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학

| 2011. 5. 22. 17:24

한 한 달 전에 써둔 글인데 왠지 써놓고 보니까 후잡하다는 느낌이 가시질 않아서 블로그든 어디든 올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가한 일요일 오후에 문득 생각나서 조심스레 포스팅해본다.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쓴 글은 아니라 짤방도 없고 다소 말투도 다소 딱딱하다.
그리고 내가 올리기를 망설였던 만큼 글이 썩 매끄럽게 써지지 않았다.
그럼 시이작.

세상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기다림이 있다.
우선, 요새 버스에 붙어다니는 광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임신 테스트기에 한 줄이 뜨는지 두 줄이 뜨는지 기다리는 것이나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친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지 안 넘어가는지 기다리는 것 같이 굉장히 짧은 순간에 극도의 긴장감을 가져다 주는 종류의 기다림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출산일을 기다리는 것, 끝내기 홈런으로 오늘의 경기를 이긴 나의 팀이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는지 기다리는 것처럼 비교적 긴 시간에 걸쳐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다림도 있을 것이다.
또는 컵라면에 물을 부어놓고 젓가락을 비비며 면이 어서 불길 바라는 사소한 기다림도 있고, 불의의 사고를 당해 응급차가 오기만을 바라는 절박한 기다림도 있고, 전역일만을 바라보는 군인의 막연한 기다림 ㅡ 실망과 좌절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ㅡ 도 있다.
이와 같은 기다림에 어느 정도 유형화를 해보자면, 기다림에 결론이 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 그 결론의 경우의 수, 그 결론이 갖는 중요도에 따라 어떤 기다림이 갖는 성격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점점 선진국이 되어가고 있다. http://blog.naver.com/gagayun/80129679818


각종 변수에 의해 나타나는 기다림의 특성 또한 여러가지가 있다.
기다림이란 기본적으로 희망과 기대의 행위다.
특히 기다림의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고 그 결론이 긍정적이며 그 결론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경우 희망과 기대라는 특성은 극대화된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빨리 지나가길 기다리는 어린이의 마음 같은 것이랄까?
기다림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특성으로는 긴장과 설렘을 들 수 있다.
이런 특성은 보통 기다림의 결론이 여러가지일 때 나타나며, 그 결론의 중요도가 높을 수록, 그 결론까지의 시간이 짧아질수록 극대화되는 법이다.
앞에서 말한 임신 테스터기와 홈런 말고도 대학에 붙었는지 확인하려고 인터넷 창을 켰을 때, 사랑 고백을 하고 상대의 대답을 기다릴 때 등을 또 다른 예로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다림이 갖는 특성은 짜증과 분노다.
기다림의 과정에 짜증과 분노가 동반되는 경우는 이미 결론이 기다림의 주체에게 긍정적으로 정해졌는데 좀체 언제 일어날 지를 모르거나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다.
대표적인 예로 변기에 앉았는데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안 하는 변을 기다릴 때, 정류장에 서서 올 기미가 안 보이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릴 때, 기합을 주고는 그 사실을 까먹은 듯 무심해보이는 상관의 기합 중지를 기다릴 때 등이 있겠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우리가 가장 자주 접하면서도 최고 수준의 짜증과 분노를 유발하는 기다림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각에 늦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사실 후자의 예와 전자의 예는 같은 부류의 것으로 취급하기에 무리가 있다.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각에 늦는 사람을 기다릴 때 모락모락 생겨나는 짜증은 그 기다림 자체에 원인이 있다기보다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에서 생겨나는 것이다.[각주:1]
약속은 미래에 대한 것이지만 현재에 일어나는 행위이다.
하지만 한 인간 개인이 예측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확실성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따라서 어떤 경우에 약속이란 불가피하게 파기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약속 자체가 지니는 이런 특성 때문에 사람들은 되도록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고, 한 번 정해진 약속은 되도록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래서 약속에는 신뢰라는 미덕이 전제된다.
그리고 그 신뢰가 깨질 때 우리는 좌절과 실망을 겪고, 때로 짜증과 분노가 동반되기도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차이가 있다.
응가는 스스로 언제 바깥 세상으로 나올 것인지 약속한 적이 없다.
어느 정도 운행 시각이 정해져있는 지하철과 달리 버스는 어렴풋한 배차 간격 외에 운행 시각에 대한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
비록 첨단 기술을 통해 상당히 정확히 도착 시각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정보 역시 약속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런 대상들을 기다리는 데에서 오는 짜증은 무작위적인 기다림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다.
하지만 만나기로 한 시각 약속을 어기는 것은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것이다.
물론 기다림에 따른 시간 낭비에서 오는 짜증도 빼놓을 순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 약속이라는 게 존재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약속이 있다면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예.


