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Ivy) - 찢긴 가슴

| 2012. 8. 2. 08:51

총 소요 시간을 따지면 약 20시간이나 걸렸던 필라델피아에서 인천 공항으로 들어오던 길.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밟으러 가던 그 피로함의 끝에서 갑자기 흥얼거리기 시작한 노래는 "무의식의 흐름"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아이비의 '찢긴 가슴'이었다.
친형이 팬이라는 것 말고, 예전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게스 화보 사진을 올렸던 것 말고는 나와 정말 관계가 없는 사람인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도 아니고 내가 미국에 떠나기 약 한 달 전에서야 발매가 되었던 '찢긴 가슴'이라니.

바로 이 화보다. http://blog.naver.com/yuri0073/20111860504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기억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심지어 나는 이 노래의 제목도 알지 못했다.
후렴구의 "아프다~아~으~하으아"를 가지고 제목이 '아프다'인 것은 아닌지 어렴풋한 추측만 했을 뿐.

그렇게 한 번 우연히 떠올랐다가 다시 우연히 잊혀질 것으로 예상했던 이 노래는 무의식의 영역에 숨어 이따금씩 내 의식의 영역을 건드렸다.
참을 수 없어 원곡을 찾아 들었다.
그리고 딱 처음 들었을 그 때, 이 트랙을 블로그에 소개하는 것이 생각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껴 포스팅을 하기로 했다.

일단 내가 살면서 본, 여자 가수가 직접 출연한 뮤직 비디오 중에 단연 최악 중의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ㅡ 아니다, 이건 뮤직 비디오라는 것이 만들어진 이래 최악의 뮤직비디오다 ㅡ 뮤직 비디오 영상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기로 한다.
똥을 묘사하는 일은 그것을 묘사하는 사람의 질까지 같이 떨어뜨리는 일이니 말이다.
정말 참지 못해 한 마디만 하고 넘어가면, 그 누구든 아이비의 팬이라면 보자마자 분노하지 않을 수 없고 아이비에 대한 연민이 샘 솟듯 넘쳐 흐르지 않을 수 없으며 기획자가 그 누구이든 간에 ㅡ 그것이 아이비만 아니라면 ㅡ 뒷통수를 한 대 강하게 내려치고 싶은 욕구가 머리 끝까지 올라오지 않을 수 없는 뮤직 비디오다.
아니 무슨 《영화는 영화다》도 아니고, 《달콤한 인생》도 아니고, 대체 갯벌에서 튀어나오는 저 컨셉은 뭐란 말인가.

참 이 노래가 신기한 것은 가요로는 드물게 부분의 합이 전체를 넘어서는 공식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유행이라고 할 수 있는 풍부하고 화려한 반주 대신 부피감 있는 신디와 가벼운 현악 세션만으로 뒤를 채우고 있고, 드럼 비트는 정통 8비트, 힘 주어 말해 8!비!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보컬의 멜로디는 처음부터 낮지 않게 시작해 다소 불안감을 주며, 목소리 톤의 깊이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이비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의 호불호에 따라 짜증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렇게 부분을 따로 보지 않고 그냥 음악에 귀를 맡기고 듣다 보면, 썩 괜찮다.
신기하다.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
"30개월 동안의 침묵. 그리고 고통, 시련, 외로움을 깨고 새로운 '아이비'"라기엔 결정적인 한 방의 힘이 달린 게 실패의 주 원인이 아닐까 한다.
아무쪼록 다음 앨범에서는 좀 더 힘들 써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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