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글>은 미국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작가 업튼 싱클레어의 대표작이다.
영화 <There Will Be Blood>를 보고 이 영화의 느슨한 원작이라는 <Oil!>을 쓴 작가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번역된 이 책을 선택했다.
소설이 다루는 배경은 20세기 초 시카고 근처고, 큰 주제 두 가지는 비위생의 끝을 달리는 도축 공장, 정육 공장의 실태와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인간다운 삶의 질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비극이다.
소설의 초반부는 비위생적인 공장들의 묘사에 포인트를 둔다.
그 묘사가 워낙에 사실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현실적이라 아주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는데 문장들의 조합만으로도 이렇게 끔찍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상당히 혐오스럽지만 내가 받았던 그 찝찝함을 그대로 선사하겠다.
가장 그로테스크한 부분 ㅡ 거의 고어 영화를 연상케 하는 수준이다 ㅡ 을 고른 것이긴 하지만 비슷한 류의 서술을 인용하자면 한 포스트 전체를 써도 남을 분량이다.
업튼 싱클레어가 이 소설을 쓰기까지 어떤 정보를 어떤 경로를 통해 얻었는지에 대해서 알고자 했으나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르포를 위한 직접 경험에서 우러나온 서술이라면 그의 고발 정신에, 제보를 통한 간접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그의 사실적인 필치에 박수를 보낸다.
이런 면에서 <정글>은 문학적인 가치만을 보더라도 리얼리즘의 극치라는 찬사를 받을 만하지만, 2차적인 가치까지 고려한다면 더욱 엄청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직접 이런 '고기 비슷한 것'과 '고기 비슷한 것'으로 만든 각종 가공 제품들을 사먹어야 했던 소비자들이 이런 글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상상해보라.
설령 작가가 의도한 것이 단순한 실태 고발에 그치는 것이었을지라도, 이 소설이 원래의 의도에서 더 나아가 실제 미국 사회에 초래한 결과는 지대한 것이다.
뉴욕 타임즈는 <정글>을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과 비교할 정도였다.
앞 날개에서 인용한다.
주인공 유르기스는 이런 악조건 상황 속에서도 성실한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 이쯤에서 업튼 싱클레어가 내세우고 싶었던 두 번째이자 우선시하려고 했던 주제인 자본주의의 해악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왜 노동 환경과 고용 상황,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업튼 싱클레어는 이 문제의 근본을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으로 보고 이 불합리한 시스템을 지지하는 것으로 정치와 경제의 강한 유착을 들며 그 정치와 경제의 우두머리들이 인간 삶의 필수 요소인 의식주를 장악하고 있는 사태를 노골적으로 까고는 강하게 비판한다.
이주 노동자라는 제도적 약자의 설정이 주제 의식을 더욱 부각시킨다.
유르기스가 사회가 돌아가는 흐름을 깨우치게 된 것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은 뒤였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수중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얽매이는 것도 없다는 뜻이 된다.
자유롭게 떠돌던 그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약소하지만 지배 구조의 사이클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의 과거를 그토록 끔찍하게 만들었던 사회의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있었다.
노골적으로 사회주의 노선으로 이야기를 잡아 끄는 후반부 ㅡ 결과적으로 이 때문에 사실적인 묘사가 가져온 높은 문학적 가치가 상당히 손실되고 마는데 ㅡ 의 양상과 그가 남긴 유명한 "나는 사람들의 심장을 겨냥했는데 어쩌다보니 위에 명중하고 말았다. 1"는 말 등을 고려하면 이건 무조건이다. 2
하지만 전반적으로 <정글>을 읽고나서 드는 감상 중에 자본주의에의 경계와 사회주의의 대두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이는 단순히 나의 가치관이 나타내는 호불호를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본다.
<정글>이 이처럼 절반의 성공만을 거둔 이유는 먹거리라고 하는 것이 일반 대중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중요도가 정치 및 경제 구조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 첫째, 둘째는 위에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독자들을 억지스럽게 자신의 결론으로 끌고가려는 방법론의 실패 때문이다.