그런데 이런 형태의 시각 약속은 보통의 약속과 구분되는 특징을 지닌다.
보통의 약속은 약속을 지키는 정도(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는 것부터 약속을 초과달성하여 지키는 것까지)에 대한 빈도수가 어느 정도 정규 분포를 따른다.
즉, 약속을 딱 약속만큼 지키는 경우가 제일 잦고,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거나 약속을 오바해서 지키는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정규분포는 만나기로 한 시각 약속이라는 조건하에서 완벽히 무시당한다.
내가 경험한 만 22년 6개월 정도의 시간[각주:2] 동안 얻은 직간접적인 정보에 따르면 만나기로 한 시각 약속은 잘 안 지켜지는 경우가 가장 많다.
약속이 초과달성되는 경우인 약속 장소에 예정된 시각보다 더 빨리 도착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뜸하게 일어난다.
가끔 이 약속이 초과달성되는 경우도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라기보다 우연히 그렇게 되거나 또는 불가피하게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규분포 곡선은 대충 이것과 비슷하게 생겼다.


왜 우리는 이렇게도 시각 약속을 지키는 게 힘든 것일까?
첫번째로 들 수 있는 이유로 시각 약속이라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유행하던 '코리안 타임'이라는 용어가 그 대표적인 예.
비단 코리아 타임뿐만 아니라 각종 친목 모임에도 그 이름을 딴 타임이 존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약속 시각에 늦는 것을 당연시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인격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다.
약속이라는 행위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이해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이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은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행위를 함으로써 스스로의 신용을 깎아내릴 뿐이다.[각주:3]
시각 약속도 약속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약속이란 보통의 경우 지키는 게 옳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만 않는다면 시각 약속에 아무렇지도 않게 늦는 사람들의 비율이 점차 줄어들 수 있을지 않을까한다.

두번째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 들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시간 계산을 잘못하는 것이다.
결국 위에서 시각 약속의 경우 약속을 지키는 정도의 분포가 일반적인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는 것도 이 문제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약속 장소까지 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제대로 예측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대부분의 경우 자신은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실제로 걸릴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렇게 불균형적인 분포가 나타나는 이유에는 자신의 시간을 손해보지 않으려는 이기심,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게으름 등이 있겠으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히 계산 자체를 잘못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니 믿고 싶은 바이다.

다년간 시각 약속에 늦는 사람을 혐오해온 나는 사람들이 어느 부분의 계산을 잘못 하는지 살펴볼 기회가 많앗다.
그리고 나는 비고의적으로 약속 시각에 늦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약속 장소에 나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주요' 교통 수단을 '최적화'된 교통 상황에서 이용했을 때의 시간으로 간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오류는 언젠가 우연하게나마 그런 초단시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 심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분명히 그 시간 안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한 번 기억하면 그 상황이 상당히 운이 좋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초단시간을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으로 인지해 버리는 이 장애적 행위의 이유는 설명할 길을 모르겠다.
그럼 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해버리는 시간들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각주:4]

우선 집 현관에 이르는 시간을 잘못 세는 사람, 즉 그냥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 자체에 습관적으로 늑장을 부리는 사람은 여기서 논외의 대상이라고 하고 넘어가자.[각주:5]
첫 계산 실수는 현관문을 나가서 최초 교통수단까지 걸리는 시간이 못 되어도 5분은 걸린다는 데에서 시작한다.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은 생각보다 집에서 멀다.
게다가 그 사이에 횡단보도라도 있다면 우리는 추가적으로 2분 정도는 더 계산에 넣어야 시각 약속을 지키는 첫 단계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걷는 속력을 잘못 계산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면 보통 사람은 1시간에 4km를 걸을 수 있다고 기억해두고 계산하면 된다.

두 번째 계산 실수는 그 교통 수단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무시할 때 발생한다.
배차 간격이 10분인 버스는 평균적으로 5분 이상은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지하철의 역간 소요시간이 2분이라는 말은 배차 간격이 2분이라는 말이 절대 절대 아님을 잊지 말자.
시간표를 보면 알겠지만 지하철의 배차 간격은 생각보다 길고, 나는 이 시간에도 버스와 마찬가지로 역시 5분 가량을 투자한다.
이 다음 과정에는 크게 두 가지 실수가 이어진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교통량 계산을 잘못하는 경우(요일별, 시간대별 교통량을 기억해두면 대부분 해결), 환승 시간을 간과하는 경우(환승이란 다시 새로운 교통수단을 기다리는 과정이 추가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지하철의 경우 역 사이를 이동하는 시간도 무시하지 말자.)가 그것이다.

