 식사와 술을 둘 다 해결할 수 있는 곳이고, 2차로 갔던 곳은 식사와 술과 노래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외에 노래방 두 개가 더 있는데 뭐 당연히 이 곳에서는 술과 노래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그나마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아까와는 다른 자리에 앉았다.
술을 먹은 세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더 있으랴.
지 딴에는 대단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제3자가 듣기에, 심지어 술에서 깨어난 대화 당사자들이기 기억하기에도 개똥 같은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다.
주위로 집중이 분산되다보니 벽의 낙서가 눈에 들어왔다.
각성된 정신이었다면 절대 찍을 생각도 못 했겠지만 주정뱅이 버전의 나는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갑자기 벽의 낙서들을 보고 있자니 데자뷰 같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있던 언젠가의 기억인데, 분당까지 놀러가서 갔던 어떤 어두침침한 분식집의 벽과 아주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벽의 질감도 비슷한 것 같고, 조명의 색감도 비슷한 것 같다.
형형색색으로 휘갈겨진 낙서들도 비슷했고, 대부분 아무 소리나 지껄이며 때때로 정(情) 또는 욕(慾)에의 굶주림을 호소하는 어린 영혼들의 흔적들도 비슷했다.
미국이라는 먼 땅에까지 와서 익숙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 사고 자체가 상당히 낯선 것이라는 역설적인 행위다.
머리로는 패러독스를 느끼며, 취해가는 정신에 입으로는 아이러니를 이야기하던 우리는 시킨 술만 잽싸게 먹고 자리를 떴다.

이것이 불타는 금요일 밤의 마감이었다.

토요일은 하얗게 불태웠던 금요일 밤의 남은 찌꺼리를 처리하느라 시간을 다 썼다.

일요일 밤에는 위에서 짧게 언급했던 노래방 중 한 곳을 들렀다.

무슨 노래였을까.

하도 미국에서 "한국적"인 공간을 간 적이 많아 더 이상 컬쳐(?) 쇼크를 느낄 것도 없었지만 이 곳 역시 한국의 평범한 노래방과 놀랍게도 닮아 있었다.
노는 과정에 있어 특이할 만한 사항은 없었으므로 이 정도에서 글을 마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주말이 지났고, 내가 미국에서 머물 날이 조금 줄어들었으며 그만큼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조금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