아무리 좋고 맛있는 것을 먹이려고 해도 방법이 잘못되면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완역"이라는 단어에 목숨을 거는 나지만, 첫 번역판이 나왔을 때 그 억지의 끝을 보여주던 마지막 세 장(29~31장)을 생략한 선택에 수긍이 간다.
<정글>이라는 소설을 두고, 이념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고 마땅히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21세기에는 어떤 식으로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노조와 회사와의 관계, 이주민 노동자의 처우, 식품 회사의 위생, 거대 언론과 거대 기업, 여론 몰이와 선거, 관계 법령을 제정하는 정치.
1900년대 초반의 시카고와 2012년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비교해보자.
100년 전의 문제는 얼마나 개선되었는가.
우리는 그저 이 끔찍한 역사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위키피디어에 실린 후문을 소개하며 포스팅을 마친다.
<정글>로 인해 국민들의 항의가 빗발치던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는 싱클레어의 인간성을 비하하고 <정글>의 작품성과 신뢰성에 의심을 품었으나 일단 조사관은 직접 파견한다.
어떤 식으로든 그 정보를 알아낸 공장측에서는 3주 동안 3교대 근무를 돌리면서 공장을 청소했지만 조사관들은 공장의 노동 환경과 노동자에 대한 대우의 실상에 충격을 받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대통령에게 보낸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대중들이 요구하던 규제들을 반대했고 이 실상을 담은 보고서를 비공개에 부친다.
대신 그는 보고서의 정보들을 조금씩 흘리는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같은 해 6월 의회에 이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는 식품의약품위생법과 육류검역법의 제정과 이어서 미국식품의약국의 설립으로 이어진다.
해피엔딩?
반전이 있다면 싱클레어 본인은 이 법안화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매년 3천만 달러에 달하는, 법이 제시한 실태 조사의 비용이 회사에게 돌아가기는 커녕, 미국의 평범한 납세자의 몫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영화 <There Will Be Blood>를 보고 이 영화의 느슨한 원작이라는 <Oil!>을 쓴 작가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번역된 이 책을 선택했다.
소설이 다루는 배경은 20세기 초 시카고 근처고, 큰 주제 두 가지는 비위생의 끝을 달리는 도축 공장, 정육 공장의 실태와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인간다운 삶의 질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비극이다.
옛 미국의 도축 공장. http://www.sharenator.com/The_Jungle_By_Upton_Sinclair
그 묘사가 워낙에 사실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현실적이라 아주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는데 문장들의 조합만으로도 이렇게 끔찍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상당히 혐오스럽지만 내가 받았던 그 찝찝함을 그대로 선사하겠다.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찌꺼기로 사육되는 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황소 비슷한 놈'이라고 불렀다. 온통 종기로 뒤덮여 있어 차마 '황소'라곤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도살하는 일은 아주 지겨운 일이었다. 칼로 그런 소를 찌르면 얼굴에 온통 더러운 고름들이 튀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 놈들의 피로 손과 소매가 범벅이 될 경우 어떻게 닦아내고 앞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부빌 수 있었으랴.정말 윽! 소리가 절로 나오지 않나.
가장 그로테스크한 부분 ㅡ 거의 고어 영화를 연상케 하는 수준이다 ㅡ 을 고른 것이긴 하지만 비슷한 류의 서술을 인용하자면 한 포스트 전체를 써도 남을 분량이다.
업튼 싱클레어가 이 소설을 쓰기까지 어떤 정보를 어떤 경로를 통해 얻었는지에 대해서 알고자 했으나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르포를 위한 직접 경험에서 우러나온 서술이라면 그의 고발 정신에, 제보를 통한 간접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그의 사실적인 필치에 박수를 보낸다.
이런 면에서 <정글>은 문학적인 가치만을 보더라도 리얼리즘의 극치라는 찬사를 받을 만하지만, 2차적인 가치까지 고려한다면 더욱 엄청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직접 이런 '고기 비슷한 것'과 '고기 비슷한 것'으로 만든 각종 가공 제품들을 사먹어야 했던 소비자들이 이런 글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상상해보라.