혹시나 이런 버스가 실제로 생긴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http://shanghaiman.tistory.com/entry/%EC%84%9C%EC%9A%B8%EC%97%90-%EC%9D%B4%EB%9F%B0-%EB%B2%84%EC%8A%A4%EA%B0%80-%EC%9E%88%EB%8B%A4%EB%A9%B4-%EC%A7%80%ED%95%98%EC%B2%A0-%EC%95%88-%ED%83%91%EB%8B%88%EB%8B%A4


마지막 단계의 실수는 처음의 그것과 유사한 것으로 마지막 교통 수단의 이용이 끝나는 지점부터 실제 약속 장소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빼먹는 데서 발생한다.
약속 장소가 신촌 맥도날드 앞인데 연대 정문에 도착하는 것으로 약속 시각을 지켰다는 멍청이 같은 생각은 하지 말자.
우리는 분명히 5분 정도는 걸어야 실제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홍대앞 KFC까지는 택시를 타면 대부분 기본 요금이 나올 만큼 가까운 거리다.
택시를 타면(또는 자가용을 이용하면) 3~4분이면 갈 거리를 환승이 한 번 포함된 버스를 이용할 경우 나는 집에서 정확히 약속 시각 30분 전에 출발한다.
내가 약속 시각을 지키는 것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철저한 편이라 조금 오바하는 편이라고 쳐도 '일반적인' 경우에 약속 시각에 늦지 않으려면 최소 약속 시각 25~20분 전에는 출발해야 마땅한 것이다.
과거에 강남역이나 삼성역에서 약속이 있을 땐 약속 시각 1시간 20분전에 집에서 나섰으나 약속 장소에 혼자서만 너무 빨리 도착하는 경우가 빈번해서 요새는 1시간 전쯤에 출발한다.

이와 같이 '옳은' 시간 계산법을 이용한다면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약속 시각에 늦는 일이 없다.
물론 이 시간 계산법을 지키면 거의 언제나 10~20분은 만나기로 한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각주:6]
분명히 기다림이란 시간 손해이며 어쩌면 금전적 손해 ㅡ 날씨가 안 좋아 마땅히 기다릴 곳이 없어 어디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 주문한다든지 늦을 것 같아 택시를 이용했다든지, 아니면 그냥 시간은 금이라니까 ㅡ 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백해무익에 가까운 기다림에 미학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인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기다림의 미학이란 상대방을 기다리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약속 시각보다 늦는 사람을 기다리는 데에도 있지 않다.
기다림의 미학이란 정해진 장소에 정해진 시각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하는 자세에서,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와 존중에서, 약속과 관련된 신뢰감과 의무감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기다림이란 행위에 내재적으로 필요한 인내와 관용, 더 나아가 여유로움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각주:7]

기다림의 미학은 비단 시각 약속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 말에는 수천, 수만가지가 있다.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기다림이라는 것도 그 말 중에 하나가 될 수 있겠다.
우리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기다림을 대할 때 우리가 갖춰야 하는 자세를 잊지 않는다면, 기다림을 만들어내는 상호간에 이런 잠재적인 미학이 지켜진다면 설령 우리의 삶이 기다림으로 넘쳐난다고 해도 아름다우리라.

아름다운 기다림. "2012년 3월 27일은 존재하는 날일까?" (일병 이한결, 24세)



  1. 그래서 처음엔 이 글을 약속에 관한 글로 쓸까 생각도 해봤다. [본문으로]
  2. 이 글을 2011년 4월 무렵에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본문으로]
  3.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http://miulovesmiu.blog.me/70108390393 [본문으로]
  4. 아래의 글을 읽어나가면서 '에이 무슨 이런 경우가 어딨겠어? 나는 절대 안 그래.'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록 내 말을 명심하는 편이 좋다. [본문으로]
  5.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우리는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현관까지 들어서는데 적게는 2~3분, 많게는 5~10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관에서 나서야 할 시간 5분쯤 전부터 바로 튀어나갈 수 있도록 현관문 바로 옆에 앉아있거나 서성거리면서 잊은 것이 없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진다. [본문으로]
  6. 이는 약속 시각보다 일찍 도착함으로써 기다려야 하는 시간에 대개의 사람들이 약속 시각보다 5~10분은 늦는 시간을 고려한 것이다. [본문으로]
  7. 그런 미학적 가치를 추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미덕을 상실한 것과 다름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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