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더

| 2011. 9. 4. 15:22

내가 보는 일본 영화는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아오이 유우가 나오는 영화이거나, 기타노 다케시가 만든 영화로.
'브라더'는 후자에 속하는 영화다.

브라더
감독 기타노 다케시 (2000 / 일본,미국)
출연 기타노 다케시,오마 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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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지로의 여름' 이후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이 행동으로는 ㅡ 지난 3월에 '피와 뼈'를 감상한 것이 전부다 ㅡ 잘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기타노 다케시의 대단함이 생각보다 별 것 아닌 것인지, 아니면 그의 대단함에 비해 그 자신 또는 그의 영화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의 언행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게으른 나의 탓도 있지만 주변에서 그의 영화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 제공을 했다.
이와 같은 주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그의 많은 영화 중에 '브라더'를 고른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브라더'가 기타노 다케시의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괜찮은 영화는 아니라는 평을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으나 최선책이 없었기에 차선책을 선택한 것이다.

전형적인 기타노 다케시 식의 영화라는 생각을 가지고 감상에 임했다.
진지함 속에 담긴 해학.
히사이시 조의 파스텔 톤 음악.
굳게 다문 표정으로 무슨 대사든 표현해 낼 수 있는 기타노 다케시의 연기.
또는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에서 관객들이 무언가를 읽어내게끔 하는 기타노 다케시의 상황 연출.
화려하고 혁신적이지 않지만 조용하고 은근하게 훌륭한 카메라 워크.
엔딩 장면이 주는 해탈과 관용의 미.

이 외에도 많은 요소가 사방에서 '이 영화는 전형적인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라는 생각을 반강제적으로 내 머리 속에 주입시키던 중 과연 이런 특징이 기타노 다케시라는 인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일본 문화라는 세계적으로 고유한 특성이 유발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따지고보면 내가 봤던 일본 영화는 참 일본 영화다웠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도 그런 '일본 영화다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권위의 힘을 상당히 믿는 나는 그의 세계적인 명성이 그저 다작(多作)이나 일본인 감독이라는 진부한 요소로 인해 생겨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그의 영화에는 많은 사람들의 감정에 파문을 일으키는, 굵직한 무언가가 있을 터.
굵직한 무언가를 파악하는 것은 나중에 볼 영화에서 파악하기로 해야겠다.

대체 그 머리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무니까 기타노 상.


이 영화를 파악하는 핵심적인 부분을 그런 식으로 미뤄두면 별로 할 말은 없다.
그나마 드는 의문은 미국인이, 또는 서양인이 '브라더'에 등장하는 일본인 특유의 감성 ㅡ 그나마 한국 사람들은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는 ㅡ 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관한 것이다.
야쿠자의 극단적인 수직 관계가 보여주는 '오야붕'과 '아니키'와 부하의 모습, 가족과 형제, 명예와 신뢰와 의리와 보은 같은 서양인이 이해하기엔 논문 수준의 분석이 필요한 가치들에 대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상당 수의 사람들이 이질적이라고 느끼리라는 것은 뻔하다.
문득 얼마 전에 읽은, 리비아에서 강간을 당한 딸 세 명의 목을 손수 잘라버린 한 남성의 기사가 생각났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쪽에서 보는 저쪽이나 저쪽에서 보는 그쪽이나 그쪽에서 보는 이쪽이나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이 영화에서 폭력과 웃음을 제하면 인종과 문화라는 상당히 고난이도의 주제가 드러난다.
그런데 그 주제가 발하는 빛이 너무 희미해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이탈리아 마피아와 일본 야쿠자의 전쟁 방식 차이 같이 거시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라면 한 문단 정도는 떠들 수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