설령 작가가 의도한 것이 단순한 실태 고발에 그치는 것이었을지라도, 이 소설이 원래의 의도에서 더 나아가 실제 미국 사회에 초래한 결과는 지대한 것이다.
뉴욕 타임즈는 <정글>을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과 비교할 정도였다.
앞 날개에서 인용한다.
작품에 묘사된 육가공업의 위생 상태에 분노한 대중들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앞으로 무수한 항의 편지를 보내 육가공업의 개선을 촉구했고, 소시지의 판매는 절반으로 곤두박질쳤다.루스벨트는 직접 시카고로 조사관을 파견해 상황을 확인하는 한편 싱클레어를 백악관으로 초대해 면담했다. 그해 6월 식품의약품위생법과 육류검역법이 제정됐고 이어서 미국식품의약국이 설립됐다.전지적 작가 시점이기는 하지만 표면적으로 리투아니아 이주 노동자의 눈을 통해 그리는 모습은 이 정도가 전부다.
주인공 유르기스는 이런 악조건 상황 속에서도 성실한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 이쯤에서 업튼 싱클레어가 내세우고 싶었던 두 번째이자 우선시하려고 했던 주제인 자본주의의 해악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왜 노동 환경과 고용 상황,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업튼 싱클레어는 이 문제의 근본을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으로 보고 이 불합리한 시스템을 지지하는 것으로 정치와 경제의 강한 유착을 들며 그 정치와 경제의 우두머리들이 인간 삶의 필수 요소인 의식주를 장악하고 있는 사태를 노골적으로 까고는 강하게 비판한다.
이주 노동자라는 제도적 약자의 설정이 주제 의식을 더욱 부각시킨다.
이제 유르기스는 이와 같은 오랫동안에 걸친 사건들을 통해 모든 진실과 자기 자신을 알 것 같았다. 그는 그의 생명을 빨아먹는 탐욕스런 욕심쟁이들의 제물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간교하게도 그의 눈앞에서 그를 속이고 조롱한 것이다. 오오, 무섭고 끔찍스러운 악마들 같으니라구! 죽지 못해 사느라 버둥거리는 무식하고 힘없는 그와 그의 가족들을 속이고 피를 빨아먹는 녀석들! 사탕발림투성이였던 선전 광고, 그럴듯하게 지껄여 대던 관리인! 분할 납부라는 교묘한 함정, 생각지도 못했던 이자, 잡다한 부과금! 그리고 공장주와 감독의 속임수… 조업 중단, 구직난, 불규칙한 근무 시간, 과중한 작업 속도, 저임금, 치솟기만 하는 물가! 혹한과 더위, 눈, 비 등의 무정한 자연과 법률, 관습 등의 무정한 국가 당국과 시 당국!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을 제물로 점찍어 놓고 기회만 기다리고 있던 건축 회사들을 편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기회가 다가오자 건축 회사는 그들을 거리로 내쫓은 다음 그들의 집을 다른 사람에게 다시 팔아먹었던 것이다! 법률도 그들의 편이 아니었고, 사회 전체가 적들의 수중에 있어 손발이 다 묶여 버린 꼴이었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만약 유르기스가 감히 이들에게 대항한다면 방금 빠져나온 감옥으로 다시 들어가는 길 외에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 것인가!이 쯤되면 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의 제목이 정글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유르기스가 사회가 돌아가는 흐름을 깨우치게 된 것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은 뒤였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수중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얽매이는 것도 없다는 뜻이 된다.
자유롭게 떠돌던 그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약소하지만 지배 구조의 사이클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의 과거를 그토록 끔찍하게 만들었던 사회의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있었다.
