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ig Lebowski

| 2013. 1. 14. 09:27

한 줄 정리 : 코엔 형제 영화는 닥치고 보자.

http://drafthouse.com/movies/biglebowskiquotealong/austin

동생 에단 코엔만이 작가로 참여했던 《네이키드 맨》을 제외하면, 1996년에 개봉한 《파고》와 2000년에 개봉한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의 중간인 1998년에 개봉한 《위대한 레보스키》는 여러 면에서 저 두 영화를 짬뽕시켜 놓은 듯한 냄새를 풍긴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스토리의 구성과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로, 다양한 인물들의 여러 사건이 하나의 큰 멜팅 팟으로 섞여 들어가는 스토리텔링은 《파고》의 그것과,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뿜어 내는 인사이드 조크의 수준은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의 그것에 가깝다. 《위대한 레보스키》가 취한[각주:1] 두 특징은 나머지 두 영화의 특장점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레보스키》는 웃기면서도 몰입력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웃기면서 몰입력 있는 영화를 본 적이 얼마만인가 싶기도 하다.

원래는 이야기 구조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첫째로 도대체 이런 식의 이야기 구조에 대해 어떤 식의 자연어 서술을 해야 바람직한지 잘 모르겠고, 둘째로 비교의 주 대상이 되어야 하는 《파고》의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아 대충 한 문장으로 얼버무리자면, 거대한 하나의 시간 흐름에 여러 지류들, 즉 다른 등장 인물들의 집합이 하나씩 하나씩 합쳐져 들어가는 모양의 구조로, 얼핏 보면 쿠엔틴 타란티노나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내러티브와 유사한 형태라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코엔 형제의 경우 서사적인 진행 자체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점으로 볼 수 있겠다.

등장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면, 캐릭터 설정에 있어 항상 매우 깊은 노력을 들이는 것 같은 코엔 형제들의 영화인 만큼 《위대한 레보스키》에는 그 누구 하나 "무난한" 인물이 없다. 만약 그들의 영화에 무난한 캐릭터가 있다면, 그 무난한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무난함이 다른 인물들로부터 그를 확실하게 부각시킬 것이기 때문에 무난함 자체로 무난하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으리라. 어쨌든 영화의 주인공인 우리의 레보스키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캐릭터지만 이 포스트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캐릭터는 위 스크린 샷에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 월터라는 녀석이다. 베트남 전쟁 참전자의 백그라운드를 깔고 있는 저 놈의 캐릭터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그러니까 머리 스타일부터 선글라스 모양, 수염, 저 셔츠와 낚시 조끼, 바지와 신발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만들어진, 그러나 전혀 만들어진 것 같지 않은 만큼 저 차림새와 어울리는 말투와 표정을 가지고 있다. 초반의 그의 모습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무슨 장면이든 간에 저 월터 놈이 입을 여는 순간부터 웃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살려내는 것을 보고 있자면 코엔 형제에 대한 탄성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볼링이라는, 여전히 나한테는 그다지 생활 스포츠로서 인식되지 않는 그 운동을 감각적으로 화면에 담아낸 것으로부터도 이들의 천부적 재능을 느낄 수 있다. 하나의 중심 소재로서의 볼링은 이 영화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에 어떤 한 신을 추천하기가 애매하지만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저스의 등장 정도라면 대충 이들이 영화에서 담아냈을 볼링이란 것이 대충 어떤 느낌의 장면일지 예상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영화에선 여태까지의 코엔 형제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참신한 장면이 여럿 등장했는데 아래의 비디오 클립도 그 중 하나다. 코엔 형제의 개그 코드를 생각했을 때 어떻게 보면 진작에 이런 장면을 찍어내지 않은 것을 어색하다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뭐 그야 어찌됐든 참신하며 신선한 장면이다.

초반 배우 소개에 플리의 이름이 떠 있는 것을 보고 내심 기대를 걸었지만 예상보다 너무 적은 분량에 조금은 실망. 하지만 그 비주얼이 뿜어내는 포스만큼은 역시나 제대로 살려냈다고 본다. 스티브 부세미 또한 그 이름에 비해 너무 작은 역할을 맡은 듯 했지만 그가 맡은 캐릭터의 태생적 성질을 지켜주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던 설정. 타라 리드의 역할에는 샤를리즈 테론도 접촉을 시도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조금 경박하고 지저분한 여자 컨셉과 샤를리즈 테론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은 팩트, 그럼에도 샤를리즈 테론이 이 영화에 나왔더라면 정말 더 큰 집중력을 가지고 봤을 텐데 하는 것은 나의 호프.

  1. 논리적으로 보자면 2년이나 먼저 나온 영화가 2년 뒤에 나온 영화의 특징을 취했다는 문장은 성립 자체가 되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 진지 빠는 영화 전문가가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