그리하여 유르기스는 시카고의 고등 범죄의 세계를 볼 수 있었다. 그 도시가 국민에 의해 통치된다는 것은 허울 좋은 말일 뿐이었고 사실상 소수의 자본가들에 의해 소유돼 있었는데, 그들은 권력의 이전을 위해 거대한 이민자 집단을 필요로 했다. 일 년 중 봄과 가을에 시행되는 두 번의 선거에서 자본가들에 의해 수백만 달러가 제공되었는데 이들이 그 돈을 소비했다. 집회가 열리고 우수한 웅변가들이 고용되었으며, 밴드가 울리고 폭죽이 쏘아 올려졌다. 몇 톤이나 되는 선전물과 수만 병의 술이 제공되었고 수만 명의 투표권이 현금에 팔렸다. 물론 이러한 이민자 단체는 일 년 내내 유지되어야 했다. 그 중 지도자들과 조직가들은 자본가들에 의해 직접 관리되었는데 그 내용을 보자면 시 의회의 의원들은 뇌물에 의해, 당료들은 선거 자금에 의해, 로비스트들과 회사 고문 변호사들은 봉급에 의해, 청부업자들은 일거리에 의해, 노조 지도자들은 보조금에 의해, 신문 경영주와 편집자들은 광고에 의해 유지됐던 것이다.지배 계층에서 보자면 깜짝 놀랄 좌빨스러운 내용이었겠지만 이런 메시지야말로 업튼 싱클레어가 진정 전달하기 원했던 것임은 분명하다.
노골적으로 사회주의 노선으로 이야기를 잡아 끄는 후반부 ㅡ 결과적으로 이 때문에 사실적인 묘사가 가져온 높은 문학적 가치가 상당히 손실되고 마는데 ㅡ 의 양상과 그가 남긴 유명한 "나는 사람들의 심장을 겨냥했는데 어쩌다보니 위에 명중하고 말았다. 1"는 말 등을 고려하면 이건 무조건이다. 2
하지만 전반적으로 <정글>을 읽고나서 드는 감상 중에 자본주의에의 경계와 사회주의의 대두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이는 단순히 나의 가치관이 나타내는 호불호를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본다.
<정글>이 이처럼 절반의 성공만을 거둔 이유는 먹거리라고 하는 것이 일반 대중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중요도가 정치 및 경제 구조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 첫째, 둘째는 위에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독자들을 억지스럽게 자신의 결론으로 끌고가려는 방법론의 실패 때문이다.
아무리 좋고 맛있는 것을 먹이려고 해도 방법이 잘못되면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완역"이라는 단어에 목숨을 거는 나지만, 첫 번역판이 나왔을 때 그 억지의 끝을 보여주던 마지막 세 장(29~31장)을 생략한 선택에 수긍이 간다.
<정글>이라는 소설을 두고, 이념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고 마땅히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21세기에는 어떤 식으로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노조와 회사와의 관계, 이주민 노동자의 처우, 식품 회사의 위생, 거대 언론과 거대 기업, 여론 몰이와 선거, 관계 법령을 제정하는 정치.
1900년대 초반의 시카고와 2012년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비교해보자.
100년 전의 문제는 얼마나 개선되었는가.
우리는 그저 이 끔찍한 역사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위키피디어에 실린 후문을 소개하며 포스팅을 마친다.
<정글>로 인해 국민들의 항의가 빗발치던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는 싱클레어의 인간성을 비하하고 <정글>의 작품성과 신뢰성에 의심을 품었으나 일단 조사관은 직접 파견한다.
어떤 식으로든 그 정보를 알아낸 공장측에서는 3주 동안 3교대 근무를 돌리면서 공장을 청소했지만 조사관들은 공장의 노동 환경과 노동자에 대한 대우의 실상에 충격을 받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대통령에게 보낸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대중들이 요구하던 규제들을 반대했고 이 실상을 담은 보고서를 비공개에 부친다.
대신 그는 보고서의 정보들을 조금씩 흘리는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같은 해 6월 의회에 이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는 식품의약품위생법과 육류검역법의 제정과 이어서 미국식품의약국의 설립으로 이어진다.
해피엔딩?
반전이 있다면 싱클레어 본인은 이 법안화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매년 3천만 달러에 달하는, 법이 제시한 실태 조사의 비용이 회사에게 돌아가기는 커녕, 미국의 평범한 납세자의 몫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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